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아버지 세대에 대한 헌사'일까, 과거에 대한 미화일까.

연말 극장가에서 1위를 지키며 흥행 중인 영화 '국제시장'을 둘러싼 이념 논쟁이 뜨겁다.

영화는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며 '덕수'(황정민 분)라는 한 가장의 일대기를 담아냈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덕수의 고생담 이면으로는 한국전쟁과 독일 광부 파견, 베트남전, 이산가족 찾기 등 굵직한 사건이 지나간다.

이를 두고 한쪽에서는 "한 세대를 살아온 나의 자화상"이라며 공감하는 한편, 다른 한쪽에서는 "박정희 정권에 대한 미화"라는 비판도 나온다.

◇ "아버지에 대한 얘기"
'해운대'(2009) 이후 5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윤제균 감독은 최근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아버지에게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못한 게 평생의 한이었다"며 "언젠가는 꼭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실제로 극장가에는 중장년층의 발길이 이어졌다.

CJ CGV의 40대 이상 관람객(28일 기준)은 37.1%였고, 31일 예매사이트 맥스무비에 따르면 40대 이상 예매율은 46%다.

노년의 덕수가 어린 시절 헤어진 아버지를 떠올리며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라고 흐느끼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눈물을 훔쳤다.

이 같은 '아버지 세대'의 공감에 힘입어 지난 17일 개봉한 '국제시장'은 개봉 첫날을 제외하고 연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흥행몰이 중이다.

영화 투자·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국제시장'은 31일 오전 7시50분을 기해 누적관객수 500만명을 넘어섰다.

이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1천232만)보다 3일 빠르고 '7번방의 선물'(2013·1천281만)보다 2일 빠른 속도라고 CJ엔터테인먼트는 전했다.

◇ "싸구려 신파로 재포장"
윤 감독은 인터뷰에서 "요즘 세대 간 갈등이 심한 가장 큰 이유는 서로 이해를 잘 못하기 때문"이라며 "'국제시장'이 미력하지만 세대 간에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영화를 둘러싼 논쟁이 거세지며 세대 간 이해의 폭이 넓어지기보다 갈등이 심화되는 분위기다.

윤 감독은 "정치 부분은 뺐다"고 말했지만, 역사적 평가가 여전히 분분한 사건들을 가볍게 묘사하거나 배제하면서 오히려 역사를 왜곡해 전달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를테면 덕수가 기술 근로자로 파견 간 베트남 전쟁 장면에서 한국군은 '흥남 철수' 당시 연합군처럼 몰살 위기에 놓인 베트남 마을 사람들을 구하는 '영웅'으로만 묘사된다.

덕수의 고생담이 펼쳐지는 가운데 개인의 희생을 강요한 '국가'의 모습은 사라지고, 파독 광부 면접 도중 애국가를 부르며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애국심 투철'한 국민만 남았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한 회의에서 '국제시장'을 언급하며 "부부싸움 하다가도 애국가가 들리니까 국기 배례를 하고…"라며 국민과 공직자의 애국심을 강조하기도 했다.

'보수를 겨냥한 정치 영화'라는 논란이 불거지는 가운데 '국제시장'에 대해 혹평한 칼럼니스트 허지웅 씨의 발언을 두고 인터넷이 뜨겁게 달궈지기도 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트위터에 "감독은 정면승부 대신에, (우리 세대라면 자라면서 지겹게 들었을) 이야기를 썰렁한 개그와 싸구려 신파로 재포장해 내놓는 길을 택한 듯"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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