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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충 준 동양대 교수
안 충 준 동양대 교수
  • 동양일보
  • 승인 2010.12.06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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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나 주례할 때 ‘국민의례’부터 시작하는 장군출신 교수
 

안충준 安忠濬 교수는…

△1945년 1월 7일 함경북도 회령 출생 △충북 괴산군 감물면 이담리에서 성장 △괴산 이담초-충주사범병설중-충주사범졸(1963) △초등학교 교사(1963~65) △육군사관학교 졸(1969.25기) △육군대-미국 캘리포니아주 험볼트주립대 졸(1982) △1군 사령부 인사처장(육군준장. 1993) △보병 제3사단장(육군소장. 1997) △인도.파키스탄 평화유지군(UN P.K.O)사령관 및 UN사무총장 대리 특사(1997) △육군교육사령부 부사령관-전역(2000) △경기대-동 정치전문대학원 졸(국제정치학 박사. 2002) △동양대 교수(2002) △저서:‘잠재능력 계발적용훈련사례’(1974)‘보병대대 전투교범’.‘보병대대 전술시험교본’(1974) ‘영원한 소대장’(1998) ‘장군의 인생수첩’(2000) 등 △가족:처-유동진(62) 딸-진숙(34·전쟁기념관 교육문화부 대리) 아들-병우(31·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중남미개발그룹 선임연구원) 자부-김희제(31·포스코 마케팅본부 냉연판매그룹 대리)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교동마을 현대홈타운102-901 ☏016-734-0158.

 

안충준-. 그는 2년간의 초등학교 교사를 접고 육사에 들어가, 임관 후 월남전 참전 등 일선 지휘관을 하다가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원에서 600여명의 유학생 중 전 과목 A학점을 따내 이 대학 창설(1812)이후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모범학생패’를 받아 눈길을 끌었었다. 이 일은 이 대학 유일한 한국 유학생이자 군인(육군 중령)신분의 학생이어서 더욱 뉴스가 됐다.

 

이름에 충성 충(忠)자가 있어 자신도 모르게 국가와 민족에 관한 ‘뜨거움’이 있었다는 그는 그 후 장군이 되고, 한국군 최초로 인도. 파키스탄 평화유지군(UN PKO)사령관이 됐다. 보병 사단장까지 36년간의 군 생활은 화려했다. 중대장 땐 재구상(1974), 대대장 땐 선봉대대상(1983), 연대장 땐 선봉연대상(1989), 사단장 땐 육군 BCTP 최우수부대상(1996)을 수상 했고, 보국훈장월남 명예 1등훈장. 보국훈장 삼일장. 미국공로훈장 (2회). 보국훈장 천수장 등을 받아 부러움을 샀다. 충주 교현초 3학년 때 한 반에서 1,2등을 겨루던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외교관으로, 그는 무관으로 정상을 향해 달리던 죽마고우였다. 군복을 벗자 그는 군사정책학 석사와 국제정치학 박사가 돼 교수가 된다. 시간 맞춰 강의를 하고 끝나면 곧장 강의실을 떠나는 일반 교수들과는 다른 ‘별난 교수’가 돼 학생들에게는 꽤나 인기 있는 ‘장군 교수‘다. 그를 별나게 한 건 투철한 국가관과 초지일관하는 충성심의 발현을 행동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가 초빙교수로 몸담고 있는 동양대와 외래교수로 강의를 나오고 있는 충주대에서 그는 강의시간에 들어오면 우선 학생들과 함께 ‘국민의례’로 시작한다. 자신이 차에 늘 갖고 다니는 태극기를 세워놓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자신이 군에 있을 때 군악대장에게 부탁하여 취입한 애국가를 4절까지 학생들과 함께 우렁차게 합창한다. 주례를 맡아 혼례를 치를 때도 마찬가지다. 신랑 신부 측과 사전 협의를 하여 국민의례를 하고 시작한다. 예식을 치르는데 국민의 의식을 선행하여야 마땅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하객들이 얼떨떨해하다간 금세 조용해지고 가슴에 손을 얹고부터는 숙연해 진단다. 지난 9월부터 전교생들에게 ‘국가관’과 ‘국가안보론’을 교양과목으로 넣어 각 3학점씩을 배정한 충주대 장병집 총장은 안 교수에 관해 묻자 “몇 년 전 서울서 치른 아드님 혼사 때도 국민의례와 애국가를 불러 퍽 이색적이었다”며 “딱딱할 것으로 예상했던 안 교수님의 국가관 강의에 학생들이 대단한 흥미와 관심을 가져 더 없이 고맙고, 내년부터는 아예 석좌교수로 모실 생각”이라며 흡족해 했다.

