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임후 사회 봉사하는 일 찾을 것"

▲ 이임식을 마친 정홍원 국무총리가 16일 정부서울청사를 떠나며 손을 흔들고 있다.

(동양일보) 역대 어느 총리보다 우여곡절도, 마음고생도 많았던 정홍원 총리가 12일 마침내 직을 내려놓게 됐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2013년 2월 26일 총리직을 수행한 정 총리는 만 2년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정 총리는 취임사를 통해 "낮은 자세로 국민에게 다가가 열심히 듣고 소통하는 국민 곁의 총리가 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한 책임총리제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지만, 정 총리는 자신의 각오대로 '튀는' 언행 대신 차분하고 조용한 행보를 이어갔다.

관리형 총리로서 내각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이끌어가던 정 총리는 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사고 당시 해외순방 중이던 정 총리는 급거 귀국해 진도실내체육관을 찾았으나 분노한 희생자와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참사 후 11일 만인 지난해 4월 27일 정 총리는 참사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고, 박 대통령은 사고 수습 이후 사표를 수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사태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됐다.

박 대통령이 후임으로 지명한 안대희, 문창극 후보자가 줄줄이 낙마하면서 사의 표명 60일 만에 다시 유임이 결정된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두 차례나 짐을 쌌다 풀었던 정 총리는 전남 진도를 다시 찾아 눈물을 흘리며 "국가개조사업에 남은 힘을 다 쏟고, 실종자 여러분이 가족 품에 안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정 총리는 사회 곳곳의 갈등 현장과 민생 취약지대를 찾아 사회통합과 국가혁신을 위한 행보에 주력했다.

정 총리는 반구대 암각화 보존 문제나 밀양 송전탑 문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대책 등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던 사안과 관련해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조율하고 중재하는 역할을 자임했다.

정 총리도 이임을 앞두고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들 사안의 해결을 위한 기초를 닦은 일을 가장 보람있는 일로 꼽았다.

겨울이면 거의 매 주말마다 소외계층을 찾아 생활에 어려움이 없는지 챙기고 관계자들을 격려했으며,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찾아 호국 보훈의 정신을 되새기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취임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 현장행보가 애국지사 방문이었던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였다.

지난해 7월에는 부패척결추진단을 출범시키고 공직기강 확립과 부패척결의 고삐를 조였다. 추진단은 검·경, 관계부처와 함께 5개월간 1600여건의 비리를 적발하는 성과를 냈다.

'총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취임 초기의 평가가 어느덧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한다'는 평가로 바뀌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박 대통령도 연말 끊이지 않던 여의도발 개각설에도 불구하고 정 총리에 대해 사실상 유임 메시지를 전달하며 힘을 실어줬다.

그리고 올들어 정 총리는 경제번영과 사회융합, 남북평화를 국정운영 방향으로 제시하며 한층 의욕적인 행보를 펼쳤다.

총리로서는 이례적으로 국회에서 상임위원장들과 잇따라 만나며 주요 민생·경제활성화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당부했으며, 경제·사회부총리와 3인 정례 협의체를 가동했다.

일각에서는 '최장수 총리'였던 김황식 전 총리의 2년 5개월 재임기록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정 총리는 연말정산과 문건유출 파문 등 각종 악재에 휩싸인 청와대의 쇄신 국면에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정 총리는 최근 간담회에서 향후 계획에 대한 질문에 "뭔가 사회에 봉사하는 좋은 일이 있을까 찾아보려 한다"고 말했다. 다른 고위 공직자들처럼 로펌에 취업할 생각이 있느냐는 주변의 질문에는 단호히 그럴 생각이 없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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