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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소설 당선작 <가리개, 박종희>
2014년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소설 당선작 <가리개, 박종희>
  • 동양일보
  • 승인 2014.12.18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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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개

여자가 부르는 소리에 흠칫 놀라 옆을 돌아보았다. 한 달 넘게 같은 병실에 있으면서 나한테 언니라고 부르던 여자다. 잠을 설쳤는지 부스스한 몰골로 가방을 싸는 여자의 눈자위에 벌겋게 핏발이 섰다. 삐져나올 듯이 빵빵한 회색 보따리를 매동그리던 여자가 과일이 담긴 검은색 봉지를 내민다.

언제 그렇게 주워 날랐는지 남편 간병하면서 생겨난 짐이 간이 의자 위에 가득하다. 양손에 보따리를 들고 나서는 그녀의 짐을 빼앗아 주차장까지 들어다 주고 오는데 산모와 친정어머니인 듯 한 모녀가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앙증맞은 소아용 산소통을 든 간호사도 따라 들어온다. 아직 부기가 빠지지 않아 부석부석한 산모가 아기를 들여다보며 연신 눈물을 훔친다. 세상에 나온 지 며칠 안 된 것 같은데 어린 것이 어디가 안 좋아 산소통까지 달았을까.

4층 신생아 병동에서 내리는 산모와 아기의 뒤를 쫓다 보니 어느새 엘리베이터가 6층 내과 병동 앞에 서 있다.

“일어났어요? 어젯밤에 또, 통증 있었어요?”

남자가 고개를 내 젓는다.

“가래 한 번 뽑을게요.”

대답 대신 눈만 멀뚱멀뚱하게 뜨고 있는 남자의 목에 달린 연두색 캐뉼라 뚜껑을 열고 주홍색 팁을 깊숙이 집어넣었다. 쭈룩쭈룩, 팁에 누런 가래가 빨려 올라오는 소리가 커질수록 남자의 얼굴도 능금처럼 붉어졌다. 팁을 식염수에 담그고 한 번 더 깊숙이 넣어 가래를 뽑고 캐뉼라 뚜껑을 닫았다.

“ 이제 됐어요. 힘들었죠? 그래도 가래가 묽어지고 많이 줄었어요.”

기관 절개하고 가래를 뽑기 위해 연결한 캐뉼라 때문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지만, 웬만한 것은 이 남자 눈만 봐도 알 수 있다.

나는 남자를 옆으로 눕히고 침대 밑에서 소변 통을 꺼내 남자의 아랫배 부분에 대 주었다. 주르륵, 참았다가 누는지 소변 나오는 소리가 꽤 오래 이어졌다. 손잡이 부분까지 찰랑거리는 플라스틱 소변 통을 비우고 오니 남자가 눈을 꼭 감고 있다. 수척해진 남자의 얼굴에 멋대로 자란 수염이 오늘따라 더 까칠해 보인다. 내일은 면도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한쪽으로 뭉쳐있는 이불을 펴서 덮어주었다.

아침에 풀어놓은 시간들이 식빵처럼 눅눅해져 창틀 사이에서 기웃거린다. 나는 창문을 무겁게 내리닫고 옷장에서 보라색 카디건을 꺼내 어깨에 걸쳤다. 병원에 있으면 잘 스며드는 염색약처럼 시간이 참, 빠르게 흡수되는 것 같다.

내가 이 병원에 들어온 지도 벌써 3년이 되어간다. 이곳에서는 옷도 필요 없다. ‘소망간병’이라는 로고가 새겨진 분홍색 반소매 옷을 입고 지낸다. 1년 내내 반소매를 입고 지내니 계절이 어떻게 바뀌는지 느낄 여유가 없다. 그 사이에 내 손을 거쳐 간 환자만 해도 셀 수가 없다.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한 것 같다. 그날 이후 다시는 이 병원에는 발걸음도 안 할 것 같았는데 이곳이 내 일터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더구나 간병사가 되어 이렇게 다른 남자를 간병하고 있다니 정말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일이다.

시멘트회사에 근무했던 남편은 병원과 참, 친근하게 지냈다. 분진 때문인지 늘 기침과 가래가 끊이질 않았다. 쌍둥이들이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남편은 다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자면서 각혈을 했는데 피가 기도로 넘어가 흡인성 폐렴이 되었다. 기관 삽관을 하고 인공호흡기를 달았다.

보름이 지나서 목을 뚫는 기관절개 수술을 했다. 캐뉼라를 달고 목에 상처 때문에 아파할 때는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밤새 통증을 견디지 못해 몇 차례씩 진통제를 맞았다. 폐부종 때문에 옆구리에 관을 넣어 물도 뽑아냈다.

중환자실에서 두 달 만에 일반병동으로 올라왔지만, 간병인을 쓸 형편이 안됐다. 그날부터 간호사한테 가래 뽑는 법을 배웠다. 가래가 고이면 염증이 생겨 다시 폐렴이 오기 때문에 폐 질환 환자에게는 가래가 독이었다.

