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잠자고 있던 백제의 혼을 일깨우겠습니다"

 

이성우 李聖雨 총장은…
△1954년 3월 10일 충남 천안군 수신면 백자리 378 출생 △천안 수신초-병천중-병천고(1970)-한국방송통신대(1985)-고려대 정책대학원정책학과(1999) △천원군청-충남도청-농촌진흥원-내무부장관실(1975~1992) △충남공무원연수원교수부-충남도서울사무소장-충남도청문화관광과장(1996~2002) △충남도청문화예술과장-공보관-청양부군수-공보관(2004~2009) △백제문화제추진위원회 파견-현 세계대백제전조직위원회 사무총장(총장실-충남 부여군 규암면 합정리 575. ☏041-837-6961) △가족, 부인 이용자(57)씨와 장남 현철(32·회사원)차남 호창(30·기자).

 … 쇠방울소리 뿌리면서/순사의 자전거가 아득한 길을 사라지고/그럴 때면 우리들은 흙토방 아래/가슴 두근거리며/노래 배워 주던 그 양품장수 할머닐 기다렸다.//새야 새야 파랑새야/녹두밭에 앉지 마라./녹두꽃 떨어지면/청포장수 울고 간다.//잘은 몰랐지만 그 무렵/그 노랜 침장이에게 잡혀가는/노래라 했다.//…(중략)…//내가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그 가슴 두근거리는 큰 역사를/몸으로 겪은 사람들이 그땐/그 오포 부는 하늘 아래 더러 살고 있었단다.//앞마을 뒷동산 해만 뜨면/철없는 강아지처럼 뛰어 다니는 기억 속에/그래서 그분들은 이따금/이야기의 씨를 심어주고 싶었던 것이리.//그 이야기의 씨들은/떡잎이 솟고 가지가 갈라져/어느 가을 무성하게 꽃피리라.//그 일을 그분들은 예감했던 걸까./그래서 눈보라치는 동짓달/콩강개 묻힌 아랫목에서/숨막히는 삼복(三伏) 순이 엄마 목매었던/그 정자나무 근처에서/ 부채로 매밋소리/날리며 조심조심 이야기했던 걸까.//배꼽 내놓고/아랫배 긁는/그 코흘리개 꼬마들에게/… (후략)

우리의 시인 신동엽申東曄 (1930-1969)이 간암으로 죽기 두 해 전에 남긴 서사시 ‘금강’ 錦江의 제1장 일부다. 그는 부여읍 동남리에서 출생, 38세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이 시대를 대표하는 저항시인이었다.

그의 시 ‘껍데기는 가라’와 같은 절창絶唱이며, 위의 ‘금강’ 등은 그가 죽은 이듬해 백마강가에 시비를 세우게 했다. 40년이 지난 지금 시비를 돌아보면 조금은 초라하다. 그러나 언제 시인이, 시인의 비가 제대로 대접 받던 때가 있었던가.

그런데 지금, 신동엽이 그토록 사랑하던 곳-그 부여 땅에 ‘1400년 전 대 백제의 부활’을 외치는 함성이 들불처럼 번진다.

이 곳 사람들조차 처음엔 ‘무덤덤’해 했다. 그저 행정관청에서 부여와 공주에서 격년제로 치르던 ‘백제문화제’를 이번엔 좀 크게 치르는 가 했다. 그런데 지난 2007년부터 부여-공주 통합개최로 그 세勢를 키우더니, 지난해부터 ‘2010 세계대백제전’(9월 18일~10월 17일 30일간)의 이름으로 부여와 공주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수류탄이 굴러도 발로 밀어 놓고 간다’는 충청도 사람들의 느긋한 심성과 행동이라지만, 이제는 이 큰 행사에 관한 관심이 예사롭지 않아 그 새 바람의 진원지를 찾았다.

폭우가 쏟아지는 14일 오전 11시,

충남 부여군 규암면 합정리에 있는 세계대백제전世界大百濟典조직위 사무총장실. 탄탄한 체격에 열정이 넘치는 이성우 총장과 언론계 출신의 조직위 강재규 대변인, 평생을 부여지역 언론인으로 살고 있는 동양일보 박유화 부장이 함께 반긴다.

240억원을 투입하는 큰 행사의 개막이 불과 1개월 밖에 남지 않았으니 주최 측 총사령탑의 심신이 오죽 바쁘겠나 싶어 만나자 마자 대담을 서둘렀다.

 

-몸과 마음이 바쁘겠습니다. 개막일이 코 앞 이어서요. 개막식과 폐막식 장소가 다르지요?

