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원(신성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사람들은 어릴 적 동화책을 읽으면서 천사에 대한 상상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순백의 앳된 얼굴을 하고 마술지팡이를 들었으며 날개가 달려있어서 여기저기 날아다니면서 인간을 돕는 그런 모습을 한 천사. 하지만 커가면서 순진무구한 동심이 사라지고 이성적 판단에 익숙해지면서 천사란 현실세계에서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 만든 추상적 단어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해를 마감하는 연말이 되면 우리 주위의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크고 작은 미담이 생겨나고 그렇게 남모르게 선한 행위를 하거나 기부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천사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경쟁이 심화되고 인정에 메마른 자본주의사회에서 각자 자기잇속만을 챙기고 남보다 더 갖기 위해서 다투는 것을 합리화하고 있는데 아무런 조건 없이 익명(혹은 실명)으로 자기가 가진 재능과 재산을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사람들은 분명 천사라고 할 수 있다.
 필자도 최근 천사를 보았다. 며칠 전 대전으로 출장을 갔을 때의 일이다. 친구와 저녁식사  약속을 했는데 갑자기 앞이 안보일 정도로 눈보라가 휘날리고 날씨도 영하로 떨어졌다. 귀가길이 걱정되어 식사를 마치자마자 헤어지려고 했는데 횡설수설하는 친구를 그냥 놔두고 출발하기가 미안하여 함께 있다 보니 자정이 훨씬 넘었다. 대리운전을 해서 처가로 가려고 했는데 길이 미끄럽다고 차가 오지 않았다. 결국 조바심을 하면서 직접운전을 해 처가 근처까지 갔는데 오르막길이라 헛바퀴만 돌고 차가 언덕을 올라가지 못했다. 차에서 내려 난감해하고 있는데 갑자기 골목길에서 두 사람이 나타나더니 연탄재를 길에다 뿌리는 것이었다. 감사하다고 인사를 채 하기도 전에 그들은 사라졌고 필자는 무사히 비탈길을 올라갈 수 있었다. 한동안 흥분된 감정을 자제하기 어려웠다. 하필이면 바로 그 시간 사람들의 왕래도 없는 칠흑 같이 어두운 밤에 얼굴도 모르는 두 남자가 홀연히 나타나서 길 위에 연탄재를 뿌려주고 사라진 일이 꿈만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은 그날 밤 나에게 찾아온 천사였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지도자와 기부천사들이 늘고 있다. 꾸준히 장학금을 내놓는 촌부와 CEO, 고위직을 그만두고 낮은 자리에서 봉사활동에 몰두하는 지도층과 자선활동을 하는 연예인들이 있는가 하면 자기를 밝히기를 거부하면서 크고 작은 액수를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얼굴 없는 사람들도 있다. 오른 손이 한 일을 왼손도 했다며 둘러대고 공치사를 하는 부류들도 제법 많은데 그에 비하면 이들의 행동은 너무도 아름답고 존경할 만하다.
 연말연시를 지내면서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을 보면 한결 같이 암울한 내용들이 많다. 특히 우리 사회는 선진국의 문턱으로 진입하기 위해서 진통을 겪고 있어서 그런지 사회 각 분야에서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다. 내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흑백논리가 판을 치기도 한다. 상대방을 배려한다거나 나보다 못한 사람에 대한 동정심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가진 사람들이 ‘갑질’을 더하고 없는 사람은 당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의 절망감이나 자포자기도 있다.
 하지만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힘은 무명의 천사들에게 있다. 소돔과 고모라는 선한 사람 10명이 없어서 멸망했지만 우리 사회는 이들 천사에 의해서 일정 부분 정화되고 구원받고 있는 것이다. 2015년 을미년 청양띠에는 밝고 맑은 심성을 가진 더 많은 천사들이 나타날 것을 기대하며 이들에게 감사와 격려를 미리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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