남편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가래를 뽑고 나면 남편은 캐뉼라 때문에 소리도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욕을 퍼부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그랬을까. 남자의 목에서 가래를 뽑을 때면 남편 생각이 많이 났다.

“뭐 좀 먹을래요?”

비스듬히 누운 남자가 눈을 맞추며 웃는다. 남자는 지난주에 남자의 누나가 갖다 준 갈색 원목으로 된 책꽂이에 책을 세워 읽고 있다. 하얀 피부에 쌍꺼풀 없는 남자의 얼굴이 참 잘 생겼다는 생각을 하는 사이 내 눈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에 얼굴이 난로처럼 확확 달아올랐다.

“이 사과 맛있죠? 지난번에 우진 씨 누님이 사온 충주 사과에요.”

남자를 간병하기 시작하면서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랐다. 처음엔 교수님이라 불렀는데 일주일이 지나니 불편하다며 남자가 이름을 부르라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남자를 우진 씨라고 불렀다. 가끔 말을 안 듣고 고집을 부릴 때면 일부러 ‘박우진 씨! “하고 성을 붙여 부르기도 했다.

“요즘 누님이 뜸하시네요? 무슨 일 있으시나 봐요?”

얇게 저민 사과를 접시에 내려놓는 남자의 얼굴이 단번에 어두워진다. 그때 남자의 핸드폰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남자가 핸드폰을 들어 발신인을 확인하고는 서늘한 표정으로 나한테 핸드폰을 건네준다. 남자의 와이프다. 큰 딸애가 컴퓨터그래픽 학원에 다니기 시작해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전화였다. 와이프한테서 온 전화 내용을 들은 남자가 아무 말 없이 다시 창으로 눈을 돌린다.

남자는 가족과 떨어져 기러기 생활을 하고 있었다. 4년 전에 와이프가 딸 둘을 데리고 호주로 갔는데 아예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아 걱정이라고 했다. 남자는 2년만 생각하고 보냈는데 4년이 되어도 와이프가 고집을 부려 누나하고도 사이가 안 좋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호주에서 전화가 오는 날이면 남자는 유난히 짜증을 부렸다.

한참 생각에 잠겨있던 남자가 찝찝한 표정으로 엉덩이를 들썩인다. 기저귀 좀 봐달라는 신호다. 캐뉼라 때문에 거동을 못 하니 대변은 늘 기저귀에 받아내야 한다. 머리 쪽을 높게 올렸던 침대를 내려 남자를 옆으로 눕혔다.

두 달 동안 관 급식만 해 앙상한 남자가 지그시 눈을 감고 나한테 몸을 맡긴다. 나는 분홍색 체크무늬 가리개를 끌어당겨 베드를 가렸다.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남자의 궁둥이에서 바지를 끌어내렸다. 골반 사이에서 밴드를 떼고 하늘색 펄프 기저귀를 벗기니 훅, 콧속으로 오물 냄새가 진동하며 밀려들어 온다. 이만하면 오물 냄새에 익숙해졌을 만도 한데 아직 비위가 상하고 속이 뒤틀리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묽은 변은 이미 마른 허벅지까지 누렇게 묻어있었다. 남자들은 변이 그 부위에도 묻어 꼭, 그곳까지 손이 닿아야 변을 치울 수 있다. 기저귀를 빼 삼각으로 뭉쳐놓고 허벅지를 닦는데 잠깐의 내 손놀림에 놀랐는지 남자가 흠칫한다. 남자의 몸짓에 나도 덩달아 심호흡을 한 번 한다. 남자의 궁둥이 앞뒤를 물휴지로 여러 번 닦아내다가 문득 남편의 그곳이 떠올라 갑자기 노란 어지럼증이 일어난다.

남편도 그랬다. 금식하다 식사를 시작하면 어김없이 설사를 했다.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쏟아내는 배설물 때문에 궁둥이가 짓무르고 욕창이 생겼다. 그러면서도 성질은 점점 더 패악스러워졌다.

몸은 거미처럼 가늘어지고 의식이 가물가물할 때까지도 난폭한 성질만 남아 의처증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병실의 남자환자와 눈만 마주쳐도 화장지를 집어 던지며 독하게 가래침을 내뱉었다. 주치의와 내가 한패가 되어 자기를 죽이려 한다고 억측도 부렸다. 화가 나면 캐뉼라를 뽑아버려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반의사가 다 됐다. 몇 년 남편을 간병하다 보니 가래 뽑는 일과 모니터 숫자 보는 법, 콧줄로 관 급식 주고 체위 변경하고 마사지해주는 일까지도 완벽하게 해냈다. 자격증만 없지 누가 보아도 베테랑 간병사 같다며 의료진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그 바람에 이렇게 병원에서 일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며칠 동안 뿌옇게 흐려있던 하늘에 오늘은 내시경처럼 반짝 해가 떴다. 날씨처럼 우중충해 있던 남자의 얼굴에도 모처럼 생기가 돈다.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며칠 사이에 병실 사람들이 확 바뀌었다. 췌장암으로 1년째 고생하던 남자가 그저께 저녁 먼 곳으로 떠났다. 신혼여행 갔다가 쓰러져 3년째 식물인간처럼 누워있던 젊은 남자도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아직 서른도 안 된 새댁이 갓난아기가 된 남편을 씻길 때면 누구랄 것 없이 같이 거들어주었는데, 요양병원에서는 잘 지내는지 모르겠다.

