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호남고속철 서대전역 경유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지역간 갈등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결사반대하는 호남권에 충북이 동조하고, 논란에 불 지핀 대전과 충남은 양보할 기색이 전혀 없다. 정치권 역시 주민들 눈치 보느라 여야 따로없이 지역에 따라 찬반으로 경계가 그어졌다. 사생결단으로 치닫는 모습을 보면 이 문제가 어떤 형태로든 마무리된다 해도 그 후유증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사실 호남고속철 서대전역 경유를 둘러싼 지역간 갈등은 예고된 시한폭탄이었다. 지난해 지방선거때 현 권선택 대전시장과 박용갑 대전중구청장이 서대전역 경유 공약을 들고 나올때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그런 것이 호남고속철도 개통을 앞두고 터져 나왔고, 서로의 지역이익에만 매몰되다보니 출구가 보이지 않게 됐다.

서대전역을 경유해야 한다는 쪽과 안된다는 쪽의 주장 모두 일리가 있다고 본다. 대전과 충남에서는 호남선 이용자의 약 30%가 서대전역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편의성과 수익성을 고려해 서대전역 경유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다시말해 시장(市場)에 맡기라는 것이다. 서대전역 경유를 하지 말라는 것은 어부에게 물고기를 보고도 그냥 지나치라고 하는 거와 뭐가 다르냐고 항변한다. 코레일측엔 ‘열차장사’ 안하고 ‘텅빈철’을 운행할거냐고 압박하고 있다. 한술 더 떠 KTX호남선 이용객이 가장 많은 서대전역 경유 횟수를 20%에서 50%로 더 늘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한 호남권의 강력한 반발은 예상대로다. 서대전역을 거치게 되면 45분이 더 걸려 고속철이 저속철로 전락한다며 결사반대하고 있다. 국민세금 9조여원을 들여 만든 고속철인만큼 고속철답게 운행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다. 호남고속철이 개통되면 서울 용산에서 전북 익산까지는 1시간 6분, 광주 송정까지는 1시간 33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종전보다 1시간 넘게 단축되다 보니 호남권이 서대전역 경유에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호남권의 반발은 뿌리깊은 피해의식에서 기인한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도로든, 철로든 경부선에 밀려 수십년동안 소외를 당해 왔는데 고속철에서만큼은 절대 차별을 당할 수 없다고 배수진을 친 것이다.

호남권과 대전 충남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충북의 입장은 어떤가. 충북은 오송역과 호남고속철 남공주역과의 거리가 짧아 호남고속철이 개통되더라도 일부 열차의 오송역 무정차 통과를 걱정해 온 터다. 이런 상황에서 29㎞밖에 안 떨어진 서대전역을 경유한다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서대전역을 경유하는 고속철이 오송역에 정차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요가 부족해 경부선 일부 열차가 오송역을 그냥 통과하고 있는 데 호남선 열차마저 무정차 통과해 버린다면 오송역 위상에 타격은 불가피하다. X축 교통망을 구축해 오송을 국토의 심장으로 만들려는 계획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그래서 서대전역 경유를 반대하고, 남공주역 정차횟수도 수요에 비해 과다하다며 이의 조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러자 이번엔 대전이 발끈하고 있다. 청주국제공항활성화를 위해 탑승률이 저조한 항공사에 대한 재정지원 내용을 담을 조례개정 추진을 재검토하겠다는 것이다. 대전시의 이같은 반응이 공식입장이 아니길 바라지만, 이건 좀 쩨쩨하고 치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전시는 청주공항 이용객중 대전권 주민이 40%라는 점을 무기로 삼으려는 것 같은데 그건 큰 오산이다. 대전권 주민이 청주공항을 이용하는 것은 청주공항이 이뻐서가 아니라 김포공항이나 인천공항보다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른단 말인가.

서로의 입장이 확연히 다르다보니 아무리 좋은 운행계획안이 나온다해도 먹히지 않을 게 뻔하다. 장기적으로 보면 고속철은 결국 이용객 많은 역을 찾아갈 수 밖에 없다. 그게 장사다. 논란과 갈등이 지속되면 될 수록 서대전역 경유를 막을 명분은 약해질 거라는 시각이 우세한 것이 이 때문이다. 특히 고속기능과 편의성, 수익성을 두루 추구하는 게 고속철도 건설 취지에도 부합된다. 서대전역 경유가 정 안된다면 서울~동대구역, 서울~대전간 고속철처럼 서울~오송~서대전~논산~익산간 왕복열차도 대안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모두가 한발씩 양보해 대타협을 하면 좋겠지만, 그것을 기대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만큼 국론 분열을 막을 대책이 있어야겠다. 그래서 청와대와 정부가 최근 신설한 ‘정책조정협의회’에 서대전역 경유 건을 조정대상으로 올려 무늬만 정책조정협의회가 아니라는 존재가치를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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