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취재부 부국장>

새해가 되면 모두들 희망을 말하고 기적을 꿈꾸기 마련이다.
지난 기억들 중에서 기쁘고 행복했던 일들만 기억하려 하고,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은 잊으려 하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희로애락이 모두 공존하는 것이 삶이다.
희망도 기적도 결국은 아픔과 고통이 혼재하는 삶 속에 감춰져 있는 것이며, 알지 못한 채 살아가다가 비로소 발견하는 것일 뿐이다.
누군가에 의해 주어지는 것도, 만들어지는 것도, 없던 것이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저절로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찾고자 노력하고, 얻으려 도전하고, 발견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희망과 기적을 자신의 삶 밖에서 찾으려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곤 한다.
요행을 바라고, 한탕을 노리는 것은 희망도 기적도 아님에도.
도전과 노력없이 그저 절로 주어지는 ‘불로소득(不勞所得)’은 희망도 기적도 아니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는 ‘좋은 사람의 삶은 사소하고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거나 잊혀진 친절과 사랑의 행동들로 대부분 채워진다’고 말했다.
이를 해석해보면, 좋은 삶은 사소하고 내세우려 하지 않는 친절과 사랑이 가득한 삶이다.
다시 말하면, 희망과 기적은 멀리 있거나, 삶의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 속에 있다는 말이다.
지난 주말 모처럼 한가롭게 TV 채널을 만지작거리다 이같은 진리를 새삼 깨달았다.
암으로 투병하는 한 여성과, 그를 지키는 남편과 아이의 얘기다.
그들에게 희망은 무엇일까. ‘기적처럼 완쾌돼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답을 예상했지만, “지금처럼만 서로 아끼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는 답을 내놓는다.
그들의 희망을 사소하다고 할 수 있을까. 고작 그 정도를 바라느냐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지금처럼만 살고 싶다는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암과의 싸움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과 기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사는 것처럼만 살고 싶다는 그들의 소망은 고통도 아픔도 원망도 모두 녹여낸 절절함이다.
또 하나는 10년 넘게 바닷가 모래 위에 그림을 그리는 한 미국 예술가가 건네 준 깨달음이다.
‘그리면 바로 지워지는 그림을 왜 힘들게 그리고 있을까’하는 생각은 그의 말을 듣고는 어리석음과 부끄러움으로 바뀌어버렸다.
“무엇인가 나를 행복하게 해주길 바라지 말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을 찾으면 된다. 그러면 행복해진다.”
캔버스에 그려도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을만한 그림들을 그리자마자 파도가 휩쓸어버리는 모래밭에 그리는 이유는, 스스로 행복하기 때문이란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누군가 기억해줄 수 있도록 남겨지는 그림도 아니지만, 물질적 풍요나 사회적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일도 아니지만, 정작 본인은 행복하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 하고, 물질적으로 풍요롭고도 싶고, 사회적으로도 명예를 얻고 싶고, 사람들이 오래도록 나를 기억해주길 바라는, 그런 것들을 희망이라 여기는 많은 사람들에겐 행복의 절대적 가치와 본질을 알려주는 좋은 삶이다.
흔히 우리는 무엇인가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을 바라고 기다린다. 하염없이, 부질없이.
그리곤 세상을 원망하고 사람들을 시기하고 스스로 절망에 빠지곤 한다. 행복하지 않다고 푸념하면서.
하지만 그는 행복을 스스로 찾아 만든다. 모두가 원하고 기다리는 행복이 아닐진대, 그 행복은 그에게 희망이고 기적이다.
결국 우리가 찾으려 애쓰는 희망과 기적과 행복들은 우리 삶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임을.
그럼에도 새로운 희망과 기적과 행복을 찾으려 먼 길을 헤매는, 삶의 밖에서 방황하는 가련한 사람들이여.
올해는 자신의 삶 속에 묻혀져 있는 존귀한 보물을 찾아보자.
소소하고 소박하고 평범한 삶이지만, 벅찬 희열과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이 가득한 자신의 삶을 축복하며.
누군가의 삶과 비교함으로써 생겨나는 원망과 후회와 절망과 시기와 질투는 스스로 지닌 행복을 찾지 못하게 하는, 스스로 지닌 엄청난 행복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게 하는 함정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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