바람이 같아서 인지 병원에서 만나는 인연은 유독 끈끈하다. 한 병실에서 같이 지내다 보면 그들의 가족사까지 모두 알게 되는 것이 병실 사람들이다.

어젯밤에는 새로 들어온 할아버지 때문에 잠을 설쳤다. 병원에 오래 입원하는 어르신들은 ‘석양증후군’이 심하다. 직업군인이셨다는 할아버지는 중환자실에 오래 계셔서 섬망과 석양증후군이 심했다. 당신이 ‘켈로부대’ 출신이라 북한을 다섯 번이나 다녀왔다며 종일 군대 이야기를 하셨다. 그러다가도 석양이 하루의 끝을 말아 쥐고 노랗게 번져갈 때면 집에 가겠다고 소동을 피웠다. 아마도 인간한테는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귀소본능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할아버지가 ‘기상! 기상!’하면서 소리를 지를 때는 남자도 뒤척거렸다. 보라색 극세사 이불이 들썩일 때마다 다시 이불을 덮어주면 남자는 착한 어린이처럼 금방 잠이 들었다. 남자와 같이 있으면 꼭, 내가 이 남자의 주인 같았다. 담당 교수나 주치의가 남자를 회진할 때도 으레 나한테 설명했다. 간호사들도 마찬가지다. 그럴 때면 은근히 우쭐해졌다. 사실, 환자를 간병하다 보면 별별 사람이 다 있는데 이 남자는 정말 예의 있고 성품이 좋은 사람이었다.

오전 내내 기운을 소진해 보풀이 일어난 낡은 햇빛이 슬쩍 자리를 비켜선다. 점심을 먹고 하체운동을 하던 남자가 가슴 사진 찍으러 갈 준비를 마쳤다. 남자를 태우고 링거가 걸린 Y자형 솟대까지 떠안은 휠체어가 미끄러지듯이 6층 내과 병동을 빠져나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침대에 누운 채 엑스레이를 찍으러 다녔는데 이젠 휠체어를 탈만큼 남자의 건강이 좋아졌다. 캐뉼라를 뽑고 나니 몸에 달고 있던 줄이 간편해져 훨씬 수월해졌다. 다음 주부터는 재활치료도 시작한다고 하니 남자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사진을 찍고 사위어 드는 햇볕이 아까워 병원 뜰로 나왔다. 며칠 을씨년스럽더니 오늘은 정말 봄 날씨 같다. 매점 앞 화단을 지나는데 봄의 기운을 알리는 매화꽃 봉오리가 벌써 터질 듯이 탱탱하다. 매화꽃을 좋아하던 남편도 산책할 때면 꼭 이곳에 와 앉았다 가곤 했었다. 남편이 떠난 몇 년 사이에 매화나무도 갱년기를 앓는지 군데군데 껍질이 패었다.

내려온 김에 1층 원무과를 지나 파리바게뜨가 있는 카페까지 왔다. 열어 놓은 문 사이로 달콤한 빵 냄새와 구수한 원두 커피 향이 날아와 코끝을 간질인다.

“음, 커피 냄새 좋다. 그죠?”

노란색 대학병원 로고가 새겨진 환자복 위에 체크무늬 담요를 두른 남자가 나를 바라보며 착하게 웃는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샀다. 앉아있는 남자는 한 번씩 냄새만 맡고 홀짝홀짝 내가 다 마셨다. 날이 좋아서인지 줄지어 선 휠체어의 은색 바퀴들이 움직일 때마다 누더기가 된 햇살이 총총거리며 뒤를 따른다.

맞은편에서 환자를 태우고 나온 명희 씨가 나를 보고 수줍게 웃는다. 이 병원에는 세 개의 간병단체가 들어와 있다. 그중에 나는 천주교 단체인 소망간병에 속해있다. 같은 소속인 명희 씨는 조선족으로 연변에서 온 여자다. 요즘은 조선족 간병사가 늘어난다고 하더니 우리 병원에도 조선족 여자가 꽤 있는 것 같다. 명희 씨는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한국말이 어눌하다. 하지만 마음이 따뜻하고 친절해 환자들한테 인기가 많다. 나도 처음에는 명희 씨처럼 부끄럽고 서먹해 낯을 가렸는데 3년을 같은 병원에서 지내다 보니 이젠 가족 같은 느낌이 든다. 밥도 같이 먹고 운동도 하고 걱정도 같이 나누며 자매처럼 지낸다.

구급차가 즐비하게 서 있는 응급실을 지나 병동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금요일이라 그런지 환자용 엘리베이터 앞에 기다리는 침대가 여러 개다. 매일 수십 명씩 퇴원하는데 무슨 환자가 이렇게 많은지, 환자용 엘리베이터가 3개나 되는데 항상 만원이 되어 올라간다. 뇌수술하고 의식도 없는 사람, 캐뉼라를 한 사람 등, 대학병원이라 그런지 대부분이 위중한 환자들이다.

