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바로프스크, 아무렇지도 않게 인간을 버리던 곳

▲ 조 블라디미르(오른쪽)가 아무르강에서 물수제비를 뜨고 있는 것을 조철호 단장이 지켜보고 있다. 수면에 저항하여 튕튕, 튕겨오르는 돌멩이처럼 포석 선생의 문학 또한 일제에 저항하여 민족의 독립을 꿈꾸며 날아오르는 것이었다.

 

(동양일보 김명기 기자) 사람이 안에 있으면서도 낯선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으로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인지, 대낮에 불을 켜놓고 출타중인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답사단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다음 행선지, 아무르강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조명희 선생은 작가의 집에서 10여분 거리에 있는 아무르강까지 산책하기를 퍽 즐겼다고 한다. 그 길을 되짚어가는 중이다. 80년 세월 저편 1937년의 그 길과 훌쩍 세월 건너 온 2014년 오늘의 그 길이 같지 않을 것은 당연한 일일 터이지만, 그래도 선생의 그 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설렘을 갖고 발길을 옮겼다.

 

정갈한 숲길. 2차선 도로를 따라 가다보니 한적한 공원이 나오는데 산책로 주위에 우거진 자작나무 숲이 퍽 아름답다. 자작나무를 보면 해사한 여인네가 떠오르곤 했다. 새하얀 속살 차마 다 보이지 못해 제 몸을 감아도는 수줍은 듯 부드러운 수피(樹皮).

1992년인가, 문학 동인 선배인 정한용 시인의 초대로 안산 예술인아파트를 찾은 적이 있었다. 정 시인이 반기며 말했다.

“오늘은 술 잔뜩 먹도록 하고, 내일 일정은 어떻게 할까? 두 가지가 있는데 택일. 하나는 이번에 사라지게 되는 협궤열차를 보는 것, 또 하나는 윤후명 소설가를 찾아가는 것.”

“그러면 ‘협궤열차에 관한 보고서’를 쓴 윤후명씨를 만나면 되겠네요.”

윤후명씨가 쓴 ‘협궤열차에 관한 보고서’는 1990년 14회 이상문학상 추천우수작이었다. 그해 대상은 김원일의 ‘마음의 감옥’이 차지했고, 그는 또 1992년 ‘협궤열차’를 썼다. 윤씨는 1995년 ‘하얀 배’로 19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다음날 윤 선생 댁을 찾았다. 달변이었던 윤 선생과 나눈 이야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러시아의 자작나무 숲이었다. 그는 세상의 어느 풍경도 광활한 러시아 도처를 뒤덮고 있는 자작나무 숲처럼 아름답지 못하다고 단정했다. 그는 그 풍경을 ‘여우 사냥(1993년)’으로 썼다.

 

물론, 러시아에서 욜카라고 하는 전나무는 우리의 전나무와 같고 사스나라고 하는 소나무는 우리의 소나무과 같고, 베료자라고 하는 자작나무는 우리의 자작나무와 같았다. 그렇지만 까마귀밥나무에는 까마귀가 들어 있는데, 그곳 까마귀가 우리의 까마귀보다 훨씬 크고 어딘가 더 의뭉스러워서 갈리나를 우리의 까마귀밥나무로 부를 수가 없다고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야 아무려면 무슨 상관인가. 지금 돌이켜보건대 그와 내가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났으며, 예기치도 않게 그곳에서 몇 백리나 먼 북쪽의 호숫가까지 갔었다는 그 사실만이 중요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뿐인 것이다. 아니, 이렇게 돌이켜 보니 그와의 그 겨울 만남이 마치 우리들 삶의 갈리나 열매처럼 어떠한 혹한에도 생명의 씨앗을 간직하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넌 여전히 원예반 학생이구나. 식물에 대해 그렇게… 러시아 숲은 실히 굉장해… 화가들이 그린 자작나무숲도 좋은데….”

좋은데 어떻다는 것일까. 나는 지굴리 승용차의 핸들을 잡고 앞을 응시하고 있는 그를 곁눈질했었다.

- 윤후명 ‘여우 사냥’ 가운데

 

그래서 자작나무 숲은, 혹여 러시아를 방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꼭 보아야 할 첫번째 풍경이 되어야 한다고 늘 생각해 두곤 했었다.

그때도 자작나무 숲길이었을까? 80년 세월 저편, 포석이 마음을 달래려 아무르강을 찾아갔던 이 길이 새하얀 속살 차마 다 보이지 못해 제 몸을 감아도는 수줍은 듯 부드러운 수피(樹皮)를 두르고 있는 자작나무 숲길이었을까?

