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예방·대처 ‘메뉴얼’ 정비 시급하다

(동양일보 이도근 기자) 지난해 세월호 참사와 올 초 의정부 화재 참사, 남양주 아파트 등 잇단 고층 아파트·오피스텔 화재 이후 ‘기초질서’에 대한 중요성이 다시 커지고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 아흐레 후 발생한 스페인 ‘볼칸 데 타부리엔테’의 화재 때 보여준 선장과 선원의 초동대처만 봐도 ‘기본’을 지키는 당위성은 자명하다.

지난 17일 발생한 청주시 서원구 분평동 25층짜리 아파트 화재에서도 ‘매뉴얼’을 간과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날 밤 10시 40분께 청주시 서원구 분평동 이 아파트 25층 옥상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불은 옥상 시설물 400㎡를 태워 1300여만원(소방서 추산)의 재산피해를 내고 40여분 만에 진화됐다.

연기가 아파트 내부로 스며들며 이곳에 사는 147가구 260여명의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염모(여·85)씨와 김모(18)양 등 주민 5명이 연기를 마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민 대부분이 대체로 신속하게 대피,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정확한 화재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배관에 감아 놓은 열선이 과열됐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방화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번 화재의 경우 25층 아파트 옥상에서 불이 시작됐지만, 소방당국이 보유한 고가사다리차로는 진압을 할 수 없어 직접 소방관들이 1층부터 진입하는 일이 벌어졌다.

소방 관계자는 “사다리차가 15층 높이 밖에 못 올라, 옥상까지 방수를 할 수 없었다”며 “소방관들이 직접 25층까지 진입, 불길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청주시내 2곳 소방서가 보유한 고층 화재 진압장비는 고가사다리차 2대와 굴절사다리차 3대가 전부. 이마저도 고가사다리차는 53m 이상 건물 화재는 손을 쓸 수 없다. 굴절 사다리차도 27m 밖에 도달하지 못한다.

대피 매뉴얼 미숙도 드러냈다. 한 주민은 “1층까지 대피하는 동안 안내방송이나 화재경보가 없었다. 주민들 대부분이 대피를 끝낸 뒤에야 안내방송이 나오더라”고 말했다.

국민안전처 ‘화재 국민행동 매뉴얼’을 보면, 불이나면 먼저 화재경보 비상벨을 누르거나 ‘불이야’라고 소리쳐 다른 사람들에게 화재 사실을 알린 뒤 대피해야 한다고 돼 있으나 이 부분이 잘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주민 대부분이 대형화재 발생 때 위기 대응법을 잘 모른다는 것도 문제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모노리서치가 지난 14일부터 이틀간 전국 성인남녀 1000명(유효표본)을 대상으로 ‘의정부 아파트 화재와 같은 대형화재 때 대응과 대피요령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지’를 물어보니 국민 10명 중 4명이 잘 모른다고 답했다. 조사대상자 49.0%가 대형화재 대응법을 ‘대략 알고 있다’고 답했으나 40.7%는 ‘잘 모름’이라고 응답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비교적 빠른 출동과 초동조치로 불이 크게 번지지 않았다는 점. 아파트 등 고층 건물 화재 진압을 위해서는 초동 출동이 필요한데 도심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이 규제 완화로 주차공간이 세대당 0.5대로 줄면서 아파트 주민 차량들이 거리로 나와 출동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지난 2010년 12월 청주시 상당구 내덕동 원룸 화재의 경우 불법주차 차량들 때문에 소방차들이 화재 건물까지 진입하지 못해 차량 소유주에게 일일이 연락하거나 차를 수동으로 밀어 수관을 연장하는 방법으로 화재를 진압해야 했다. 불이 완전히 꺼진 시간은 건물 두 동이 폐허가 된 4시간 뒤였다. 이 화재로 1명이 숨지고 4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1억1000만원의 재산피해가 났다.

기초질서는 국민 개개인의 실생활 ‘매뉴얼’. 이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2·3의 세월호 참사, 의정부 화재 참사와 마주할 수밖에 없다. 기초부터 꼼꼼히 챙기는 화재 예방·대처 시스템 정비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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