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논설위원 / 시인)

          나기황(논설위원 / 시인)

입춘이 슬그머니 지났다. 엊그제 반짝 추위가 있었지만 바람은 이미 결이 다르다. 자연은 이처럼 조용조용 실뿌리를 깨우며 한 해의 희망을 키워가고 있는데 시국은 ‘수상’하기만 하다.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병자호란을 치른 인조 때 문신 김상헌(金尙憲)의 시조 한 구절이다.

한 나라의 재상으로서 나라 잃은 치욕 속에 인질이 되어 청나라로 끌려가는 심사가 오죽 했겠는가. 요즘 정국 돌아가는 품새도 ‘하 수상’ 하다. 새해 들어 뭔가는 좀 달라지겠지,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감은 번번이 쓴잔으로 돌아오고 만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어느 구석을 둘러봐도 속 시원한 구석이 없다. 답답한 노릇이다.

연초부터 MB의 회고록이 초를 치기 시작했다. 회고록이 나온 시점도 마뜩치 않은데 내용은 더 생뚱맞다는 반응이다. ‘대통령의 시간’은 참회록을 기대했던 국민들 앞에 방향제만 슬쩍 뿌리고 화려한 자서전으로 포장을 바꿨다. 시각차야 물론 있겠지만 주요 쟁점이 되고 있는 자원외교와 4대강 사업결과가 완벽한 성형미인으로 돌아왔으니 대놓고 봐달라는 신호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원내대표 경선은 또 어떤가. 문재인 후보의 승리로 끝났지만 만신창이 비빔밥으로 버무려졌다. 상호흠집내기가 보고 들을 수 없을 만큼 도를 넘었다. 뒷설거지가 궁금하다. 총리인준을 위한 청문회 모습도 변한 게 하나도 없다. 비교적 쿵짝을 잘 맞춰간다 싶더니 ‘언론외압파일’이 발목을 잡았다. ‘녹취록’의 공개방법도, 녹취록에 담긴 내용도 질이 좋지 않다. 날선 공방의 결과를 떠나서 총리후보자의 언론관이나 사회를 바라보는 인식이 걱정된다는 얘기다. 썩은 멍석에 도리깨질을 하듯 푸석푸석 검은 먼지만 날리고 있다.

공무원연금법도 찔러보니 땡감인 모양새다. 우왕좌왕 정책이 화를 키운다. ‘증세 없는 복지 없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 한쪽에서는 딴청을 피우고 있다. ‘13월의 보너스’가 ‘13월의 세금폭탄’으로 돌아왔다. 모두가 밥도 짓기 전에 그릇부터 깬 격이다.

지방뉴스도 다를 게 없다. 삼류드라마 한편이 끝났다. 항소에 추가기소에 7개월간의 공방 끝에 ‘충북교육감 불법선거 의혹’은 ‘무죄’판결을 받았다. 내용도 연출도 부실했다. 그 여파로 충북교육은 한 해 파종으로 병든 씨앗을 뿌려야 했다.

치우고 치워도 넘쳐나는 쓰레기처럼 사회곳곳의 사건사고도 줄을 잇는다.

‘갑질’에 ‘을질’에.... 성추문도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온다. 경찰에, 검찰에, 대학교수에, 군 장성에 이르기까지, “그게 뭐라고..” 혀 차는 소리가 들리지만 여전히 줄어들지 않는다.

성(性)이 성(聖)이기를 바랄 수는 없지만 요철(凹凸)로만 해석되는 비뚤어진 성(性)의식이 문제다. 드라마도 ‘막장’이 아니면 통하지 않는다. 감동에 대한 미각(味覺)을 잃은 탓이다.

 

구약성서의 인물 ‘욥’의 장탄식이 들리는 듯하다.

“인생은 땅위에서 고역이요, 그 나날은 날품팔이의 날과 같지 않은가? 그렇게 나도 허망한 달들을 물려받고, 고통의 밤들을 나누어 받았네.”

‘욥’은 성서 안에서 죽기를 소망할 만큼 고통과 시련 속에 산 인물이다.

동시에 굳건한 믿음과 희망을 버리지 않은 덕에 해피엔딩을 이룬 인생승리의 표본이기도 하다.

 


주위를 돌아보면 ‘시절이 하 수상’해서 오히려 떠나고 싶다. 못 본 척, 못 들은 척 외면하고 싶을 때가 많다. 2월이 주는 바람은 아직 차다. 하지만 따뜻한 기운을 품고 있다.

설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새해 계획도 안녕하신지 다시 점검해볼 때다.

“나의 나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게 희망도 없이 사라져 가는 구려.”

‘욥’의 탄식은 절망이 아니라 겸손한 깨달음이다.

‘시절이 하 수상’하긴 해도 희망을 낳기 위한 산고(産苦)쯤으로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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