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논설위원 / 충북대학교 아동복지학과 교수)

최은영(논설위원 / 충북대학교 아동복지학과 교수)

얼마 전 우스개 소리를 들었는데, 내용은 씁쓸한 것이었다. 한 여론조사 기관이 시민의식에 대한 서베이를 진행했는데, 응답하는 많은 사람들이 “나는 국민이고 주민이지 시민은 모른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우리는 아직도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던, 절차적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1980년대를 기억한다. 이제 우리사회에 일정한 민주주의의 형식이 갖추어졌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나의 행동과 우리의 선택이 민주적 과정을 형성하고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는 토대가 되며, 한국사회의 성격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자각하는 사람들은 매우 드물다. 우리가 흔히 듣는 말은, “경찰이 왜 저런 사람 안 잡아가나”, “이런 건 국가가 책임지고 알아서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등의 표현이다. 우리사회에 “나”와 “우리”의 역할 및 몫은 없는 듯하다. 뉴스보도를 보면서도 나는 늘 의문을 갖는다. 우리가 스스로 감시를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교통관련 보도를 하는 기자는 “교차로에서 꼬리물기를 하는 차량을 제대로 단속하기 위해 감시카메라를 더 설치하고 경찰행정력이 더 효과적으로 이런 차량을 잡아내야 한다”라고 마무리한다. 이제 모든 곳에서 CCTV가 나의 24시간과 일거수일투족을 촬영한다. 감시당해야만, 벌을 받아야만 질서를 지키는 수동체로서의 시민.. 엄밀한 의미에서 시민이 아니다. 
유럽에서는 18~19세기를 거치면서, 경제면에서는 자본주의, 정치면에서는 민주주의를 형성하였고, 사회적인 면에서는 시민사회(혹은 공민사회)를 성립했다고 해석된다. 존 로크는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이 사회계약에 의해 구성하는 사회”를 시민사회라 정의하고, 이를 정부와 구별하였다. 오늘날 시민사회는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공적 영역으로서의 국가와 대비하여 사적 영역으로서의 시민사회를 구분하는 이분 모델이 있는가 하면, 국가 이외에 시민사회를 다시 생활세계와 견제영역으로 나누어 파악하는 삼분 모델 등이 있다. 이론적인 지파들의 논지는 상이하겠지만, 확실한 것은 국가는 국민, 영토, 주권을 가진 정치적 공동체이면서 전문화된 통치기구를 의미하는 반면 vs. 시민사회는 국가와 분리된 시민들의 자율적 영역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자유개념만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적 공민사회 이론과 달리, 공익지향을 강조한 로크의 공민사회 이론은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하고 싶다. 국가 바깥의 영역이면서 사익추구를 배제한 영역인 공민사회는 그래서 공익을 위한 성찰과 협력이 필수적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어떠한가? 우리의 주변에 자각적인 시민, 통합적 지향을 갖춘 시민사회 내부의 숙려적 구조 등은 찾기 어렵다. 언제나 사회정치적 책임은 국가로 향한다. 모든 것은 국가 탓이다. 물론, 대한민국의 정치권이 정의는 고사하고, 공정성과 투명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작태를 오랫동안 보여 왔고, 설익은 정책들로 국민들의 삶을 더 힘들게 해온 것에 책임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국가가 진두지휘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알아서 해줄 수도 없는 것이다. 내가 수동적이면 국가는 개입하고 우리를 통제하기 쉽다. 그렇게 능동적 시민사회는 점점 현실에서 멀어지게 된다. 시민사회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나”도 돌아봐야 한다. 학부모인 동창들이 자녀들에게 하는 말을 종종 듣는다. 한 친구는 “을로 살면 절대로 안 된다. 갑이 되려면, 그 중에서도 1% 수퍼갑이 되려면 꼭 공부를 잘해야 한다. 빚을 내서라도 밀어줄테니 아무 말 하지 말고 아무 생각 하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해라”라고 자녀를 훈육한다. 더 어린 연령의 자녀를 둔 부모는 “맞고 오면 절대로 안된다. 손해보지 말아라”라고 수없이 일깨운다. 함께 시민으로 협력하고 성장할 가능성은 애초에 차단된다.
“자율”은 맘대로 편한 대로 산다는 의미가 아니라, 국가로부터 강제되거나 통제받지 않는 영역을 확보하기위해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통합력을 극대화하고, 경제와 사회영역의 이기주의 원리를 순화시키려 노력하고, 이를 통해 자유롭지만 책임감 있는 결정을 하도록 서로를 이끌어줄 것을 요구한다. 그래야만, ‘질서’축과 ‘자율’축 간의 평형의 기초가 생기고, 우리의 후세에게 자유로운 공동체를 물려줄 수 있다. 즉, “자율”은 시민모두의 깨어있는 인식과 노력을 요구하는 매우 부담스럽고 무거운 단어이다. 감시 없이도 지금보다 더 좋은 사회가 되기를 꿈꾸고 실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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