“그렇습니다. 개막식은 9월 17일 부여의 백제문화단지에서, 폐막식은 10월 17일 공주의 고마나루 예술마당에서 갖습니다. 황산벌전투의 재현은 논산에서 갖습니다만 30일간의 대부분 행사는 유서 깊은 금강과 백마강일대가 주 무대가 됩니다. D-35인 오늘의 느낌은 학교 다닐 때 종아리 맞으려고 기다릴 때의 그 심정입니다. 이 행사는 세계인들에게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어서 더욱 그러합니다.”

-세계인이라면?

“‘세계대백제전’에는 45개국에서 손님들이 오게 돼 있습니다. 일본, 중국을 비롯해 1400년 전 백제와 교류했던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 필리핀 등 6 개국이 있습니다. 독일, 남미에서도 오고, 22개국의 예술교류단체들이 옵니다. 국제학술회의도 그 기간 동안에 개최 합니다.”

- 국제학술회의 주제는요?

“백제사百濟史하고, 세계 역사도시가 어떻게 교류하면서 발전할 것인가. 또 백제사는 어떻게 진행됐나, 또 앞으로의 전망 등이지요.”

-오늘 외부손님들이 많이 온다고 들었습니다.

“140명 정도가 옵니다. 9월 1일 개장하는 롯데리조트로. 신축된 롯데는 총 322실인데, 여기에 호텔형이 234실이고 콘도가 88실입니다. 오늘 총 점검을 합니다. 322실 풀가동하면서 우리에게 70실을 줬습니다. 서울에 사는 충청향우회 40명, 인천도민회 46명이 오고, 우리 도 출입기자단을 비롯해 전국의 언론사 임원과 기자들이 미리 와서 행사준비상황을 돌아보게 됩니다.”

- 백제에 대한 느낌이 남들과 달랐을 텐데요.

“저는 학교 다닐 때 국사 공부를 꽤 했어요. 역사에 관심이 있었지요. 그런데 그 때는 백제 의자왕이 나라를 잘못 다스리다가 망했다고만 배웠거든요. 작년에 이곳 총장으로 오면서 분석해보고 자문도 받았지요. 백제가 어떻게 나당연합군에게 한방에 무너졌나 알아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백제가 너무 강하다보니 고구려 신라한테 견제를 받았던 거예요. 어느 정도냐 하면 의자왕이 부국강경책 쓰고 예술문화에 뛰어난 조예가 있었는데, 너무 관리를 잘 하다 보니 장수들이 충성경쟁을 했어요. 그 중 윤충 장군을 너무 총애 했는데 그가 자꾸 신라군들을 밤에 가서 목을 베어 오고 못살게 구는 거예요. 윤충이 어느 날 대야성 공격을 하는데 거기 성주가 김품석 입니다. 윤충의 군사들이 성주나 군사들을 해치는 게 아니라 그들의 부인과 아들, 일가, 양민들까지를 거의 몰살하듯 했어요. 김품석이가 김춘추 사위인데, 이런 일로 신라의 세력가였던 김춘추가 더 이상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고구려 응원을 받으러 갔지요. 구원요청을 한 것 이예요. 백제 때문에 못살겠다고 도와달라고. 당시 고구려의 연개소문. 백제의 계백. 신라의 김춘추로 걸출한 장수들이 국가권력의 핵심으로 세력 균등점이 돼있을 때였는데, 연개소문 장군이 김춘추에게 신라가 백제를 건드리면 당신들이 망한다고 가만히 있으라며 안 도와준 거예요. 그러니 김춘추는 한 맺힌 백제를 치기위해 당나라 소정방한테 간 것이지요.”

-그러니까 백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듯 의자왕의 방탕放蕩한 생활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지요? 패망국의 역사란 패인敗因만 남는 것이어서 그랬을 것입니다. 우리 국사교육이 잘못 된 것도 그런 것인데, 백제를 돌이켜 보니까 실제로는 어떤 나라였는지요.

“BC18~AD660년 까지 678년 31대 왕이 이어온 동아시아 문명교류의 시발점이며, 문화왕국이자 해상왕국이었습니다. 해상실크로드를 개척한 나라지요.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갈수록 백제의 개척적인 기상과, 교류를 통해 다른 나라와 더불어 살고자한 평화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정신은 놀랄 만 한 것이란 사실을 다시 확인 했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모두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 이예요. 이번 대백제전이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당한, 신라한테 폄하된 역사인식을 이번에 만회시키고 자연스럽게 백제가 위대한 나라였음을 공인받고자 합니다.”

-백제 700년은 고구려나 신라에 비해서 우월했던 나라였지요? 그것을 우리가 잊고 있거나 모른 채 있던 것이 오히려 일부 일본인들보다도 더 못한 수준이라고 개탄하는 학자도 있더군요. 그것을 이번 기회에 복원을 시키자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마당에서 집약되는 그때의 백제 정신은 뭐였나요?

