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카리스마··· 청주 최초 여성 세무서장

(동양일보 조석준 기자)“여성특유의 부드러움으로 민원인들이 자유롭고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곳, 자율적인 직장분위기를 이끌어 직원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세무서로 가꿔 나가겠습니다.”

청주지역 최초의 여성 세무서장인 김정순(사진·56) 서장이 부임했다.


김 서장은 강원 원주출신으로 원주여고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가정형편상 대학진학을 포기해야만 해야 했고, 1977년 세무공무원으로 공직에 첫 발을 내딛었다.

모든 일을 꼼꼼하고 확실하게 처리하는 김 서장은 강원 속초세무서를 시작으로 서울청 감사관실과 조사4국, 양천세무서 소득세과장, 서울청 조사2국 조사·관리팀장을 거치는 등 국세청 여성최초의 감사관실 근무와 여성전문 세무조사팀장으로 활약했다.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의 무게가 그렇게 무거울 줄은 몰랐습니다. 마치 국세청 5000여명에 달하는 여직원을 대표해 여권신장을 위한 시험대에 올라섰다는 사명감마저 들었고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죠. 지금 돌이켜보면 여성으로서의 장점을 잘 살려서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 서장이 조사관 업무를 할 당시만 해도 국세청 소속의 여직원들은 행정보조 업무 등을 위주로 해왔다.

납세자로부터 위협을 받거나 다소 거칠어질 수 있는 조사관 등의 핵심 업무에서 배제돼 왔기 때문에 주위에선 그의 업무수행능력에 대한 걱정과 의심의 눈초리가 많았다.

결과는 우려와 달리 반전의 연속이었다. 세무조사를 위해 현장을 방문한 남성조사관에게는 대부분의 납세자들이 문을 걸어 잠그고 열어주지 않는 반면 여성조사관들의 상냥한 목소리엔 문을 열어주고 조사에 순순히 응하는 마법과 같은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그 결과 남성조사관 못지않은 업무실적으로 주변의 우려를 말끔히 불식시켰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바쁜 일과 속에서도 그의 마음 한 구석엔 언제나 가정형편 때문에 포기해야만 했던 학업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고 있었고 주경야독으로 틈틈이 학력고사를 준비했다. 결국, 1984년 단국대 경영학과에 합격했고 대학졸업 후 홍익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까지 마쳤다.

“꿈 많던 여고시절 당시 대부분의 집들이 그러했듯 힘든 가정형편에 여자가 대학진학을 한다는 것은 꿈도 못 꾸는 일이었지요. 저는 그때부터 마음먹었습니다. 여성으로서의 진정한 능력을 인정받아 여성차별을 해소해 나가겠다고.”

2007년 국세청장의 지시로 성형외과, 피부과, 산부인과, 미용실, 고급의상실, 패션산업 등 여성 특화업종에 대한 세원관리를 전담하는 여성전문세무조사팀이 발족됐다.

그동안 특별조사업무를 수행해온 국세청 정예 조사관인 김 서장을 필두로 세무대 출신의 세무사와 미 공인회계사(AICPA), 조세범전문요원, 국제조사전문요원 등 각 부서 엘리트들로 구성된 국세청 ‘여성드림팀’이 탄생된 것이다.  

이들은 남성이 쉽게 접근하기 힘든 곳의 세무조사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다.

미용실에 손님으로 들어가 머리를 손질한 뒤 현금을 내면서 숨겨진 장부의 위치를 확인하기도 하고, 수표를 낸 뒤 계좌추적을 통해 그 수표가 입금된 계좌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차명계좌를 찾아내는 등 종횡무진 맹활약을 펼쳤다.

이들의 활약은 국세청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큰 이슈가 됐고 급기야 일본의 조세당국이 이를 벤치마킹해 여성조사반을 조성하는 등 여권신장과 국위선양에도 큰 몫을 했다.

대통령에서부터 정치·경제·사회·교육·문화 등 사회전반에 걸친 여성의 비중이 날로 커지고 있는 가운데 여성으로서 수많은 제약과 편견을 뛰어넘어 ‘금녀의 구역’을 당당히 개척한 김 서장의 멋진 활약을 계속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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