 

‘연평도 포격’ 사태로 전국이 냉각되고, 국가안보의식에 대한 각성이 도처에서 촉구되는 지난 1일 오후 4시, 마침 충주대에서 막 강의를 끝낸 안 교수를 대학원장실에서 만났다. 취재팀을 맞자 자리를 권하더니 제일 먼저 챙기는 것이 태극기였다. 자신이 앉은 옆에 태극기가 잘 보이도록 세워놓고는 “잘 배치됐느냐”며 사진기자에게 묻는다. 어찌 보면 별나지만, 아무래도 평생을 무인으로 살아온 이의 정직성과 군 지휘관 출신이 지니는 자기주장이 엿보여 슬몃 웃었더니 눈치 빠른 그는 “저는 집에 가거나 연구실이나 이렇게 태극기를 제일 좋은 곳에 세워놓고 있습니다.”며 따라 웃는다.

 

-반갑습니다. 연평도 사태로 어수선 합니다. 이런 때 아무래도 안 교수 같은 장군출신을 만나면 다른 시각의 말씀도 들을 것 같아서 왔습니다. 안 교수님은 ‘최초’란 수식어가 퍽이나 많이 붙는 분이시더군요. 고향인 충주에서 뵙기에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럴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초등학교 선생 출신 마지막 장군이었습니다. 한국군으로는 첫 UN 평화유지군(P.K.O)의 사령관을 했지요. 여기는 장병집 총장이 인연이 좀 있어요. 총장이 되면서 나라가 걱정돼 3학점짜리 ‘국가관’ 과목을 만들고 저를 적임자라고 와서 가르쳐 달라네요. 이번 2학기부터 3시간씩 하고 있어요. 학생들이 생각 보단 좋아해서 다행입니다.”

 

-‘국가관’이라는 과목이 충청권에서는 충주대에만 있는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 충청도에 충성 ‘충’자가 들어 있는데도… (웃음) 이 교재 만드느라 고생했지요. 이론도 중요하지만 실천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아예 또 한 개의 태극기를 제가 샀습니다. 수업하기 전에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합니다. 그랬더니 얼마 전에 국방일보 기자가 왔어요. 여기서 하루 종일 수업하는 거 듣고 신문에 내기도 했더군요.”

 

-나는 옳다고 여겨서 행하지만, 남들에게는 낯선 일이 아닌지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쇼로 하는 일과성이 아니라, 제 평생을 이렇게 해 왔습니다. 소령 때 미국 갔을 때도 우리 애들 데리고 생일이건 어떤 기념일이건 ‘국민의례’ 했고 애국가 4절까지 불렀습니다. 지금도 우리 집에는 태극기를 모셔놓고 있습니다.”

 

-주례 설때도 그렀다고 들었는데…

“결혼식 주례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장군 진급을 했는데 대부분 친구들이 선물을 무엇을 해야할 지를 물어 왔습니다. 제가 태극기 선물 해 달라고 했습니다. 늘 그래왔던 것인데 제가 요즘들어서 고연히 튀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드리려고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하셨어요?

