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논설위원 / 사회학박사)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마음이 들뜨는 크리스마스도 지나고 이제 2014년이 딱 닷새밖에 남지 않았다. 나라 안팎으로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갑오년의 365일이었다. 세계경제포럼이 11월에 발표한 ‘2014년 글로벌 성 격차 보고서(Global Gender Gap Report)’에서 우리나라는 조사대상 142개국 중 117위를 기록하여 작년보다 6단계나 하락했고, OECD 국가 중 대졸이상의 여성 고학력자가 최고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경제활동 참여율이 최하 수준인 현실을 직시하면서 2014년 여성계의 주요뉴스를 돌이켜본다.
5월에는 1995년 제정 이래 19년 동안 여성정책의 근간이었던 「여성발전기본법」이 「양성평등기본법」으로 전면 개정되어 2015년 7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여성발전기본법」이 여성에 대한 발전론적, 시혜적 접근을 통한 개인적 남녀차별해소에 집중했다면, 「양성평등기본법」은 여성과 남성의 권리와 책임을 함께 규정하며 사회구조적 차별개선에 중점을 두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동안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가치와 권한을 보장할 수 있는 기본법의 개선이 절실했던 만큼 「양성평등기본법」의 탄생은 매우 환영할만한 일로 우리사회의 양성평등 실현을 추진할 동력이 될 것이다. 더욱 의미 있는 일은 새누리당 신경림의원과 새정치민주연합 김상희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여성발전기본법 전부개정법률안」과 2개의 일부개정법률안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법률안의 내용을 심사하고 통합?조정하는 과정에서 각계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고 양당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해 낸 국회 입법 활동의 모범을 보인 법안이라는 점이다.
6월에는 일본의 아베 내각이 1993년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동원을 최초로 인정했던 고노 담화의 근간을 뒤흔드는 ‘고노담화 검증 결과’를 발표하면서 우리 정부와 여·야정치권은 물론이고 유엔과 국제사회가 한 목소리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태도를 규탄하며 공식적인 사과와 책임을 촉구하고 나섰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UN HRC)는 위안부(comfort women)를 지칭할 때 ‘강제 성노예(enforced sex slave)’란 직접적 표현을 쓰도록 권고했고, 나비 필레이 당시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일본 정부에 포괄적이고 공평하며 영구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으며,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서는 일본 정부에 피해자들의 권리 침해를 조사하여 가해자들을 처벌하라고 권고했다. 한국, 중국, 대만, 필리핀,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들을 비롯해 네덜란드와 호주가 피해 당사국인 일본군 위안부문제는 여성의 인권을 유린한 무력분쟁 하의 성폭력 문제로 국제사회가 힘을 모아 반드시 청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9월에는 중소기업중앙회 비정규직 여직원이 상관들로부터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알렸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슴 아픈 사건이 발생했고, 10월에는 육군 17사단 사단장이 부하인 여군 부사관을 지속적으로 성추행한 혐의로 긴급 체포된 사상초유의 사건과 현직 육군 중령이 부하 여군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되는 사건이 잇달아 발생됐다. 게다가 최근에는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가 6년 동안 여학생 9명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 기소되었고, 그 외 다수의 대학들에서 일부 몰지각한 교수들이 여학생을 상대로 성추행한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도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모범을 보여야 할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권력을 이용한 ‘권력형 성범죄’에 국민들은 분노와 서글픔을 금할 길이 없다. 정부는 우리사회 전체에 만연되어 있는 다양한 형태의 성범죄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여 범죄를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해 성역 없는 수사와 엄중한 처벌을 비롯한 더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며, 특히 권력형 성범죄에 대해서는 무관용의 원칙을 철저하게 지켜 성폭력 근절의 의지를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여성이 성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우리사회는 모두가 안전한 행복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12월에는 파키스탄의 17세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역대 최연소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여성도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를 전 세계에 외친 말랄라는 탈레반의 총격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여성의 교육받을 권리와 인권을 위한 용감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 영향으로 파키스탄에서는 여성 교육권 운동이 일어나 교육권리 법안이 통과되었다고 한다. 올 한 해 동안 세계 곳곳에서 여성과 남성이 공존·공영하는 양성평등한 세상을 위해 애쓰신 모든 분들께 감사와 존경을 보내며 2014년 청마의 해를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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