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은순(문학평론가)

              연은순(문학평론가)

 며칠 전 손으로 쓴 편지를 한통 받았다. 요즘 대부분 인쇄된 편지를 보내기 때문에 손으로 직접 쓴 편지는 거의 받아보기 힘들다. 그런 이유로 어쩌다 손편지를 받으면 반가운 마음이 들며 귀하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내가 대학 다닐 때까지만 해도 편지를 주고 받으며 펜팔을 하는 게 하나의 트렌드였고 전화라는 문명의 이기도 대중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편지가 일반적인 소통 수단이었다. 그 시절 편지를 보내고 또 답장을 기다리며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키우고 사람 사이에 낭만을 느낄 수 있어서 인간관계가 더 따뜻하고 돈독하지 않았나 싶다.

 당시 일본인 친구와 독일어로 편지를 주고 받은 적이 있는데 서로 만나지는 못했지만 편지를 통한 우정이 직접 만나며 쌓은 우정보다 결코 덜하지 않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 친구와 편지를 주고 받은 내용이 선명하게 떠오르며 내 추억의 한켠을 장식하고 있다. 중학교 동창이었지만 대전으로 이사 간 친구와도 한동안 편지를 주고 받았고 서울에 있는 아는 언니, 시골에서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같은 반이었던 친구와도 오랜 시간 편지를 주고 받았다. 생각해 보면 당시 편지를 통해 가까운 사람과 글로 소통하며 정서를 함양시키고 내면적으로 성숙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 받게 되었고 요즘은 보다 진일보하여 문자 메시지나 SNS로 소통하는 게 일반적이 되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손으로 쓴 편지의 주인공은 내 신문 칼럼 독자로 작년에 전화로 연락이 돼 만난 적이 있는 충주에 사는 사람이다. 작년 여름 내가 운영하는 제천의 호텔로 연락이 와 만나게 되었는데  내 연락처를 알아내기 위해 오랜 시간 수소문을 했다고 한다. 신문사에서는 내 연락처를 모르는 사람에게 알려 줄 수 없어 공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연히 내가 호텔을 운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내 연락처를 알아낸 것이다.

 그는 내 나이 또래의 교사였는데 오래 전부터 내 칼럼을 빠뜨리지 않고 읽고 있다고 했고 칼럼을 통해 나에 대해 많은 부분을 알고 있었다. 내 연락처를 알아내느라 고생했다는 그의 말을 듣자니 고맙고도 미안한 마음이 들어 민망하기까지 했다.

 그 이후 그 독자는 간간이 전화로 안부를 묻기도 하고 정성이 담긴 손 편지로 소식을 전해 오곤 한다. 그럴 때면 변변치 않는 내 글을 챙겨 읽는 독자들을 생각하며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캐나다 신문사에서 기자생활을 할 때 한 독자가 한국에서 날 찾아온 적이 있다. 마침 내가 한국에 다니러 나와 있던 참인데 캐나다에 있는 아들 녀석이 전화를 해 어느 독자가 날 찾더라는 소식을 전했다. 몇 주 있다 캐나다로 돌아간 나는 다시 연락이 온 그 독자를 만나게 되었다. 젊은 비서와 동행한 그분은 연세가 좀 있으셨고 서울에 있는 유명 사립대 부총장이라고 했다.

 캐나다 밴쿠버에 오기 전 대학서점에서 내 책을 사서 읽게 되었고 마침 밴쿠버에 일이 있어 방문했다가 나를 보고 싶어 찾게 된 것이라고 했다. 신학을 전공한 그분은 대학원에서 내 책을 교재로 사용했다며 다음 책이 나오면 꼭 연락을 해 달라고 하셨다.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쓴 내 인물취재기는 고생담이 주였고 대부분 맨손으로 성공한 사람들얘기가 대부분이었다. 그 이후 난 고생한 사람들을 높이 평가하게 되었고 그들의 내공을 눈여겨 볼 줄 아는 안목을 갖게 되었다.

 


 그들의 고생담이 그토록 인상적이었다며 내게 많은 사람들을 취재한 경험을 토대로 상담을 전공해 더 공부하면 좋을 것 같다는 조언을 해 주기도 했다.

 글 쓰는 사람에게 자신을 아껴주는 독자를 만나는 일은 큰 행운이다. 그들의 격려에 힘입어 스스로를 더욱 채찍질하게 되고 느슨해진 마음을 추스르게 되니 말이다. 독자들을 통해 글 쓰는 보람을 새삼 느끼게 되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 추위에 마음 마져 움츠러드는 겨울날, 어느 독자의 따뜻한 손편지가 나를 새로운 상념에 잠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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