병실로 들어오니 간이의자에 샤넬 로고가 그려진 가방이 놓여있다. 우리가 들어가는 기척에 화장실에서 나오던 남자의 누나가 환하게 웃는다.

“바람 쐬러 나갔었니? 어? 너 목 뚜껑 뽑았구나! 다행이다. 좋아 보인다?”

금방이라도 주황색 물이 톡톡 터질 것 같이 싱싱한 오렌지 껍질을 벗기던 누님이 남자 입에 큼직한 오렌지 한 조각을 넣어준다. 오렌지는 남자가 받아먹는데 웬일인지 빈 내 입에 침이 가득 고인다.

“애들 엄마한테 전화는 왔었니?”

“네. 그저께 저녁에요.”

"미친년, 뭐라고 하디?”

가만히 듣고 있던 남자가 성난 얼굴로 누나를 등지고 돌아눕는다.

“너는 그런 걸 마누라라고 아직도 감싸고도는 거니? 니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병이 생겼는데, 아침밥을 한번 챙겨주길 해? 시부모님을 잘 모셨어? 애초에 그년하고는 안 맞는 결혼이었어.”

“그만 좀 해요.”

“내가 너무 속상하고 억울해서 그래. 죽도록 박사학위까지 따고 교수 돼서 그년 좋은 일만 시켰잖아. 하늘에 계신 부모님이 뭐라고 하시겠니? 죽 쒀서 개 줬지 뭐. 너도 정신 차려.”

“퇴원하면 이혼해. 그년 이상해. 아무래도 거기서 안 들어오는 것을 보면 남자 있는지도 몰라.”

통통한 몸에 과하다 싶게 짙은 분홍색 코트를 입은 누님이 한바탕 푸닥거리를 하는 듯하더니 빨간색 샤넬 가방을 들고 휑하니 나가버렸다.

누님이 왔다 가고 며칠 동안 잠만 자던 남자가 다시 활기를 찾았다. 재활운동을 다니면서 간호사들과 농담도 곧잘 주고받았다. 겨울의 끄트머리에서 숨바꼭질하던 봄이 꿈틀거리는 대지를 흔들어 깨웠다. 병원 뜰에는 입이 근질근질한 매화꽃의 수다로 시끌벅적하다.

며칠째 노트북하고 씨름하던 남자가 벌써 강의준비를 하는지 오늘은 몇 시간째 움직이질 않는다. 남자가 컴퓨터 작업을 하는 사이 잠깐 집에 다녀오기로 했다. 다른 간병사들은 가족들이 교대를 해주어 한 달에 두 번은 유급휴가를 받는데 우진 씨는 교대해 줄 가족이 없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한 명 있는 누나가 말만 금쪽같은 내 동생이라며 호들갑을 떤다. 만약 그녀한테 병실 철제의자에서 잠을 자라고 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차마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연락도 없이 왔더니 예상대로 친정어머니는 집에 안 계신다. 어머니는 요즘 경로당에서 10원짜리 고스톱에 재미를 붙였다. 남편이 떠나고 난 후 내가 친정어머니를 모시게 되었다. 아니, 모시고 산다는 말은 핑계고 내가 친정엄마 득을 크게 보고 있는 셈이다. 엄마가 쌍둥이들을 키워주니 병원에서 밤을 보내도 안심이 되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물 말아 놓은 매나니 한 그릇이 그대로 놓여 있다. 아래 칸에는 양념이 다 말라붙은 지고추 무침이 뚜껑도 없는 플라스틱 통에 담겨있다. 손자들은 소시지 볶음에 계란말이까지 별별 것 다 해먹이면서 당신 입맛은 정말 유행도 안 타는지. 친정엄마는 평생을 찬밥에 물 말아 빨갛게 무친 지고추 하나로 드셨다. 그놈의 소박한 식성은 언제쯤 변하려는지. 괜히 냉장고를 열어보았다는 생각에 부아가 치민다. 아무리 혼자 드시는 밥이지만 된장찌개라도 끓여 드시면 얼마나 좋을까.

보름 만에 집에 와서 방바닥에 엉덩이 한 번 못 붙이고 속옷만 챙겨 나왔다. 남자 혼자 두고 온 것이 불안해 급하게 택시를 잡아탔다. 응급실을 지나 원무과 앞에서 내리는데 매화나무 아래 벤치에 낯익은 모습이 보였다. 스마트폰에 중독된 애들처럼 머리를 숙이고 손가락으로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사람은 우진 씨였다.

“우진 씨! 거기서 뭐 하고 있어요?”

한국에 안 들어오겠다는 와이프와 며칠 동안 전화로 신경전을 벌이던 남자가 오늘은 들뜬 모습으로 딸애와 카톡 문자를 주고받고 있었다. 호주와 한국의 거리가 얼만데 그 먼 곳에서 휴대폰 문자 하나로 연락이 가능하다니. 정말 세상이 좋아진 것 같다. ‘카톡, 카톡’하며 앙증맞은 아기의 목소리가 울릴 때마다 남자의 큰 눈이 더 커졌다.

