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연기(한국교통대 교수)

           홍연기(한국교통대 교수)

올해 1월 중 어느 날 대략 자정쯤이었던 같다. 대학에서 밤늦게까지 대학원생들과 연구과제와 관련된 실험과 토의를 진행하다가 야식을 먹기 위해 시내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에 들렀다. 주문을 하려던 찰나 주문을 받는 점원이 나에게 인사를 하였다. 잠시 누군가 싶었는데 필자가 소속된 학과의 학생임을 알았고 그 사이에 동행한 대학원생들은 그 점원과 서로 안부를 묻고 있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에게 물어보았더니 방학 중에는 매일 같이 야간에 근무하고 학기 중에는 학업 관계로 주말에만 일을 한다고 하였다. 스스로 학비를 벌겠다는 그 학생이 대견하면서도 제대로 급여는 받는지, 적절한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그리고 아르바이트로 인해 학업이 미진하지는 않는지가 걱정이 되었다.

 주지하다시피 대학생들의 아르바이트는 이제 너무 흔해져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 학생들이 드물 정도이다. 특히 필자가 재직 중인 대학의 경우 국립대의 특성상 형편이 어렵지만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많아 아르바이트를 통해 학비와 생활비를 해결하는 학생들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지난 9일 중앙일보에서 보도한 숙명여대 경영학과 서용구 교수의 ‘1985년~2015년 서울지역 대학생 빈곤화’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 지난 30년간 대학생들의 생활여건은 매우 열악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서 교수의 연구에서는 서울지역의 주요 물가와 아르바이트비의 변동 상황을 추적하였고 대학생이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나타내는 대학생 생활지수(University student Living Index, ULI)가 1985년 0.72에서 1995년 0.42, 2015년에는 0.21로 급격히 하락한 것으로 밝혀졌다. 참고로 대학생 생활지수는 1에 가까울수록 학생 스스로 학비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때 대학생 아르바이트로서 개인과외가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전문화된 교습기관이 부재한 그 시절에는 대학생의 개인과외가 희소가치를 지닐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방학 중에 몇 건만 하면 학비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대학생 개인과외가 제공하는 노동에 비해 지나친 보수를 받는 게 아니냐는 비판에 시달릴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사교육 시장이 전문화·기업화 되면서 대학생의 개인과외는 점점 설자리를 잃어버리게 되고 상당수의 대학생들이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등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문제는 이 같은 대학생 아르바이트의 최저시급이 시간당 5,580원에 불과하여 학생들의 강의시간 이외의 시간을 전부 투자한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아르바이트생의 손에 들어오는 금액은 학생 1달 생활비에는 턱없이 모자랄 수밖에 없다. 특히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경우 방과 후 상당부분의 시간을 아르바이트에 쏟은 나머지 학업에 집중할 수 없고 그에 따라 낮은 학업성취도를 보이고는 하는데 그들의 어려운 처지를 생각하면 교수로서 이에 대해 뭐라 언급하기도 민망할 경우가 있다.

 


  현재 대학에서 운영 중인 장학제도의 종류나 금액이 과거에 비해 많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훌쩍 넘어서는 대학 등록금과 높아진 생활 물가는 대학생들을 점점 학업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더욱이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학자금 대출이란 명목 하에 각종 대출을 받은 학생들이 허다한 작금의 상황은 대학입학을 채무로 시작하게 하는 비극을 만들고 있다. 대학 졸업이 취업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독립 가구로서의 독립과 함께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한 거대한 채무여서 이들이 한평생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걱정이 든다.

 며칠 전 모 인터넷 아르바이트 포털 광고에서는 유명 걸그룹 멤버를 출연시켜 최저시급, 야간수당, 인격모독을 주제로 결국 아르바이트생이 갑(甲)이라 내용이 TV를 통해 방영되어 논란이 일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자영업자와 아르바이트생의 갈등관계이다. 영세한 자영업자는 인건비를 낮추려고 하고 이에 반해 아르바이트생은 법에 명시된 급여와 노동조건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작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주체는 온데간데없고 각다분한 처지에 있는 을(乙)과 병(丙)의 싸움이 되어버려 답답할 뿐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자영업자의 열악함이 일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부당 대우를 정당화 할 수 없다는 점이다.

 대학생 쯤 되면 스스로 벌어서 학비나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건전한 사회인으로 성장하고 자립하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한참 공부하고 폭넓은 교우관계를 가져야하는 학생들이 값비싼 학비와 생활비로 인해 생계에, 빚에 매달리게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정의를 배워야 할 학생들로 하여금 사회의 비정함과 부당함을 배우게 해서도 안 된다. 이 모두 기성세대가 책임져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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