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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대학 치위생과 남 수 현 교수
충청대학 치위생과 남 수 현 교수
  • 동양일보
  • 승인 2010.06.14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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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소화 사업은 국민 치아건강 위해 꼭 시행돼야”
 

 (南壽鉉)교수는 …

△1952년 1월 17일 청주시 복대동 출생 △서울 경복중-서울 동성고-서울대 치의학과(1977) △남수현 치과의원 원장(1980~2008) △청주시 치과의사회 회장(1999~2002) △충청북도 치과의사회 회장(2002~2005) △충청대학 치위생과 교수(2008.3~현재) △☏043-230-2674

 

 

 

‘치아의 날’인 9일부터 일주일간은 대한치과의사협회가 정한 ‘구강보건주간’이다. 이 기간에 구강건강의 중요성을 알리자는 의미로 전국 자치단체별로 구강검진과 상담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리고 있다.

많은 날 중에 왜 6월 9일이 ‘치아의 날’일까. 입안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일을 하는 첫 영구치 어금니 ‘대구치(大臼齒)’가 나오는 시기인 6세의 ‘6’과 구치의 ‘구’자를 숫자화 했다. 이는 ‘6세 구치(어금니)를 보다 튼튼하게 발육시키고 앞니에서 6번째 영구치가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1947년 제정된 ‘치아의 날’이 올해로 65회를 맞았다.
예로부터 치아건강을 오복(五福) 중 하나로 꼽아왔다.
옛 사람들은 왜 심장·간·위·폐 등 더 중요해 보이는 장기들을 제쳐놓고 치아를 ‘오복의 으뜸인 수(壽)’의 비결로 여겼을까. 중년 이후 치아의 건강은 미각의 즐거움뿐 아니라 영양장애, 치매와 같은 두뇌 건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바쁜 일상으로 인해 현대인의 치아 관리 실태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치과 관련 의료인들은 지적한다.

 

 

남수현(58) 충청대학 치위생과 교수.

고향에 대한 사무침이었을까.

서울행 경부선 열차에 몸을 실은 청년은 도착을 알리는 기적소리가 차창 넘어 가슴 깊이 잠들어 있던 고향 산천을 깨웠는지 부모가 기다리고 있는 서울이 아닌 조치원역에 내렸다. 제대를 명받은 그는 그 길로 청주로 향했다. 태어나 유년시절 잠시 살았을 뿐 너무도 생소한 도시였지만 왠지 마음이 끌렸다. 1980년 5월 청주시 북문로 1가 도청 4거리에 ‘남수현 치과’를 개원했다. 당시 치과는 청주에 14곳뿐. 지금 충북 치과의원은 청주·청원 169개를 포함해 260개소에 달하고 있다.

28년 치과의사를 뒤로 하고 강단에 서 있는 그는 지금 행복해 하고 있다.

평생 천직으로 알고 일하던 치과의사를 그만두고 학생을 가르치게 된데는 2002년 충북도 치과의사회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추진했던 ‘치위생과’개설이 연이 됐다.

당시까지만 해도 충북지역에 치위생과가 있는 대학은 음성의 극동정보대학이 유일했다. 남 교수는 ‘청주권지역 대학 치위생과 개설’을 앞장섰고, 2003년 충청대학에서 그 결실을 보게 됐다. 그러던 중 그를 엄습한 직장암은 환자와의 만남을 허용하지 않았지만 다시 일어섰다. 건강을 회복하자 그를 기다리고 있는 이는 환자가 아닌 학생들이었다.

6월 9일 ‘치아의 날’ 전날 충청대학 문예관 205호 남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 학교로 오신지 얼마나 됐는지요.

“벌써 3년째 들어가고 있네요.”

―생활은 어떠세요.

“전혀 다른 생활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맛을 보고 있어요. 행복하다고 할까요. 아마 임상을 다루는 치과 의사로써 그대로 끝냈으면 아쉬웠을 법도 한데 행복감에 젖어 있습니다. 아픈 사람을 안 아프게 해주는 것도 보람이지만, 일정 공간 내에서 생활하는 게 답답한 면도 있었지요. 지금은 하루하루 지내면서 생활을 정리·정돈할 수 있고,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내가 생각했던 치과 위생사들의 상을 알려 수 있다는 게 가장 보람 있는 것 같아요.”

