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기 황(시인 / 논설위원)

 

청양(靑羊)의 해다. ‘푸른 희망’의 신년이다. 벌써 보름치의 희망이 쌓이고 있다.
엊그제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도 한껏 희망을 품고 있다.
지난해도 그랬다. 너도나도 ‘청마(靑馬)’처럼 용약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했다.
그렇다. 지난해의 바람이 단지 ‘희망사항’에 머물렀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새해는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새해다. 희망은 유효기간이 없다.
2015년, 을미(乙未)년. 오행으로는 목(木)에 해당되고, 색상으로는 청(靑), 방향으로는 동(東)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쪽 방면에 문외한인 필자로서는 그저 아리송할 뿐이지만 무슨 대수겠는가.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나쁜 것은 경계하라는 의미 아니겠는가.
‘양(羊)’은 12가지 띠 동물 중에서도 무리를 이루며 살아가는 대표적 동물이다. 맹수처럼 사납지도 않고 천리마(千里馬)처럼 뛰어나지도 못하다. 주어진 환경에 묵묵히 순응하며 살아가는 온순한 초식동물이다. 혼자 잘났다고 무리를 이탈하거나 나만 힘들다고 호들갑을 떨지도 않는다. 은근과 끈기로 살아가는 우리 국민의 모습과도 많이 닮았다.
다산(정약용)은 그의 저서 ‘목민심서’에서 양떼를 돌보는 목자처럼 백성들을 편히 살게 해주는 사람을 ‘목민관(牧民官)’이라 하여 목민관이 가져야 하는 지도자의 덕목을 피력했다.
“뭇사람을 통솔하는 방법은 위엄과 믿음뿐이다. 위엄은 청렴에서 나오고 믿음은 성실에서 나오니, 정성스럽고 청렴할 수 있어야만 모두를 복종시킬 수 있다.”

전 세계 힘없고 소외된 ‘양떼’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보내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고위 성직자(지도자)들에게 인상적인 성탄메시지를 전했다.
교황청장관, 의장단과 만난 자리에서 사목자들이 빠지기 쉬운 15가지 병폐를 조목조목 언급하면서, 양떼를 돌보는 사목자는 “...자기 자신에만 몰두하는 ‘영적치매’를 경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영적으로 공허한 이들은 위선적으로 행동하며 자기를 과시하려 한다.”며 낮은 자세로 일할 것을 주문했다. “또 자기중심주의에 사로잡힌 이들은 신자들에게 봉사하기보다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고 지적했다.
성직자뿐만 아니라 일반지도자들도 깊이 새겨야 하는 금과옥조(金科玉條)다.

2015년도, 올해의 키워드는 ‘소통과 공감’이라고 한다.
지난해는 우리 사회가 ‘종합 진단’을 받은 한 해로 볼 수 있다. 배려와 관용보다는 불신과 ‘불통’으로 인해 사회 각 계층에서 동맥경화현상을 겪어야 했다. ‘세월 호’와 같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희생을 치른 후에야 겨우 병명을 집어냈다. ‘땅콩 회항‘으로 표출된 고질적인 ‘갑(甲)질 문화’도 응급처방으로만 끝날 일이 아니다.
새해가 됐어도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사건사고와 사회 병리적 현상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어김없이 ‘영적치매’가 자리 잡고 있다. ‘영적치매’는 근본적인 치료를 요하는 현대인의 질병이다. 영적치매는 단절과 상실의 시대에 나타나는 세기말적 증상이다. 전염속도도 빠르고 단기간에 치료하기도 어렵다. 희망을 갉아먹고 사는 이 병은 불신을 전염시키고 끝내는 집단적인 절망에 이르게 한다.
우리가 영적치매를 경계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양떼가 원하는 것은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도 아니고 잘난 목자(지도자)의 호통도 아니다. 상식과 양심이 통하고 윤리와 도덕이 살아 있는 푸른 풀밭이다. 약자에 대한 배려와 따듯함이 흐르는 맑은 시냇물이다. 이웃의 짐을 나눠지려는 노력이다.
김용택 시인의 ‘노을’이란 시(詩)에서 힌트가 되는 시구(詩句)를 찾을 수 있다.
“사랑이 날개를 다는 것만은 아니더군요/사랑은,/사랑은,/때론 무거운 바위덩이를 짊어지는 것이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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