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논설위원 / 사회학박사)

 

이 땅의 모든 부모들은 새해를 맞으며 어린 아이들에게 “올해에도 건강하고 씩씩하게,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한다”는 덕담을 들려줄 것이다. 그러나 직장 때문이든 아이의 사회성 때문이든 보육시설에 어린 아이를 맡기는 부모의 마음은 언제나 편할 수만은 없다. 아이가 공동생활을 시작했다는 대견함도 있지만 아직은 아기티를 벗지 못한 모습에 아침마다 헤어질 때면 왠지 마음이 짠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신이 나서 돌아와 재잘재잘 얘기라도 들려주면 그렇게 안심이 될 수가 없고, 어쩌다 풀이 죽어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이 없으면 별별 생각과 걱정으로 전전긍긍하게 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새해덕담이 무색하게도 인천 송도 어린이집 아동폭행 사건의 아연실색할 CCTV 장면이 공개되면서 나라 전체가 충격과 허탈에 빠져 있고 온 국민의 가슴 가슴이 갈가리 찢어지면서 부글부글 끓고 있다. 그리고 의례 그래왔듯이 정부와 정치권은 실상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듯이 부랴부랴 조사에 착수한다는 둥 대책을 수립한다는 둥 뒷북만 쳐대면서 허둥대고 있다. 도대체 어느 나라 유치원이며 어느 나라 어린이집인가? 도대체 어느 나라 정부며 어느 나라 국회인가?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문제점을 발견하여 근본적이며 구체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이런 천인공노할 사건은 당장 내일이라도 전국 곳곳에서 일어날 수 있다. 우리는 정부와 정치권에 허둥대며 졸속적인 대책을 내놓기에 급급하지 말고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할 것을 강력히 주문한다.
보육을 필요로 하는 우리 아이들은 아직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완성되지 못한 그야말로 새싹들이다. 국가와 사회와 가정은 이 새싹들을 건강하고 건전한 성인이 될 수 있도록 ‘돌보아 기를’ 무한책임이 있다. 그것이 보육이다. 이 아이들이 자라나서 우리처럼 성인이 되고 이 나라를 책임질 것이기 때문에 보육은 우리의 미래에 대한 중요한 투자다. 저항할 물리력이 없다 해서, 부당함에 항거할 판단 능력이 부족하다 해서 이 아이들이 무차별적인 폭력에 노출되게, 그리고 협박에 입을 다물게 해서는 이 나라의 미래는 없는 것이다.
박근혜대통령은 20일 국무회의에서 이번 아동폭행 사건과 관련하여 “그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보육환경 조성을 위해 관련 대책과 법률을 재정비해 시행해 왔고, 또 매년 9조원 수준의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근절되지 않고 있어 참으로 개탄스럽다”고   했다. 여성의 경력단절을 예방하여 경제활동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 자녀양육 부담을 완화하는 보육제도와 보육서비스 확충을 여성가족분야 주요 국정과제로 추진해왔던 정부로서는 매우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보건복지부는 이미 작년 9월 중앙보육정책위원회를 열어 ‘아이의 행복한 미래를 키우는 보육’을 중장기 비전으로 하여 올해부터 영유아의 특성에 따른 보육, 보육품질 제고, 부모안심 보육, 소통하는 보육의 4대 전략 추진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던 터다. 어쨌든 보건복지부는 16일 ‘어린이집 아동폭력 근절대책’으로 아동학대에 대한 처벌 강화, 모든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 평가인증제에 부모참여 강화, 보육교직원 자격요건 강화 등을 서둘러 내놓으며 이달 말까지 상세대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분명히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그동안 우리 정부나 정치권이 보육을 복지의 차원에서만 보아왔다는 점이다. 그러나 보육의 개념에는 보호뿐만 아니라 교육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 아이들은 태어나면서 가정에서의 보호 및 교육과 함께 보육시설에서 보호와 교육을 함께 받게 된다. 따라서 교육부가 뒷짐 지고 있는 보육정책은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다.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는 복지의 차원이겠지만 어떻게 교육할 지는 교육철학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 대한 대책수립에 보건복지부와 교육부가 서로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며, 다른 부처 역시 강 건너 불구경하듯 팔짱만 끼고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국회의원과 보좌진을 포함한 국회 소속 공무원의 취학 전 자녀만 다닐 수 있는 시설인 국회 어린이집과 정부 세종청사에 설치된 정부공무원의 자녀들만을 위한 어린이집의 시설과 환경, 교사수준과 근무조건 등이 ‘매우 이상적’이라 한다. 우리 일반 국민들도 ‘그들’의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처럼 ‘매우 이상적’인 어린이집에 ‘우리들’의 아이들을 보낼 수 있도록 우리가 낸 소중한 세금을 제대로 써주기 바란다. 우리 아이들이 장차 대한민국을 영광된 조국으로 생각하고 당당하게 끌고 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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