―치과의사로 오랜 기간 생활하시다 직업을 바꾸기 쉽지 않잖습니까.

“저도 상상을 못 한 일이죠. 제가 2002년도 충청북도 치과의사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공약사업으로, 치과의사회관 마련과 청주권대학에 치위생과 개설을 추진했죠. 충북에는 극동정보대학이 하나 있었는데 경기도와 접경지역이니 수도권학생들이 대부분이어서 청주에서 일하는 치위생사들이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치위생과 개설을 추진했는데 마침 충청대학과 의견이 맞아서 2003년에 개설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교수님들이 잘 운영해주시고, 우수한 학생들 많이 배출되고 있습니다. 올해는 60명, 내년부터는 90명 정도씩 배출될 예정이에요. 청주 주변지역 치위생사들의 인력난 해소에 다소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치위생과를 개설한 인연으로 해서 건강이 안 좋아 잠시 병원 문을 닫고 쉬고 있다고 하니까 연락이 왔어요. 전혀 생각지 않던 길이라, 고민도 했지만 의외로 쉽게 해답을 얻었어요. 현역에서 물러나기에는 이른 나이지만 또 나이 먹은 다음에 물러나면 다른 일에 도전 못할 것 같고, 힘 있을 때 제가 개설한 학과에서 학생들을 위해 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건강은 회복하셨나요.

“직장암에 걸려 병원에도 못나가고 했지만, 이렇게 학생들에게 제가 갖고 있는 임상에 대한 지식을 전달 할 수 있게 됐으니 아픈 것도 행운이었지요.”

―치위생과에서 무엇을 교육하나요.

“치과 의사는 아니고요. 구강 보건 교육이라고 보면 되지요. 예방사업이지요. 보건예방과 교육 업무 쪽 인력은 어느 정도 채워져 있고, 지금은 대부분 진료보조업무를 한다든가, 치과의사 감독 하에 스케일링을 한다든가, 환자 상대 구강교육 시키는 등의 일을 하지요. 자격증도 있지요.”

―치과에서 X레이도 찍고, 스케일링 하는 여성분들이 치위생사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분들 대부분이 치위생사라고 보면 돼요. 지금은 여자가 많아요. 우리 학교 예를 봐도 한 학년 60명 중에 남학생은 한 두 명 정도입니다.”

―치위생사는 단독으로 치료행위를 할 수 없지요.

“단독 개설은 안 되고, 치과에서 의사 감독 하에 치료 보조업무를 할 수 있지요.”

―치아 건강은 예방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매년 6월 9일 ‘치아의 날’에 구강건강교육, 불소도포 등 다양한 행사를 전국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 치아 건강관리의 중요성을 심어주기 위해 동양일보와 충북치과의사회가 1996년부터 2004년까지 실시한 ‘구강보건 계몽 글짓기 대회’가 생각납니다.”

―청주권에 충청대학 이외에 치위생과를 개설한 대학이 또 있나요.

“재작년에 청주대학교에 4년제로 개설 됐고요. 올해 주성대학에서도 30명 신입생을 받았어요. 내일 ‘6.9제’ 행사 때도 3개 대학이 공동으로 행사를 합니다.”

―청주대는 4년제인데.

“원래 2년제로 출범했어요. 하다 보니 영역이 넓어졌지요. 현재 충청대학에서도 3년제 입니다. 커리큘럼이 많아지다 보니 지금은 4년제로 넘어가고 있는 과도기지요.”

―교수님은 주로 무엇을 가르치시나요.

“치생위상과는 기초과목과 임상과목으로 나눠져요. 저는 임상과목이지요. 병원에서 환자볼 때 필요한 과목이에요. 진료보조적인 과목 등을 주로 다루지요.”

―학생들 취업에 실질적으로 도움 되는 과목이겠네요.

“어느 분야에 도움 되느냐가 문제인데 수업시간에 주로 제가 겪었던 일, 환자들과의 관계 등을 강의하고 교과서에서 볼 수 없는 임상적인 면들을 알려 주려고 노력합니다.”

―치과가 아닌 공무원으로 취업하는 경우도 있나요.

“그렇지요. 보건소로 나간다든가, 치과 관련 회사 홍보 쪽으로 나가는 경우도 있는데 대부분은 치과 진료실 취업이 많습니다.”