“주례 때 국민의례 하기 시작한 것은 나라가 어수선 하고 국가관도 없고 좌익들 득세하고 정권 자체가 걱정스러우니까 저 자신만이라도 신랑 신부에게도 국가를 알게 하기 위해서 실제로 7년 전부터 해 왔지요. 예식 올리기 전에 ‘국민의례’ 한다고 말하면 대부분 좋아해요. 국민의례 하는 것 싫다면 주례 서지 않으면 되지요.”

 

- 주례를 설 때 애국가를 4절까지 합니까? 어떻게 장내분위기를 유도하는지요.

“요즘엔 대개 결혼식 시간이 짧아서 애국가는 부르지 않고 국민의례만 하고 있습니다. 애국가는 국기에 대한 경례 때 나오게 하지요. 태극기는 꼭 준비하지요. 내가 가져가서라도. 예식이 시작할 때 처음부터 말해요. ‘지금부터 결혼식 하겠습니다. 먼저 국민의례 하겠습니다. 단상에 계신 분은 태극기를 향해 서주세요’ 라고. 사전에 신랑 신부에게 말하고 사회에게도 말 하고 하지요. 지금 학교에서도 그렇게 해요. 학생들 반응이 좋아요. 결혼식장도 좋아요. 어수선하다가 다 들어와서 조용해요. 식장 밖에 있던 하객들도 얼른 들어와서 동참해요”

 

- 녹음테이프는 직접 가지고 다니시나요?

“옛날 사단장 했었으니까 군악대에 말해서 CD로 만들어서 맞춰왔지요. 그래서 우리 집이나 집무실에 와보면 태극기가 있으니까, 사실 이상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닌데 어떤 사람들은 유별나다고도 합니다.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결혼식도 좀 색다르게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럼요. 이왕 주례를 하는 김에 전통혼례를 접목시켜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결혼식 시작 전 신랑신부 어머니들이 화초점화하고 주례가 올라가면 신랑 들어가고, 신부오고 하면 바로 신랑신부 맞절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전통혼례엔 그 앞에 원래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전통혼례에서는 관세례 라는 것을 했어요.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 신랑 신부가 손을 씻어요. 그 다음에 수장례(합근례)를 했어요. 술을 반잔씩 마셔서 하나가 된다고 해요. 그 다음이 교배례입니다. 그것도 모르면서 서양식으로 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약식으로 양쪽에 우동그릇 만하게 물을 떠 놓고 손을 씻게 한 다음 설명 합니다. 그 다음에 수장례, 교배례 이어서 하고 민족혼을 되살리자는 뜻에서 그렇게 하고 있지요.”

 

- 이렇게 어떤 전통성과 국가관에 대한 이런 것들을 유별날 정도로 강조를 하시다 보면 가정이나 주변에서나 얻는 것과 잃는 것들이 있을 듯 한데요.

“아이들이나 며느리까지도 절대 좋아하고 훌륭하신 시아버지라고 해요. 며느리는 지금 포스코 다니는데 자랑스럽게 말해요. 의식을 통해서 민족 우월성, 자긍심과 비전도 가질 수 있고, 국가에 대한 새로운 마음, 애착, 그런 의지가 생긴 것이라 확신하지요.”

 

-충성 충자를 넣은 이름은 누가 작명해 주셨나요?