작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했다는 큰딸애가 파란 눈을 가진 남자친구와 찍은 사진을 보내온 모양이다. 사진을 클릭해 보여주며 사주에도 없는 파란 눈 가진 사위 보게 생겼다며 큰소리로 웃는다. 전형적인 딸 바보처럼 따뜻하게 웃는 남자가 참 착해 보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번쩍 정신이 들었다.

“어,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네. 큰일 났네요. 저녁밥 왔겠어요.”

곤드레나물을 좋아하는 남자가 된장찌개 한 숟가락을 떠 넣고 비벼 맛있게 저녁을 먹고 있는데 복도가 소란스럽다.

무슨 일이 생겼나. 복도로 나와 보니 어젯밤에 집중관리실로 갔던 명희 씨가 바쁜 걸음으로 뛰어다녔다. 명희 씨가 보는 할아버지가 꽤 위중한 모양이다. 아직 일흔 중반인데, 몇 년 더 사셔도 될 텐데. 배선실에 식판을 갖다 놓고 나오는데 중년 여자가 집중관리실 문턱에 기대어 울고 있다. 가족들이 모인 것을 보니 아무래도 오늘 밤을 못 넘기실 모양이다.

흰 가운을 입은 의료진들이 연방 뛰어들어가고 간간이 가족들의 울음소리가 병실 복도로 새어나온다. 병실 하나를 사이에 두고 생과 사를 넘나드는 집중관리실을 지날 때면 나도 모르게 자꾸 걸음이 빨라진다.

차가운 저녁이 거리에 던져지고 급하게 풀어 놓은 어둠이 침묵과 한데 엉킨다. 이중창이 이빨처럼 맞부딪히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잠깐 현기증이 일며 5년 전 떠난 남편 생각이 났다.

남편이 떠나던 날은 참, 따뜻했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던 긴 겨울을 보내고 맞는 2월의 하늘은 푸르다 못해 눈이 시렸다. 추위를 이기고 2월에 꽃을 피운 장한 매화꽃이 눈부시게 아름다워 더 슬펐다.

남편의 주치의가 일주일 전부터 피검사 수치가 눈에 띄게 좋아진다고 해서 손톱만큼도 죽음을 생각하지 못했다. 떠나기 이틀 전날도 남편은 호박죽을 제법 먹고 요플레도 한 개 먹어 기분 좋게 잠이 들었다. 자다가 새벽녘에 가래 끓는 소리가 났다. 입에 마우스를 넣어 두세 번 가래를 뽑았는데 선홍색의 피가 조금 섞여 나왔다. 얼른 간호실로 달려가 말했지만,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던 담당 간호사는 조금 더 지켜보겠다고 했다. 그날따라 남편은 아주 편안하게 잠을 청했다.

하늘색 블라인드 사이로 말랑말랑한 햇살이 들이쳤다. 아침밥으로 들깨 뭇국과 두부 시금치 무침이 나왔다. 8시가 훨씬 지났는데 남편은 눈을 뜨지 않았다. 모처럼 가리개를 밀어젖히고 창문을 열어 퀴퀴한 냄새를 환기시켰다. 소독약을 묻혀 침대 주변을 닦고 아침부터 소란을 피우는 데도 남편은 잠에 취한 듯 일어나지 않았다.

교수님의 회진이 시작되는 11시가 될 때까지도 눈을 감고 있던 남편이 숨이 차는 것 같다며 얼굴을 찡그렸다. 갑자기 왜 숨이 찰까 싶어 산소를 올려다보니 여전히 10ℓ가 들어가고 있었다. 병실을 돌던 수간호사가 남편을 보더니 산소 수치를 11ℓ로 올렸다. 그래도 남편의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왜 그러지. 어디가 안 좋아지나. 어제까지만 해도 피검사가 좋게 나오고 이산화탄소 수치도 많이 줄었다고 했는데.

주치의가 와서 남편의 가슴에 청진기를 댔다. 혹시 가래가 많이 찼을지도 모르니 썩션을 해주라고 했다. 수간호사가 썩션을 하니 가래 통에 피가 가득했다. 병실을 드나들던 의료진과 간호사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조바심이 났다. 좋아져서 재활 시작한다더니 왜 이러나 싶어 남편한테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1시간 뒤에 혈관 조영술을 하겠다던 주치의는 연락도 없고 간호사들만 남편의 혈압과 산소 포화도를 수시로 적어갔다.

하룻밤이 꼭, 받아둔 죄목처럼 길게 느껴졌다.

꿈결인지, 생시인지 모를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순간 내 눈을 의심할 만큼 남편은 심하게 각혈을 하고 있었다. 입으로 코로, 캐뉼라를 막았던 구멍 사이로 온통 시뻘건 피가 울컥울컥 쏟아졌다. 주치의가 도착하고 담당 교수가 왔을 때 남편은 이미 기도가 막혀 혈압과 산소 수치가 급속히 떨어지고 있었다. 모니터에서 삑삑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혈압을 가리키는 숫자가 낮아졌다. 갑작스러운 각혈에 사색이 된 교수님이 급하게 전화를 하더니 서둘러 남편을 집중관리실로 옮겼다.