―청주에서 태어나 학교는 서울서 초등학교부터 다니셨는데,

“6.25전쟁 중에 청주에서 태어나 힘든 시기에 집안이 기울고, 가족들이 흩어지다 보니 서울로 이사를 갔지요. 서울 왕십리에서 살았습니다. 사범대부속국민학교를 거쳐 경복중학교로 진학했는데 공부를 잘했으면 경복고를 가는데 게을러서 동성고를 2차로 들어갔어요. 워낙 학업이 떨어져서 못 간 것이지요.”

―웬만하면 서울서 개업 했을 텐데, 어떻게 기억도 희미한 청주서 개업할 생각을 하셨나요.

“외삼촌이 한분 계셨어요. 그 당시는 대학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군 복무를 마치면 개업을 했어요. 국군 부산통합병원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는 길에 조치원을 지날 때 쯤 해서 고민을 하다가 내렸어요. 청주가 그래도 고향인데, 한번 찾아보자 해서 들렸을 때 당시 치과가 청주에 14개뿐이었어요. 80년대 초였지요. 집세도 서울에 비해 저렴했고요. 개원해 일하다보니 환자들과 정들고, 눌러 있다 보니 30년이 됐네요.”

―치과의사로서도 바쁘셨겠지만 협회에서도 많은 일을 하셨죠.

“청주시 치과의사회와 충북도 회장을 역임했지만 특별한 사업은 없었고요, 대개 회원들 복지관계라든가, 협회 업무였죠. 아까 말씀드렸듯이 충북도 회장으로 있을 때 회관을 마련한 게 생각납니다. 그동안 선배님들도 생각을 해 오셨고, 또 예산도 많이 모아놓으셨고 해서 결말을 지어야 하는데, 새로 건물 짓기는 부동산 값이 오르고 해서 율량동 럭키아파트 앞 상가 3층을 구입 했지요. 현재 충북치과의사회 회관입니다.”

―청주에서 처음 개원하실 때 치과가 14곳이라고 하셨는데, 지금은 훨씬 많겠지요.

“확실하게는 몰라도 170여 곳(청주·청원지역 160개소-충북 260개소)정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인구수에 비해서 치과수가 몇 배 더 많이 늘어난 것이지요. 그만큼 환자들이 치과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고, 우리나라 의료보험제가 전 세계적으로도 굉장히 성공된 보험이잖아요. 그래서 문턱도 낮아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까지 치과 가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이직도 많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치과에 가면 옆에서 붙들고 ‘너 입 안 벌릴래’ 하고 반 강압적으로 치료했거든요. 그렇게 하니 어릴 때 공포심이 남아 있거든요. 어른이 돼서도 그런 기억때문에 치과를 멀리하게 되지요. 지금은 소아치과 분야도 발달 돼서 처음에 어린 환자들이 오면 무조건 치료하는 게 아니라 기구도 만져보게 하고, 치과와 친해지게 하려는 노력을 많이 해요. 놀다만 가게 하기도 하면서 접근을 쉽게 하는 시스템으로 가고 있거든요. 지금 아이들이 성장해서는 그런 인식이 많이 없어질 거예요.”

―지금도 유치를 집에서 실로 빼는 경우가 있지요?

“유치라는 것은 영구치가 올라오면 유치 뿌리가 전부 흡수돼 저절로 탈락되게 돼 있거든요. 덧니가 나오는 경우는 뿌리 흡수가 잘 안되니까 치과에서 뽑아줘야 되지만 그렇지 않고 잘나온 이 같은 경우는 밥 먹다가도 빠지고 그러지요. 실상 제 아이들도 제가 이 뽑은 기억이 없어요.”

―치과 기술이 상당히 발전됐는데, 어느 정도인지요.

“지금 ‘임플란트’ 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를 심는 것인데 임플란트가 ‘치과의 꽃’이라고도 해요. 재료의 발달이지요. 재료 발달이 치과 의술을 견인하고 있지요. 앞으로는 임플란트 말고 치아를 생기게 하는 ‘치배’가 등장하게 될거 같아요. 배아라고 하지요. 줄기세포를 이용해서 그 치배를 만들어서 자연치아를 나올 수 있게 하는 연구가 일각에서 진행이 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렇게 되면 치과 의사들 큰일나지요.”

