어느 가는귀를 먹은 남편의 아내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남편이 나오면 볼륨을 높여 주고, 남편한테 말할 때에는 남편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하는 입을 남편에게 보여 준답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아내에게서 형용할 수 없는 인간애를 느낀다고 합니다.

어느 야채 쌈밥 집은 삼대가 같이 살고 있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와 야채쌈밥집을 운영하는 부부 그리고 액세서리같이 예쁘고 사랑스런 아들딸이 있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일찍 일어나 따뜻하게 덥혀 놓은 신발을 신고, 남편이 미리 시동을 걸어서 훈훈하게 덥혀놓은 차를 타고, 하루치의 야채를 뜯으러 나가는 새벽이 행복하답니다. 그리고 봄이면 아들딸이 할아버지를 리어카에 모시고 꽃구경을 시켜드리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행복하답니다. (권희돈 ‘백한 번째의 주례사’ 중에서)

우리의 일상생활은 사소한 것들로 점철되어 있다. 사소하기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는 게 배려이다. 야채쌈밥집 아내와 그 집의 아이들 그리고 가는 귀 먹은 남편의 아내는 아주 사소한 배려로 상대를 기쁘게 한다. 그들의 행동은 모두 사소하지만 상대에게는 꼭 필요한 행동이다. 꼭 필요하기에 배려는 감동의 힘이 있다.

귀가 잘 안 들리는 남편의 불편함을 덜어주기 위한 아내의 마음, 새벽녘에 나가는 아내의 추위를 걱정하는 남편의 마음, 봄이 와도 꽃을 볼 수 없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손자손녀의 마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있는 공간은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며,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소통의 힘이다.

이제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구분하던 시대에서 배려를 잘 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으로 구분되는 시대로 바뀌어야 할 것 같다. 가정에서 배려의 문화를 익힌 아이들은 가정 밖에서도 배려를 잘 하는 사회인으로 성장할 것이다. 학교에서 배려를 배운 학생들은 학교 밖에 나가서 더욱더 배려를 잘 하는 사회인으로 성장할 것이다. 어떤 회사가 배려의 가치를 회사의 중심 가치로 삼는다면 그 회사는 젊은이들이 가장 가고 싶은 회사로 성장할 것이다. 어느 도시가 배려의 가치를 시정의 중심 가치로 삼는다면 그 도시는 가장 인간다운 도시로 변화할 것이다. 작은 일을 꾸준히 하는 사람이 종국에는 크게 이루듯이. 작은 일에 충실한 사회도 종국에는 크게 이루리라 믿는다.

<권희돈 청주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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