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순

신영순 시인

나는요 삼겹살 구울 때가 젤 행복해요 맨드라미같은 살점들이 눈그림자로 익거든요 날리는 눈 받아먹는 바위도 헐렁헐렁. 나무도 발랄해져요 꽃 필 때 보다 더욱, 하늘도 이때처럼 수다스러운 적 없구요 별들도 서로 발길질하며 장난친대요

계절 잊고 군자란이 삐죽 꽃대를 내민 우암산가든 내 앞의 남자 고기를 나란히나란히 줄 맞춰 음계 없는 실로폰 치듯 뒤집고 뒤집었다

사랑하는 방식을 몰라 애인과 헤어졌다고 빈 소주잔에 푸념을 그득 따라 마신다

창밖의 눈보라가 불빛을 향해 맹렬하다 그것을 바라보는 얼굴들이 불안의 바퀴를 굴리는 사이 숯불과 고기가 서로 발길질로 익고 익히고 갈 길 아득한 그 시간 꽃대 올린 군자란이 눈짓으로 잘 가요 안녕 안녕

귓속말로 해야 잘 알아듣는 밤 그 남잔 떠난 사랑을 지글지글 구워대고 눈발은 점점 거세지고 조바심은 꿈속 같고 일어설 줄 모르는 무리는 바위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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