“저는 그것이 충청도 선비정신의 밑바탕이란 생각을 합니다. 백제의 정신을 요약한다면 ‘개척’과 ‘교류’의 정신입니다. 국가간의 교류를 이미 1400여년전에 시작한 국가가 백제였습니다. 교류는 소통이고, 소통을 위해 그러한 관계를 개척해야하지요. 현대 국제정치의 지향점을 백제인들은 1400년 전에 시작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만큼 문명대국이었지요.”

-이번 행사는 사실상 오랜 준비와 밑그림이 있었다고 보아야 하지요? 이미 1994년부터 2013년까지 20년간을 정해 ‘백제문화단지’(부여군 규암면 합정리 일원 3294천㎡)를 조성해오고 있다는 것을 충남이외의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더군요. 사업비가 6904억원(국비1709억원,지방비 2078억원, 민자 3117억원)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데 쓰였는지요.

“100만평의 백제문화단지는 공공투자로 사비성·역사문화관·기반시설·한국전통문화학교를 세웠습니다. 민자유치로 테마파크·백제테마아울렛·숙박시설·체육시설 등을 세우지요. 2년 후엔 백제문화단지의 위용이 드러날 것입니다. 시행은 충남도와 문화재청(한국전통문화학교), 롯데부여리조트(주)입니다.”

-이번 행사준비도 여러 해 했나요?

“3년을 준비했습니다. 2007년부터 백제문화제가 통합을 했습니다. 오랫동안 공주·부여의 격년 개최를 통합한 것 입니다. 1955년부터 부여지역 유지들을 중심으로 백제말의 3충신成忠·興首·階伯제향과 낙화암에서 백마강에 몸을 던진 백제여인들의 넋을 기리는 수륙제가 효시였습니다. 1957년에 이 행사가 충남도 주최로 되고, 66년도에 12회 행사부터 부여·공주 동시개최로, 79년 25회 때부터 부여·공주 격년제 개최로, 80년대 이후 행사규모가 확대돼 대한민국대표 역사문화축제로 발전돼 왔지요. 민선4기 이완구 지사가 오면서 이것은 충남도의 축제가 아니고 고대국가의 국가적 축제라고 했지요. 예산이 그 전에는 해마다 8억원 정도였던 것을 2007년도에 40억원으로, 2008년에 80억원, 작년에는 100억 원으로 올라갔지요. 이번 대백제전엔 국비 30억원에 도비가 100억원, 공주·부여가 100억원 등을 합쳐 총 240억원이 쓰입니다.”

-기대효과를 돈으로 환산한다면?

“충남미래포럼에서 분석한 결과는 2400억원으로 나왔습니다. 투자의 10배지요.”

-2400억의 경제적 효과가 있다고 보는 것은 주최 측이고, 주민들 반응은 어떤지요.

“본격적인 공사를 할 때까지 무덤덤하고, 저게 과연 잘 되겠는가? 그동안 수십년간을 오면서도 이랬는데, 지어봐야 세트장 정도겠지 라고 예측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작년부터 피부로 느끼는 것 같습니다. ‘정말 실현 되나보다’ 라고요. 우리지역이 상당히 좋아지는데 과연 어떻게 좋아 질지 이제는 기대를 하고 있어요. 여기에 참여하게 되는 인력, 고용 노동력도 있고요. 그래서 관광객들이 떨어뜨릴 부가가치 등에 대한 기대가 부풀어 있지요. 그리고 현실화 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고 있습니다. 타 지역에서 굉장히 동경하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대백제전이라고 해서 시장군수들이 교류 하는데 부여가 천지개벽 된다고 다른 지역 사람들의 관심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충청도 말로 ‘그렇댜’라고 할 정도로 자기들도 인지하고 느끼고 있는 것이지요. 잠자던 백제의 고도 부여가 ‘천지개벽 된댜’ 지요.”

-대백제전 방문객 수를 얼마로 잡고 있는지요.

“국내에서 240만 명, 외국에서 20만명 등 총 260만명으로 잡고 있습니다. 외국관람객은 일본에서 10만명을 잡고 있는데 목표대로 될 것으로 봅니다. 이들이 청주국제공항을 통해 들어올 것이어서 청주공항 활성화에도 한 몫을 할 것으로 봅니다.”

-힘들었던 일은?

“저희 조직위는 힘들었다는 생각보다는 이것을 해내겠다는 절대절명의 의지가 앞섰어요. 힘든 것은 그때뿐이고, 어떻게든 ‘대박’을 내야겠다는 생각 이예요. 힘든 것은 잠시지요. 힘들다면 아무래도 예산이지요. 우리 구상은 240억에 구성비가 프로그램에 3년 전부터 용역을 줘서 사업하는데 용역결과 프로그램비중이 55% 정도 돼야 하는데 65%정도가 나왔어요. 도에서 22개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신규가 13개나 됩니다. 프로그램이 많이 욕심나서 투자하자니 행사 운영비, 홍보비가 상대적으로 적은 거예요. 그래서 그 예산을 조정하는데 좀 힘들었어요. 그래도 재 조정해서 균형을 갖췄습니다.”

