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적 한계 탈피, 학술·문화적 가치 연계해야

(동양일보 이도근·김재옥) 직지(直指)보다 최소 100년 앞선 것으로 추정돼 온 증도가자(證道歌字)가 진품이란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청주시의 직지 관련 정책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경북대 산학협력단(연구책임자 남권희)은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연구용역 의뢰를 받아 증도가(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약칭 증도가)자가 1377년 나온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약칭 직지)보다 최소 138년 이상 앞선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산학합력단은 증도가자에 묻은 먹에 대한 탄소연대 측정치와 활자 서체 분석, 금속성분 분석 등을 토대로 이같은 결론을 얻었으며, 증도가자도 진품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라는 태생적 한계로 인해 늘 불안한 학술적·역사적 가치를 지녀온 직지의 위상에 커다란 타격이 불가피하게 된 셈이다.
직지가 독일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앞선 금속활자본으로 인정받으면서 구텐베르크 성서의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크게 떨어졌듯, 직지 또한 같은 시련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우려된다.
학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직지가 ‘현존하는’이란 한계성을 지닌 만큼 ‘세계 최고(最古)’라는 시기적 상징성에 집착하지 말고, 학술적·문화적 가치와 연계한 정책 추진을 주문해 왔다. 언젠가는 증도가자의 출현처럼 위상의 심각한 변화가 올 수 있다는 예견에서다.
그러나 청주시는 이같은 우려를 애써 외면한 채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상징성’을 앞세운 정책 추진에 집중해 왔다.
결과적으로 증도가자의 출현 이후에도 별다른 대응책을 내놓지 못한 채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다르다는 점만 부각하려는 데만 골몰해 온 이유이기도 하다.
더욱이 청주시는 이미 증도가자의 존재 사실을 수년 전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이에 따라 예상되는 직지의 상징적·가치적 변화에 별다른 대응책을 강구하기는커녕, 증도가자가 진품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아전인수식 예단만 앞세우는 등 안일한 행태를 드러내왔다.
시는 지난 2007년 초 증도가자로 추정되는 금속활자의 존재 사실을 제보를 통해 알게 됐고, 정밀 감정을 통해 진품일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까지 보고받았다.
그럼에도 이같은 사실이 세상에 공개될 경우 직지 위상에 미치는 파장이 큰 데다, 직지를 대표적 문화유산으로 앞세워 추진하는 각종 시책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우려에 따라 이를 은폐해 왔다.
증도가자로 추정되는 금속활자 구입과 연구조사용역 실시 등 대책마련을 위한 방안 추진도 중단시켰다.
2011년 증도가자 공개 이후에도 청주시의 대응은 별다른 변화는 없이, 증도가자와 직지의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다르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증도가자가 진품이라는 결론이 난 지금에도 마찬가지다.
증도가자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이고, 직지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이라는 점에서 직지의 위상 하락보다는 상호 보완적 역할을 통해 직지의 위상이 강화될 것이란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이는 직지의 존재 사실이 밝혀지기 전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인정받아 온 독일 구텐베르크 성서의 차별화 추진을 시기적 우월성을 앞세워 무시해왔던 것과도 배치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청주시가 아무리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다르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해도, 최고(最古)의 것과 그에 버금가는 것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하며, 그 간격과 가치 또한 엄청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간과한 대목이다.
증도가자보다도 앞선 금속활자가 발견된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그동안 시기적 우월성만을 앞세워왔던 직지관련 정책을 탈피, 현실적이고 설득력있는 정책 변화를 통해 직지의 학술적·문화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청주고인쇄박물관 측은 “증도가자의 출현으로 직지의 위상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으나, 직지의 창조적 가치 재정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만큼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며 “증도가자는 1239년 이전에 주조한 금속활자며, 직지는 고려시대 활자로 찍은 실증적인 자료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인쇄를 위한 수단(도구)과 결과물이라는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통해 오히려 직지의 가치와 위상을 더 높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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