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동안 서울역 근무한 노숙인들 ‘큰형님’

▲ 장준기 맹동파출소장

(음성=동양일보 서관석 기자)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했던 경험을 살려 지역 독거노인과 노숙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해 내 부모, 내형제처럼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15년간 서울역 노숙인들 곁에서 그들과 함께 하며 ‘큰 형님’으로 불리던 장준기(53·사진·☏019-337-1804) 경감이 음성경찰서 맹동파출소장으로 취임했다.

국내 최대의 노숙인 수용시설인 음성 꽃동네 앞 파출소장으로 임명돼 노숙인과 인연을 이어가게 됐다.

장 경감이 노숙인들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0년이다. 1986년 9월 서울경찰청 기동대에서 경찰생활을 시작한 장 경감은 2000년 7월 남대문경찰서 서울역 파출소로 옮긴 뒤 15년 동안 노숙인 전담 경찰로 생활했다.

IMF 여파로 서울역 인근 노숙인들이 급증해 사회문제가 됐다. 당시 서울역 주변은 술 마시며 싸우고, 노상방뇨 하거나 행인에게 구걸하는 노숙인들이 많았다.

그들을 단속하는 경찰과의 관계도 좋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고 예방을 위해서라도 노숙가까이 다가서야겠다는 다짐을 가졌다.

“이 많은 사람들을 계속 단속만 하고 처벌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 감정만 상하고 상황이 더 나빠졌다.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때부터 장 경감은 매일 아침거리로 나가 청소를 하고 노숙인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먼저 말도 꺼내고 못 일어나는 사람은 거들어 쉼터로 보내는 등 노숙인들 편에 서려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노숙인들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직접 깎아주고 다듬어줬다. 이발을 하려는 사람이 몰려 번호표를 나눠줘야 할 만큼 반응이 좋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장 경감의 얼굴을 알아보는 노숙인들이 늘고 관계가 개선됐다.

그들을 만나면서 사람 사는 것이 다들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자신도 어렸을 때 시골에 살았고 그때는 누구나 힘든 상황에서 어렵게 생활하는 보통 사람들로 자연스럽게 대했다.

차츰 말도 안 꺼내던 사람들이 친구나 형제처럼 허물없이 대해줬다.

서울역 노숙인들과 생활하며 즐겁고 기쁜 일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노숙생활을 하다 보면 사실 건강이 좋지 않거나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고 노숙인들이 큰소리 치고 거칠게 보이는 것은 자기가 약하기 때문으로 판단했다.

장 경감은 “실제로는 그들이 마음도 여리고 병에 걸리거나 사망할 때는 아쉽고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지금도 노숙인 가족들과도 전화 연락을 하며 소식을 전한다는 장 경감. 이 같은 노력으로 2014년 10월 16일 음성품바축제에서 3회 최귀동 인류애 봉사대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천주교 단체에서 제공하는 도시락 1100개를 쪽방촌 거주자에게 배달해 왔고 7년간에 걸쳐 수천 명의 노숙인에게 의류와 신발을 지원받아 제공해온 것을 인정받았다.

그는 음성 꽃동네 주변에서의 생활에 대한 기대도 내비쳤다.

서울역 등 각 지역의 노숙인 가운데 상당수는 음성 꽃동네로 보내져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역에서 만났던 노숙인 가운데 상당수는 꽃동네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몇몇은 가족들과 연락도 주고받으니까요. 오랜 친구처럼 반가울 겁니다.”

그는 앞으로 충북에 뿌리를 내릴 참이다.

이웃 괴산에 작은 집도 짓고 있다.

퇴직 후 노숙인들을 가까운 곳에서 돌보기 위해서다.

경찰행정학을 전공하고 있는 아들 우인(24)이 군 복무를 마치면 ‘후배 경찰’로 키워 볼 생각이다.

장경감은 “노숙인들과 생활을 함께 한 관계로 꽃동네 인근으로 근무지를 옮겨왔다” 며 “아직 꽃동네를 방문하진 못했지만 노숙인들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경찰로 남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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