10분, 20분, 시계의 큰 바늘이 분주하게 돌아가고 남편의 숨이 멈추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농담처럼 늘 매화꽃이 피는 봄에 떠나고 싶다고 하더니 남편은 다짐이라도 한 듯 매화꽃 피는 봄날에 떠났다. 혹독한 추위를 이기고 가장 먼저 꽃을 피워내는 매화나무처럼, 의식이 가물가물하던 남편이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얼굴을 한 번씩 다 만나보고 난 지 열흘 만이었다.

남편을 보내고 나서 나는 봄을 맞이하는 것이 두려웠다. 해마다 매화꽃이 피는 봄이면 시든 꽃잎처럼 맥없이 방에 갇혀 있곤 했다.

지퍼를 채우듯 병동을 채워나가던 어둠이 658호 병실을 헹구고 나갔다. 요즘 한창 뜨는 드라마 ‘미나의 거리’가 끝나자 남자가 침대에 바르게 누웠다. 며칠 전 남자한테 드라마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을 많이 닮았다고 했더니 남자는 요즘 ‘미나의 거리’는 안 빼놓고 본다. 오늘도 드라마보다는 남자 주인공의 얼굴에 더 관심이 많던 남자는 이불을 끌어 덮으며 싱겁게 웃는다.

지겹던 항암치료도 끝나고 몸 상태가 좋아진 남자는 5월에는 학교로 돌아간다고 한다. 이제 2개월 정도밖에 안 남았다. 그동안 호주에 있는 와이프가 한국에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아직 와이프한테는 연락이 없는 것 같다. 예정에는 없었지만, 남자가 퇴원하면 나도 친정엄마를 모시고 여행을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퇴원환자가 있어 병실에 침대가 두 개나 비어 조용해졌다. 오랜만에 꿀맛 같은 귀잠을 잤다. 남자의 기척에 놀라 눈을 뜨고 아직 촉촉하게 젖어있는 잠을 창문에 내거니 새벽이다. 흐음, 양팔을 벌려 옆구리가 아프도록 기지개를 켜고 알코올 냄새가 밴 첫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커튼도 걷지 않은 이른 새벽부터 아빠 힘내라는 멋울림이 남자의 휴대폰을 타고 힘 있게 흐른다.

어느새 일어났는지 남자는 누구와 약속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끔하게 면도까지 마친 얼굴이었다. 금방 면도해 아래턱이 파르스름한 남자한테 휴대폰을 건넸다. 호주에 있는 와이프한테 온 전화였다.

“응, 나야. 아침부터 무슨 일로?”

귀찮다는 듯이 퉁명스럽게 받던 남자의 목소리가 갑자기 한 옥타브 높아졌다.

“어, 뭐라고? 다음 달에 들어온다고?”

전화를 받는 남자의 얼굴이 침대 위에 걸린 분홍색 가리개처럼 환해졌다. 남자를 간병하는 동안 처음 보는 행복한 낯빛이었다.

와이프가 온다니 저렇게도 좋을까. 평소 냉정하리만큼 침착하고 교과서처럼 반듯한 남자가 침대에 걸터앉아 스킨과 로션을 덜어 바르면서도 연방 입술이 실룩거린다.

피식, 웃음이 나며 6개월 전 남자를 처음 만나던 날이 생각났다. 워낙 예민하고 까다로운 사람이라 내가 해줬으면 좋겠다는 수간호사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간병사 몇 명이 거쳐 갔다는 남자를 맡고 나서 나도 처음 며칠은 고민이 많았다. 폐암 수술하고 투병생활 하는 동안 가족도 옆에 없고 이미 여러 번의 항암치료로 지칠 대로 지쳐있던 남자는 삶을 포기한 듯 표정이 없었다. 옆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무관심한 남자의 태도가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더 견디기 어려웠다. 다른 환자들처럼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거나 거칠게 행동하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 같았다.

미장원에 갈 시간도 없어 어깨까지 늘어진 머리를 손수건으로 대충 동여 묶고 창문을 열었다. 괜한 생각으로 헝클어진 기분을 떨치려 시트를 갈고 베갯잇도 새것으로 가져왔다. 내친김에 베드를 가리는 커튼까지 갈아 끼우고 나니 기분이 한결 밝아졌다.

체크무늬가 잔잔하게 그려진 분홍색 가리개용 커튼에서는 아직도 새물내가 물씬 풍겼다. 흠, 가리개 하나 바꾼 것이 이렇게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낼 줄이야.

이 세상에 혼자 버려진 것 같고 가장 불행한 여자인 줄 알았던 내가 환자를 돌보면서 나 자신이 부끄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5년 전 남편을 보내고 깜깜한 방구석에 무당벌레처럼 무릎을 감고 앉아 있을 때 나를 어두운 방에서 꺼내 준 사람도 바로 환자다. 내다 버린 짐짝처럼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 같던 내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기에 어두운 방에서 털고 나올 수 있었다.