― ‘치아의 날’ 행사에서도 ‘불소도포’를 하고 있는데 청주시가 ‘불소화사업(수돗물 불소농도조정사업)’ 전국 시범도시로 선정돼 1982년 2월부터 2003년말 까지 21년간 시행에 왔었습니다. 어떻게 중단됐나요.

“청주시의회에서 예산이 삭감되면서 중단됐어요. 시민단체 등에서 불소화가 검증되지 않은 채 시행하고 있다는 반대 여론을 제기했는데 예방치과 전문하신 분들은 근거 없는 말이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시민단체 등에서는 21년 동안 문제없었던 불소화 사업을 왜 중단하라고 했나요.

“부작용을 우려했는데 근거 없는 얘기예요. 예방치과 의사들은 그들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요. 지금 데이터가 예방치과 교실에 나와 있는 것으로 아는데 우암초등학교를 대상으로 몇 년 동안 거쳐 표본조사를 했어요. 충치(우식치아) 발생률이 상당히 줄었다는 것을 확인 했어요. 그것이 확인됐기 때문에 지금 ‘실란트(홈 메우기)’ 사업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 사업은 보험이 되지만 일부 제약이 있어요. 만 6세 때 제1대구치(어금니)에 한해서 해줄 수가 있고, 2년에 한번 하지요. 보험으로 전면 개방된 것이 아니기때문에 홈 메우기 사업과 병행해 불소화 사업을 하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지요.”

(청주시의회는 2003년 4월 24일 시정 질문을 통해 불소화 사업 타당성 문제를 제기했고, 시는 같은 해 11월 시민 1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를 통해 반대가 많다는 근거로 사업을 전면 중단했다)

―수돗물에 불소를 넣으면 충치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저비용으로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 있지요. 청주지역이 시범사업 지역이었는데 시범지역에서 없어지면 다른 지역에서 없어지는 것 보다 타격이 큽니다. 그 당시 청주와 진주에서 시행하였는데 지금은 없어지고, 제천에서는 올해서부터 다시 시행을 하고 있어요. 불소가 1ppm 이상으로 들어갔을 때 누적이 되면 부작용 등이 나타날 수도 있는데, 대개 0.7~0.8ppm 정도가 투여 되지요. 그 정도면 마셔도 되는 양이거든요. 가장 저렴하면서 가장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사업입니다. 개별적으로 치과에서 불소도포를 하면 비용이 많이 들어가거든요. 비용도 절감 되고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기 때문에 국민건강을 위해 바람직한 사업이지요.”

―지금이라도 할 추진할 계획은 없나요.

“불소와 홈메우기는 대표적인 예방사업이지요. 기회가 된다면 청주시의회와 함께 예방치과 교수님들을 모시고 의견을 구하고 토론하는 자리가 있었으면 합니다. 시범사업을 했던 지역에서 한순간에 포기한다는 게 아쉬움이 너무도 큽니다.”

―가족은.

“딸은 결혼해서 호주에 살고 있고, 아들은 미혼인데 섬마을 대부도에서 교사로 있어요. 어머니를 모시고 있고, 여동생은 20년 전에 캐나다로 이민 갔지요.”

―내일이 치아의 날인데 특별히 치아의 중요성과 관련해 동양일보 독자에게 하실 말씀은.

“우리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 보다 잃기 전에 고쳐야지요. 그런 차원에서 예방, 구강관리, 정기검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좌우명이 ‘최선을 다하고. 남을 나처럼 사랑하자’ 인데요.

“1등만 아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우스갯소리도 하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고 결과에 대해 뭐라고 하면 그것은 완전 날로 먹으려는 것이죠. 결과가 안 좋아도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면 아름다워요.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두 유어 베스트~’를 강조했습니다. 남을 생각할 때 내 자신처럼, 입장 바꿔보면 그 사람 의견도 항상 맞는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항상 내 의견이 맞는다는 아집은 버리고 살려고 합니다.”

남 교수는 ‘위로 받기 보다는 위로하며,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고,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고…’ ‘평화의 기도문’을 늘 가슴에 새기고 있다고 했다.

▶대담·글 / 김홍균 편집국장

▶기록 / 오상우 ▶사진/임동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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