“할아버지께서 해 주셨어요. 함경북도 회령에서 해방 되던 해에 태어나서 거기서 지냈어요. 아버지와 남쪽으로 내려오시고 뒤 늦게 어머니와 넘어오면서 죽을 고비 넘겼다고 해요. 6.25때 감물면 이담학교를 들어갔지요. 안동준 선생은 가까운 집안입니다. 아버님이 군청 직원으로 다니셨어요. 거기서 다니다가 충주로 나오게 되면서 충주 교현학교로 전학을 했지요. 3학년 2학기 때 반기문을 만났어요. 3학년 4반 한 반에서 같이 다녔지요. 6학년 2학기 때 이담학교로 전학을 갔지요. 6.25때 괴산서 공산주의 만행을 봤거든요. 김일성 죽이고 만주까지 잡겠다는 생각이 그때부터 싹텄지요. 그래서 김일성 죽이려면 군인 돼야한다고 3학년때 부터 꿈을 꿨고 별을 달면 더 많은 일 하니까 장군 되고 싶다고 했고, 유엔군 장군 되겠다고 생각했지요. 저는 크리스찬이지만 사주팔자 보는 사람이 저에게 칼이 많대요. 능암초 선생 할 때 돈이 없을 때였는데 점쟁이들이 봉급 받는 학교로 몰려요. 방과 후 봐주는 분이 다들 ‘안 선생은 군인 돼야 하는데’라고 해요. 결정은 박정희 대통령이 민정이양 할 때였지요. 깡패들 잡아들이고 하는데 어찌나 통쾌했는지… 나도 대통령까지 한번 해보자는 생각도 들고 해서 육사를 가려고 결심하게 됐지요.”

 

- 존경하는 인물은?

“우리 집에 오면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세분의 사진이 있어요. 이순신 장군, 안중근 의사, 박정희 장군이지요. 세분이 나라를 위해 한 일이 분야가 달라요. 그분들 보면서 저도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항상 생각해요. 이순신 장군은 제가 23전 23승, 이분이 935척을 때려 부수고 우리 배 1척 손실 있었어요. 그런 기적적인 일은 혹시 기상이 좋고 운으로 가능합니다. 명랑해전에서 12척을 가지고 133척을 이긴 것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난중일기’ 한 구절- 1597년 6월 10일자 일기에 ‘아침에 일어나 월아말. 간자말. 유마들(말의 이름)의 편자를 덤덤히 박았다’고 적었습니다. 이것은 이은상씨가 쓴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신과 같은 DNA가 있어요. 요즘 말하면 별을 달고 있다가 모함 받아서 이등병으로 강등한 상황에서 그 억울한 상태에서도 나라가 위태로운데 기갑부대의 말편자를 깨끗이 갈아주는 일을 기꺼이 한다는 내용이지요. 세계 역사상 이런 사람이 없어요. 회장님이 억울하게 모함을 받아 강등 돼 자기회사 사람들의 구두를 닦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런 상황에서도 이순신 장군은 했어요. 안중근 의사는요. 올해가 순국 100주년이지요. 저도 단순하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분도 영웅입니다. 단순히 총을 쏜 것이 아니에요. 죽음을 초월하고 이놈을 죽여야 인류 평화 온다고 무릎 꿇고 기도했던, 열댓 번을 죽을 고비 넘겼어요. 풀어준 왜놈들이 고발하기도 하고…. 안중근 의사의 애국심과 국가관은 항고하지 않고 죽음에 임하는 당당한 모습. 그게 신과 같다는 것이지요. 사형선고 받은 2월 14일 이후 사형 집행 2시간 전에 간수가 써 달라는 것을 묵묵히 썼지요. 이런 것들을 보면 신이지요. 박정희 대통령은 마지막에 심수봉인가 아가씨들하고 김재규한테 총을 맞을 때 피를 흘리면서도 ‘나는 괜찮아’라고 하면서 쓰러지신 것. 인간으로 어렵습니다. 내가 총은 안 맞아 봤지만 대포나 총이 날아가면 기차가 눈앞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그 사생관이 명확하신 분이예요. 아랫사람, 부하,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 나는 괜찮아…. 라고 하는 말 초인이나 하지요.”

 

- 박 대통령의 경우 이분이 한국에서는 비판의 대상이 되는데 외국에서는 ‘박정희 통치학’이라는 것을 학문으로 배우는 대학들이 있다고 들었어요.