낡은 필름처럼 잃어버렸던 아픈 발자국들이 씀벅씀벅 고개를 든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남편은 소심하고 잔소리가 심했다. 워낙 가부장적이고 무뚝뚝한 성품 탓에 따뜻한 말 한마디 못 듣고 살았다. 외아들로 자라 자기중심적이었던 남편은 아들 쌍둥이를 낳아 기르면서도 기저귀 한번 갈아주지 않던 남자였다.

혼자서 쌍둥이를 등에 업고 밤을 새울 때에도 코를 골며 잤다. 그런 남편을 볼 때면 이 남자는 종족 번식 때문에 결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하지만 병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마치 내가 환자의 주인 같았다. 내가 돌보던 환자의 건강이 좋아지면 덩달아 신이 나고 우쭐해졌다. 생명에 불이 꺼져가던 환자가 건강해져 퇴원할 때면 살아있다는 것에 희열을 느꼈다. 내 생전에 누구 앞에서 이렇게 빛났던 적이 있었던가.

누군가의 가리개로 사는 것이 이렇게 값지고 보람 있는 일이라는 것을 왜, 남편과 살 때는 깨닫지 못했을까. 늘 윽박지르고 내 위에 군림하려 하는 남편을 밀어내려고만 했지 한 번도 남편이 있어 아이들과 내가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중년의 나이에 제대로 일을 찾은 것 같다. 간병사로 일하면서 나는 잊고 살았던 내 정체성을 되찾았다. 만약, 내가 간병 일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어느 허리쯤에 서 있을까.

한낮의 묵은 시간을 털어낸 어둠이 위에서부터 차근차근 내려앉았다. 남자는 누님이 사온 묵은지 보쌈과 과일 샐러드로 저녁을 먹고 양치질까지 일찍 마쳤다. 가리개 뒤에서 비밀스럽게 전화를 받던 남자가 슬며시 다가와 내 팔을 잡는다. 뭐 필요한 것이 있느냐고 눈으로 묻는 내 손을 무작정 잡아끌더니 엘리베이터 앞에 선다.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올라오는 의료진들이 남자와 나를 번갈아 보며 아는 척을 한다. 그들 중에는 검은색 뿔테 안경을 낀 남자의 주치의도 끼어있었다. 올봄에 결혼한 맘 좋기로 소문난 내과 전공의는 누구와 문자를 하는지 스마트폰을 보고 웃느라 와이셔츠 단추만 한 눈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남자가 나를 데려온 곳은 매화나무가 서 있는 1층 카페였다. 병원에 있는 커피숍치고는 인테리어에 많은 신경을 쓴 근사한 카페다.

카페에는 햄버거와 커피로 늦은 저녁을 때우는 의료진들의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퇴근길에 빵을 들고 계산대에 서 있던 수간호사도 반갑다며 손을 흔든다. 우리도 유리창 옆 갈색 가리개가 놓인 네모난 탁자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기 왜 왔는지 궁금하죠? 이제 나도 빚 좀 갚으려고요.”

간결하면서도 정중한 어투로 말을 꺼내던 남자가 갑자기 밖으로 나가더니 작은 종이가방을 들고 왔다. 내 앞에 와서도 멋쩍은 듯이 한 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던 남자가 내 손을 벌려 무언가를 쥐여 준다.

엉겁결에 받은 물건에서 날카롭고 차가운 금속성 느낌이 전해졌다. 손을 펴보니 남자가 선물로 건넨 것은 직사각형의 가리개 모양을 한 앙증맞은 18K 휴대폰 걸이였다.

언젠가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남자한테 우린 서로에게 가리개라고 말한 것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 탁자 위 꽃무늬 러그에 떨어졌다.

남편이 떠난 뒤,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워 죽을힘을 다해 참고 있었던 눈물이었다. 눈치 빠른 남자는 재빠르게 내 휴대폰을 빼앗아 가리개 걸이를 매달아 주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둠이 잠식했던 탁자 위에서 작은 가리개가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아슴아슴, 걸어온 발자국이 아프다. 사물이 오래되면 사람의 색을 닮는 것처럼 가끔 문을 열고 나서면 체납된 고지서 같은 그리움만 먼지처럼 현관문에 쌓여있었다. 이제 그 문을 가로막던 누더기 같은 빗장을 걷어내고 홈홈한 음표를 걸어두어야겠다.

내 심장이 주는 느낌을 여과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이런 기분이 얼마 만인가. 혼자되고 난 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사치스러운 감정이었다.

나는 시간을 잃어버렸던 사람처럼 아주 오랫동안 휴대폰에 매달린 가리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소설 당선소감/박종희

우연이었는지 모르지만, 병실에서 링거를 꽂고 누운 채 당선소식을 들었습니다. 창밖에는 팝콘만 한 눈송이가 날리고 있었습니다. 순간, 병원에서 보낸 시간이 머리를 풀어헤치듯이 나풀거리며 내 시야에서 아른거렸습니다. 지난 2년 동안은 직장보다 병원에 있던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꺼져가는 촛불처럼 생사를 넘나드는 친정어머니 옆에서 웅크리고 자다가 새벽에 간병인과 교대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정말 많은 눈물을 쏟아냈던 것 같습니다.

