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논설위원 / 사회학박사)

 

강 건너 산봉우리 사이로 환하게 떠오르는 새 해를 맞으며 설레임을 가라앉히고 심호흡한다.  올해는 나와 내 가족, 친구, 동료, 그리고 우리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부디 너무 견디기 힘든 아픈 일이 없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건강과, 그저 노력한 만큼의 결과는 허락되는 무탈한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모두가 힘들었던 지난해 우리 국민들은 TV 예능프로그램에 나오는 아기들의 재롱을 보며 큰 위안을 얻었고, 연말에는 역사의 질곡에서 어렵고 질기게 오늘을 마련한 우리들의 아버지를 그린 ‘국제시장’과, 그 힘든 시간을 넘어 어린아이 같이 해맑은 모습으로 인생의 황혼을 맞은 노부부의 애틋한 부부애를 그린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로 펑펑 눈물을 쏟으며 국민적 카타르시스를 경험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연말 유엔 안보리회의에서 오준 유엔 주재 한국대표부 대사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북한 주민은 그저 아무나(anybody)가 아닙니다”라는 연설로 세계인을 감동시키고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했으며, “먼 훗날 오늘 우리가 한 일을 돌아볼 때, 우리와 똑같이 인간다운 삶을 살 자격이 있는 북한 주민을 위해 '옳은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라며 연설을 마쳤다. 이 명연설은 각종 SNS와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면서 분단의 아픔과 북한 인권문제에 조금은 무딜 수밖에 없는 우리 젊은이들의 마음을 크게 두드렸다.

유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저 눈 깜빡 할 사이에 지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삶이지만, 돌이켜볼 때 옳은 일을 해야 하기에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머뭇거리거나 놓쳐서는 안 될 꼭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라도 올해에는 적어도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일 할 곳을 찾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도 낳는,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청년실업과 저출산이 우리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것은 10년도 훨씬 넘는 일이고 역대 정부가 하나같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해결을 위해 노력을 한다고는 했으나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왜 갈수록 힘이 들고 지쳐가는 것일까?

많은 20대 젊은이들은 4년 내내 스펙 쌓기와 학점관리로 여념이 없다가 졸업 학점을 다 채우고도 졸업을 유보한 채 취업 재수, 삼수를 위해 학원을 전전하고 있다. 세계적인 불황과 맞물려 실업은 어느 나라에서나 큰 문제고, 특히 청년실업은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전체 실업률의 두 배 이상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처럼 많은 고학력 청년실업은 흔치 않다.

운 좋게 취업을 해도 학자금 대출 등의 늘어난 빚, 불안정한 고용상태, 끝을 모르고 치솟는 전세값과 높은 결혼 비용 탓에 그들은 아예 결혼을 포기할 수밖에 없거나 결혼은 했지만 곧바로 ‘허니문 푸어’로 전락하게 된다. 이렇게 결혼 초부터 경제난에 시달리게 되는 30대 젊은 부부들은 임신과 출산을 거치면서 경제사정이 더욱 어려워져서 ‘베이비 푸어’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니, 이런 상황에서 젊은 세대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말 발간한 ‘2014 보건복지통계연보’에 따르면 2014년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1.187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고, 만혼 증가로 매년 올라가는 추세인 산모의 평균 출산연령은 31.84세다. 또한 통계청 추계에 의하면 15~64세에 해당하는 생산가능인구가 2016년에는 3,704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72.9%에 이르지만, 이것을 정점으로 하향하기 시작해 2060년에는 2,187만명으로 49.7%까지 떨어지게 된다고 한다.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원인 대한민국에서 저출산으로 인한 경제성장 잠재인력의 절대적인 부족과 성장동력의 고갈은 나라의 존망을 좌우하는 중차대한 과제이므로 저출산의 문제는 개인과 가족의 선택을 넘어 시급히 해결해야 할 심각한 사회 문제다.

이미 2006년에 옥스포드대학고 인구연구센터 소장 데이빗 콜만 박사는 "코리아 신드롬"이란 말로 지구촌에서 유일하게 저출산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나라를 한국으로 꼽았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선진국들의 출산정책을 예로 봐서 일자리, 육아 지원, 재정지원이 모두 중요하지만 이것을 지원해준다고 출산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출산, 양육, 교육에 대한 사회구조적 지원과 더불어 출산 당사자인 가임여성과 사회 전체의 인식과 문화에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실효성 있는 대책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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