“제가 리더쉽을 가르치고 있어요. 한 6년 됐어요. 리더쉽 중 대통령 리더쉽만 연구한 기관이 있어요. 제가 또 그것을 분석해 강의 하는데, 30년 분석했는데 첫째로 박정희가 나와요. 그리고 세종대왕 이순신이 나와요. 분명한 것은 지금 잠시지만 언젠가 위대한 영웅으로 평가 받을 것입니다. 김연아도 넘어지는 것만 찍으면 바보 되지요. 찰나적인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우리민족의 영웅으로 받들어 모셔야 해요. PKO사령관일 때 인도·파키스탄 양쪽에 정전 감시하는 50개 UN 기구들의 대사들을 상대하는데 다들 박정희 대통령은 영웅이라고 말해요.”

 

-요즘의 안보사태에 대한 소견을 듣고 싶습니다.

“이번 사태는 잘못 된 것입니다. 손자병법을 제가 1000번 읽었어요. 그 중에 보면, ‘임금의 명령도 받아들이지 않을 때가 있다. 현지 지휘관이 판단하라’는 것 이예요. 그런 융통성을 줬어요. 또 하나는 ‘임금이 싸우지 말라고 해도 내가 이길 것 같으면 싸우라’는 게 있어요. 이런 기본이 안 돼 있어요. 당연히 폭격을 했어야 했어요.”

 

-더 들려주실 말씀이 있다면….

“저는 훌륭한 어머님이 계셔서 이렇게 살았습니다. 최근에 제가 무슨 책을 쓸 때마다 ‘징검다리’라는 것을 집어넣어요. 이 내용은 64년 능암초 교사를 할 때, 자취를 하는데 학교까지 한 500~600m되는데 중간에 20m 정도 되는 개울이 있어요. 거기 징검다리가 있습니다. 거기를 건너다 제가 넘어집니다. 저는 바지가 다 젖고, 건너편에서 빨래하던 아낙네들이 다 쳐다보니 얼마나 부끄러워요. 그래서 옷을 갈아입으러 자취방에 갔는데 마침 어머니가 오신 거예요. 넘어져서 젖은 바지를 보시더니 ‘네가 무슨 선생이냐’면서 빨리 가서 돌다리를 바로 놓고 오라는 거예요. 다른 사람 또 넘어질지 모르니까. 이제까지 이런 어머니의 깊은 뜻을 잊을 수가 없어요. 지난 일을 생각하며 제가 깨끗이 살려고 노력했어요. 지금 돌아보면, 별을 더 달을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별을 더 다는 것 보다 깨끗한 별을 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저 자신은 별 2개 뿐 이었으나 ‘깨끗한 별’이라고 확신합니다.“

 

-‘깨끗한 별’이란 표현이 퍽 많은 의미를 갖습니다.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당당한 것인지를 알 것 같습니다.

“외국군을 지휘한 것이 제가 처음이라는 것, 그것은 우리 민족의 힘이지요. 교사 출신 마지막 장군이라는 것. 미국의 민간대학 석사 출신으로서 사단장까지 한 최초의 장군이기도 합니다. 장군출신으로 가장 많은 특강을 한 사람이기도 하고, 얼마전 이사도 40번째 했습니다. 열심히 살았고, 앞으로도 깨끗하게 살고자 합니다.”

 

-남은 소망이있다면…

“개인적인 것은 생을 다하는데 까지 후진양성을 위해 이런 기회를 통해 강연하고 저의 지식과 경험을 알리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또 국가적으로는 우리 민족이 엄청난 비전이 있다고 봅니다. 2050년이면 미국이 GDP 2만1683달라, 대한민국은 2만994달러가 될 것이랍니다. 미래학자라든지 골드만삭스 뿐 아니라 여러 학자들이 그때면 한국이 최대 강국이라고 보고 있어요. 다만 북한의 불장난이 없어야 합니다. 국민들의 확고한 안보의식으로 국가의 미래가 담보돼야 됩니다. 이땅에 임진왜란·병자호란·한일합방 6.25 등 전쟁의 비극이 다시는 없어야지요. 그 것이 소망입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안 교수님의 국민의례에 관한 철학에 경의를 표합니다.

 

 

▶대담·글/ 조철호 동양일보 회장

▶기록/오상우·사진/임동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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