-감동적이었던 일이었다면?

“저희들이 정말 힘들 것이라는 핵심대표 프로그램이 있어요. 백제는 해외 진출하는 게 금강유역으로 해서 바다로 나갔거든요. 서천 앞바다로 나가는데 금강유역을 중심으로 한 아이템을 개발했어요. 공주는 ‘고마나루’ 수상공연, 부여는 ‘낙화암’에서 수상공연 하는데, 이게 될 것인가 모두가 의아스러워 했는데 우리가 그것을 해냈습니다. 저희들은 과연 우리 국민들이 낮에 가서 보는, 문화욕구는 많은데 시설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수상공연을 해보자고 해서 밤에 야간프로그램으로 두 개를 했는데 이것을 성공시켰다는 것이지요. 이달 25일이면 선을 보여줍니다. 배우, 극작가 등이 동원되는데 현재 잘 되고 있어요. 한국종합예술학교에서 맡아서. 국내에서 자문 받으러 다니니까 우리나라에서 되겠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어요. 이번 행사가 끝난 후에도 겨울을 빼곤 3계절 언제나 공연을 계속할 계획입니다.”

-수상공연이 성공하면 정기공연을 한다고요?

“예. 앞으로 계속 할 것입니다. 이번 프로그램이 세계적인 프로그램이 되는 것이지요.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신다면…

“2007년도에 수상공연장을 세우는데 60억 들어요. 그것을 금강 살리기 사업으로 한다는 거예요. 딱 맞은 거예요. 도지사가 쫓아가서 말하니 해주겠다고 해요. 60억 들여서 파줘서 우리가 44억 들어가는데 토탈 100억이지요. 수상무대가 100m×40m입니다. 공주 것이 1352석, 부여가 1322석입니다.

공주는 고마나루 수상공연으로 ‘사마 이야기’로 무령왕 일대기이고, 부여는 낙화암 수상공원인데 ‘사비미르’로 의자왕에 관한 내용입니다. ‘사비’는 부여의 고어이고, ‘미르’는 용을 말합니다. 무대는 반대편에서 낙화암 쪽으로 쏘는 거예요. 60억을 국토부에서 해줘서 하는데 마침 4대강 사업이 돼서 70억 정도 세이브 받았지요. 그게 역작입니다. 우리는 이걸 한다니까 전남 영암에서도 ‘왕인축제’를 하는데 거기도 한다고 하고 벌써 벤치마킹 들어갔어요. 올해 이거 성공하면 내년 봄부터 정기적인 공연으로 됩니다.“

- 지금도 입술이 부르텄는데, 몇 시간 잡니까?

“지난주에 이어 입술이 또 터졌습니다. 개막일이 가까울수록 일이 많아지고 새로 할 일들이 많아지네요. 하루에 4~5시간 잡니다. 여러 가지 생각 때문에 12시 이전엔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공무원 생활 중 제일 힘이 들던가요?

“그렇습니다. 소명감으로 알고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대백제전을 치러야 한다는 소명의식으로 꽉 찼습니다. 이완구 지사님이 부군수 때부터 ‘어떤 일을 맡아서 해야 한다’는 언질을 몇 번 주셨었습니다. 지금 와서 보니 그 일이 바로 이 대백제전이었습니다. 윗분들의 깊은 속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대백제전을 직접 지휘하면서 공무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은?

“공직자는 역사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역사의식이 우선 공직관에 농익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공직선서도 합니다만, 제나라 역사를 제대로 모르면서 어떻게 공직에 임합니까? 더 나아가 학교에서도 그 단계에 맞는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줘야 할 것입니다. 이번 일‘대백제전’같은 일은 제가 원한다고 되겠습니까? 저는 열정, 일에 대한 열정 이외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고자 하는 욕망, 일을 맡으면 끝내는 근성, 이것을 지금껏 보여 왔고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행사는 어떻게든 대박이 나도록 해야지요.”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이라면…

“이번 이 대백제전이 대박이 나면 1400년 전 동아시아의 구심점이었던 백제가 정말 대단했던 나라임이 새롭게 각인되는 것이고, 그때 국민정신이 현재와 규합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국가의 기운상승도 자연스럽게 마련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선 이 행사를 주도하는 주최 측이나 지역주민, 모든 유관기관단체들의 진정한 협력이 절실합니다. 특히 언론의 관심을 당부 드립니다.”

-옛 백제기마군단의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부디 예정하신대로 백제의 웅혼이 되살아나는 행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대담·글/ 조철호 동양일보 회장

▶기록/오상우 ▶사진/임동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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