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문학상 수상자 한만수 소설가, 대하장편소설 ‘금강’ 15권 완간

 

(동양일보 조아라 기자) 한국전쟁 이후 격변의 반세기. 굴곡진 세월 속에 모진 풍파를 온 몸으로 맞으며 살아온 민초들의 맨 얼굴을 들여다본다.

동양일보 주최 5회 무영문학상 수상자인 한만수(60·사진·충북 영동·☏010-6224-3765) 소설가가 최근 대하장편소설 ‘금강’ 15권을 완간했다.

‘금강’은 무영문학상 수상작이며 실천문학사에서 신인상을 받은 장편소설 ‘하루’를 모태로 한 작품. 저자가 12년에 걸쳐 완성한 대작으로 분량만 200자 원고지 2만장에 달하는, 길고 지난했던 집념의 시간이 낳은 산물이다.

은행과 보험회사를 17년 간 다니며 틈틈이 습작을 하던 한 소설가는 1990년 무작정 전업 작가로 나섰다. 직장에 다니는 동안 월간 ‘한국시’에 ‘억새풀’로 등단, 베스트셀러 시집 ‘너’를 비롯 몇 권의 시집을 출간하기도 했지만 전업 작가로서의 삶은 쉽지 않았다. 10년 간 오로지 생계형 작가로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손가락에 진물이 나도록 글을 썼던 그는 어느 순간, 가슴 속에 화석으로 간직돼 있던 대하장편소설의 꿈을 펼치고 싶다는 생각에 ‘금강’의 집필을 시작한다.

“전업 작가 생활을 시작하고 거의 10년 간 소위 팔리는 글을 많이 썼어요. 당시는 일단 써야만 먹고 살 수 있었기에 절실했지요. 그런데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갈등이 많이 왔어요. 그러다 책에 대한 인세 5억 정도를 못 받게 되는 상황이 생겼고, 이 기회에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자는 생각을 했죠. 중앙 문단에서 인정받기 위해 ‘하루’를 썼는데 여러 상을 받으면서 용기가 생겼고, 2002년 ‘금강’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당시 생활상의 고증이었다. 통계청 자료는 1970년대 후반부터 있어 당시를 정확하게 묘사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2만장의 원고가 15권의 책으로 출간되기까지의 과정도 결코 쉽지 않았다. 어느 출판사에서도 15권 분량의 장대한 분량의 원고를 활자화해 세상에 내놓으려 하지 않았다. 애초 1권은 ‘놉’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으나 출판사가 부도가 나며 2권은 기약이 없게 됐다. 이후 출판사를 찾지 못해 몇 번이나 중도에 집필을 포기하기도 했다.

“고생 끝에 지금의 출판사를 만나게 됐는데 마침 편집장이 청주 사람이었고, 이런 원고를 기다려왔다며 반겨줬습니다. 이태곤 편집장이 없었다면 이 책은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탈고를 한 지금,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작품은 한국전쟁 직후 50년대 중반부터 밀레니엄 시대에 돌입하는 2000년도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다. 충북 영동의 모산이라는 마을에서 ‘놉(하루하루 품삯과 음식을 받고 일하는 품팔이 일꾼)’으로 살아갔던 민초들의 삶이 그려진다. 일제 식민지 지배와 해방, 광복 이후 6.25 전쟁과 산업화, 민주화를 거치는 격동의 세월에 휩쓸리며 살아간 이들은 절망과 좌절로 점철된 삶을 살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서종택 고려대 명예교수(소설가)는 “앞서 살아간 사람들의 욕망과 좌절, 음모와 희생의 역사를 통해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입은 상처를 적나라하게 들춰내고 있는 이 소설은 앞으로 닥쳐올 역사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통렬하게 묻고 있다”고 평했다.

이 책에는 특별한 주인공이 없다. 굳이 꼽자면 모산 마을 사람들 모두가 주인공이다. 박경리의 ‘토지’, 최명희의 ‘혼불’, 조정래의 ‘태백산맥’ 등 기존의 대하소설들이 주로 지배계급층이나 이데올로기를 주제로 하고 있는 반면, ‘금강’은 순수한 민중을 주인공으로 한 근현대사 소설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소설 속 사람들의 이야기는 곧 책을 읽는 독자들의 이야기이며, 과거의 이야기는 현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1950년대 중반부터 2000년까지 당시의 물가, 사회적 사건, 정치적 변화 등이 철저한 고증에 의해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기술돼 당시 사회사를 연구하는 자료로서도 활용이 가능하다. 주점에 앉아 마시는 술 한 병의 가격이나, 결혼식 때 입은 양복 한 벌 가격까지 그대로 녹아 스며 있다.

저자는 “(모산은) 우리나라 어느 산골이나 어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마을”이라며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어떤 모양으로 반세기를 살아왔고, 당시 태어난 사람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 궁금증을 풀어가는 것이 이 소설의 주제”라고 설명했다.

‘금강’의 뛰어난 문학적 가치는 완벽한 리얼리즘을 통해 작가의 개입을 철저히 차단시켰다는 것. 저자는 소설 집필에 있어 전체적인 아웃라인만 잡았을 뿐 세부 구성을 하지 않고 작품을 완성했다. 작가가 숨결을 불어 넣은 작중 인물들은 스스로 생생히 살아나 저마다의 스토리를 끌고 나간다.

한 소설가는 “작가의 힘이 개입된 부분은 1권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정도”라며 “그 캐릭터들도 ‘금강’에서만 볼 수 있는 별나거나 특수한 캐릭터가 아니고, 우리나라 산골의 어느 동네에 가거나 쉽게 볼 수 있는 지극히 전형적이고 평범한 캐릭터”라고 밝혔다.

작가는 그저 관찰자로만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다. 한 소설가는 작가인 동시에 독자로 모니터 앞에서 혼자 웃고, 울고, 분노하며 손가락 가는 대로 작품을 썼다. 철저하게 구성하지 않고도 스토리가 마치 짜 맞춘 것처럼 짜임새 있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저자는 소설적 재미, 물가와 문화, 정치적 현실을 철저히 지켜 나가면서 각 등장인물의 캐릭터에 철저하게 몰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금강’에 등장하는 모산 동네 사람들은 반세기를 살아온 우리의 거울입니다. 소설의 시작부터 대단원까지 작가의 개입은 철저히 차단하고 모산 사람들이 살아가는 과정을 카메라로 추적만 했습니다. 소설 ‘금강’이 현대사의 거울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바로 그 점에 있습니다.”

글누림. 각 권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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