친정어머니를 간병하면서 가래를 뽑고 기저귀를 갈다 보니 어느새 내가 간병인이 되어있었습니다. 하루하루 안타깝게 바라보던 친정어머니가 10개월 전 내 곁을 떠나셨습니다. 투병하시는 8개월을 내가 간병할 수 있도록 어머니는 제게 아주 큰 선물로 주고 가셨습니다.
 
부모님 간병하느라 내려놓았던 펜을 다시 잡았습니다. 친정어머니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지기 전에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쓰자고 다짐했습니다.

수필만 써온 제가 감히 소설을 넘겨다봤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고 부족한 글을 당선작으로 올려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늘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나보다 더 불행한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의 삶을 글 속에 따뜻하게 담아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게 기회를 주신 동양일보에 누가 되지 않도록 언어 다듬는 일을 손에서 놓지 않겠습니다.

부족한 글에 언제나 칭찬을 아끼지 않는 남편과 내 글에 최고의 비평가인 딸애한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내게 가리개인 두 사람이 있어 정말 행복합니다. 어머니를 먼저 떠나보내고 쓸쓸히 병원에 계시는 친정아버지와 작은 며느리가 최고라고 추어올리는 시어머니께도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오늘의 이 기쁨을 나를 아는 모든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약력

전국 10회 시흥문학상 우수상, 5회 올해의 여성문학상, 2회 대전일보사 효 문화 글 공모전 대상, 17회 매월당 문학상 등 수상.
저서 수필집 ‘가리개’
청주시 1인 1책 펴내기 지도강사 역임.
현 한국작가회의 회원, 충북여성문인협회 부회장, 충북수필문학회 총무, 한국산문작가협회 회원. 충북작가회의 사무국장.

○소설 부문 심사평

군더더기 없이 단편의 기본 틀에 충실한 작품.

응모된 작품이 모두 27편(24명)으로 예년에 비해 다소 줄었다. 예심에서 추려 놓은 5편의 문장이나 구성능력이 고만고만해서 당선작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만찬(민경석:창원)은 장애인부모 교양강좌를 추진하는 과정을 통해 노출 되는, 가식과 위선에 찬 인간군을 고발한 작품이다. 등장인물들의 이중적 특징을 잘 살려내고 문장이나 구성에도 별다른 험이 없지만, 인물들의 내면을 좀 더 깊이 파고들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수상한 시절(김유현:고양)은 정신박약 소년을 조롱과 학대로 폐인이 되게 한 주변인들의 잔혹성과 함께, 이를 방관한 어릴적 기억으로 죄의식을 품고 있는 화자(話者)의 갈등을 그렸다. 주제는 명확하나 전개과정이 복잡하고 지루한 반면, 결말은 상식선을 넘지 못했다.
살바시온(류희병:서울)은 칠레의 산티아고가 무대다. 광주사태 진압군이었던 한국인 이민자와 칠레 혁명군으로 연적을 사살한 아버지를 둔 본토 여인이 우연히 만났으나, 서로가 지닌 죄의식을 확인하고 번민한다는 이색소재다. 문장이 정확하고 리듬마저 느껴질 만큼 단련됐다. 그러나 여인의 잠적과 주인공의 자해결심이 두 사람의 번민을 해결하는 길인가? 도피성이민 후에도 오랫동안 죄의식에 시달려 온 주인공의 처신이 새삼스럽고 작위적이지 않은가,  여운의 여지없이 도식적으로 맺어진 결말이 안이한 느낌이다.   
불루문(이귀순:호주)역시 이국땅 호주가 무대다. 산불로 아들을 잃은 주인공의 처절한 심경이 긴박감마저 느껴질 만큼 속도감 있게 서술됐다. 이색 소재에 이국적 상황묘사도 흥미를 자아내게 하는 부분이다. 아들의 골분상자를 바다로 띄워 보낸 뒤 고통과 맞서 실성한 듯 ‘물치기’에 몰두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말 그대로 애절하다. 3박자의 물소리는 가슴을 울리는 여운을 남긴다. 굳이 험이라면 재앙을 부르는 ‘불루문’ 탓인가 사건과 상황설정에 우연과 돌발성이 지나치다는 점이다. 소재의 정선과 압축, 사건의 필연성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
가리개(박종희:청주)는 단편소설의 기본 틀에 충실한 작품이다. 간병사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한 단계 높일 만큼, 주인공의 역할과 심리변화 과정이 소상히 서술 됐다. 주인공이 자기존재를 확인해 가는 작품 전체의 분위기는 물론, 환자와 간병사 사이의 교감도 역시 따듯하다.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섬세한 표현은 작가의 예리한 관찰력과 문장력을 짐작케 한다. 아주 새롭다거나 기발하지는 않으나, 군더더기가 별로 없다. 이만큼 기초가 잡힌 상태라면, 장차는 자기 나름의 개성 있는 작품세계 구축도 가능하리라 믿어 당선작으로 뽑았다.
최종심에 오른 5편 모두가 내려놓기 아쉬운 작품들이다. 관점에 따라 결과가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더욱 정진하기를 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안수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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