나라 잃은 울분을 달래려 걸었을 이 길, 민족을 계도하려 작품 구상을 하며 걸었을 이 숲길이 그때의 그 자작나무 숲길이었을지는 모르지만, 둔덕의 이 길을 걸으며 가빴던 포석 선생의 숨결이 아직까지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작가의 집에서 출발하여 10여분 걸었을까, 갑자기 가슴이 뻥 뚫리는 풍경이 나타났다.

아무르강이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언덕 아래 저 풍경이 강인지 바다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다.

아무르강(Amur River)은 흑룡강(黑龍江), 헤이룽 강(Heilong Jiang)으로도 불린다.

러시아 하바로프스크 지방 베르크나야 에콘 부근에 있으며 러시아와 중국에 걸쳐 있다.

이 강과 연계된 도시는 블라고베셴스크, 헤이허시, 퉁장시, 하바로프스크, 아무르스크, 콤소몰스크나아무레, 니콜라옙스크나아무레 등이고, 타타르 해협을 향해 흐른다.

지류로는 왼쪽 실카강, 제야강, 부레야강, 암군강, 오른쪽 아르군강, 후마강, 쑹화강, 우수리강이 있다.

아무르강은 상류의 실카강과 오논강을 포함하면 길이가 4444km로 세계에서 8위에 해당하고 면적은 205만2000km²로 세계에서 10번째로 넓다. 러시아와 중국, 몽골에 걸쳐 있다.

 

▲ 조 블라디미르가 아무르강을 찾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아무르강은 부친 조명희 선생이 하바로프스크 ‘작가의 집’에 거주할 당시 즐겨 찾던 산책 코스였다.

하안(河岸)을 내려가 강에 다다른 답사단은 분주하게 기념사진을 찍었다.

분주한 일행에서 눈길을 돌려보니 블라디미르는 강 저편을 초점잃은 눈으로 묵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포석의 막내 아들. 생존해 있는 유일한 자식. 그의 상념 속에는 아버지 조명희를 그리워하는 것들로 가득차 있을 것이었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그도 벌써 77세 희수(喜壽), 이젠 아버지를 만날 날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 이 발길이 아버지를 찾는 마지막 여정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 터였다.

한참 동안 강을 바라보던 그가 밝은 얼굴색을 되찾았다. 그리고는 아이들처럼 아무르강을 향해 물수제비를 떴다. 두세번 팅팅 튕겨오르다 가라앉지만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자꾸 물수제비를 뜬다.

답사단 일행도 같이 물수제비를 떴다. 김흥남씨와 나순옥씨도 물수제비를 뜨며 소녀처럼 까르르 웃고, 조 단장과 김 안드레이 교수, 김태수 과장, 곽동환씨도 물수제비를 뜨며 껄껄껄 웃는다.

1992년 유족들이 이 곳 아무르강을 찾았을 때 조 단장은 하염없이 펼쳐진 아무르강을 보며 포석 조명희 선생을 그리워하는 시를 썼다.

 

▲ 조철호 단장이 상념에 젖어 아무르강가를 걷고 있다. 시인인 조 단장은 1992년 유족들과 함께 하바로프스크를 찾았을 때 ‘아무르 강에서 - 포석이 섰던 자리’라는 시를 쓰며 조명희 선생의 뜻을 기렸다.

아무르 강이 비를 맞고 있다

구만리 장천 떠돌던 혼백들과 눈물 마른 새들만

석양을 비껴가고

절룩이며 절룩이며 왼종일 족쇄를 끌어도

길은 끝나지 않았다

 

하바로프스크-

아무렇지도 않게 인간을 버리던 곳

언제나 축축한 이 도시 한 켠에

조선 사내들의 한숨 따라

아무르 강이 비를 맞고 있다

혁명가의 아내처럼

맨살로 비를 맞고 있다

 

누구를 기다리는가

유언도 없이 운명한 쓸쓸한 주검도

5월이면 풀꽃 하나 피우려는데

시베리아 설한풍만 강가를 서성일 뿐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을 강물은 알아

아무르 강-

오늘도 일삼아 비를 맞고 있다

발목잡힌 길손의 가슴을 적시고 있다

1992년 5월 23일 하바로프스크 아무르 강에서.

 

아무르 강에서 - 포석이 섰던 자리에 서서 / 조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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