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기 황(논설위원, 시인)

       나 기 황(논설위원, 시인)

2월은 짧다. 일없이 바빠서 더욱 짧게 느껴지는 달이 2월이다. 신년인가 싶다가 어느새    턱 밑에 와 있는 게 2월이다. 설 연휴까지 세트로 끼어 있으니 앞뒤로 설렁설렁 일은 일대로 날은 날대로 달아나버린다.

2월은 태생부터 유별나다. 일설에 의하면 기원전 46년 로마의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율리우스력(曆)을 만들면서 자신이 태어난 7월(July)을 31일로 채우기 위해 2월에서 하루를 빼갔다 한다. 그 후 아우구스트 황제 역시 태어난 달에 자신의 이름을 따서 8월(August)이라 명명하고 2월에서 하루를 빼서 보탰다한다. 진짜 속내야 알 수 없지만 예나지금이나 가진 자들의 탐욕은 여전했던 모양이다. 그로인해 2월은 28일로 여느 달에 비해 이삼일이나 모자란 홀쭉한 달이 됐다. 158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에 의해 그레고리력(曆)으로 바뀐 이후에도 2월은 1월과 3월의 징검다리쯤으로 오랫동안 서자(庶子)취급을 받아왔다.

하지만 2월만큼 매력 있는 달도 드물다. 날짜로는 짧지만 다 갖춘 달이다.

‘롱데이’와 ‘빅데이’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바쁜 날을 ‘롱데이(long day)’라 한다. 지루할 틈 없이 꽉 찬 날을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 반면에 아주 특별한 날을 ‘빅데이(big day)’라 한다. 설날이나 결혼처럼 의미 있는 날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2월은 일 년 중 가장 매력 있고 섹시한 달이다.

일 년 24절기 중 첫 번째 절기인 입춘(立春)을 앞세워 한 해를 준비시킨다. 봄을 부르고 온 천지에 축복의 기운을 소망한다. 입춘이 되면 차갑던 바람도 종가 집 맏며느리 치맛자락처럼 은근하고 부드러워진다. 2월 14일, 서양풍습인 발렌타인데이가 고명처럼 얹혀있기도 하고, 민족대명절인 설도 대개는 2월에 잡혀있다. 총회다 졸업식이다 대부분 이 시기에 몰려있고 1981년부터 새 대통령의 취임일은 2월 25일로 정해져 있다. 2월은 적당히 먹 거리, 놀 거리, 할 거리들이 맞춤으로 얽혀 있어 바쁘면서도 헐거워지는 달이다.

사순시기(四旬時期)를 시작하는 가톨릭의 ‘재(?)의 수요일’도 2월에 있다.

부활절까지의 40일간을 참회와 보속의 시간으로 정하여 자신들의 신앙을 점검하고 갱신하는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사순시기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새기는 시기로서 새 생명을 준비하는 2월의 본래 의미와도 닮아있다.

2월은 호수위의 유영하는 백조를 연상케 하는 달이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물밑에서 치열하게 움직여야 하는 게 2월의 숙명적인 모습이다.

오는 3월11일 일제고사를 보듯 전국 동시에 치러지는 농.축.수.산립조합 조합장 선거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입후보자들은 기름 두른 프라이팬처럼 달아있는데 무관심한 조합원들은 강 건너 불구경이다. 이번 2월 임시국회도 어느 때보다 뜨거울 것이다.

처리해야할 쟁점법안 만도 산더미다. 뜨거운 감자인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안)을 비롯한 소위 ‘경제활성화법’에 대한 여야 줄다리기가 치열할 것이다.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통일부장관후보자 및 금융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도 시끄러울 전망이다. 이번 인사는 집권 3년차를 맞는 박근혜정부가 치르는 예비고사 격이다. 향후 국정운영의 안내 깃발을 들려 내보낼 주자들을 심사하는 오디션 장(場)이기도하다. 민심은 얻었지만 당심(黨心)을 얻지 못한 문재인 대표와 정치적 흥정으로 총리인준은 받았지만 홀로서기가 필요한 이완구 국무총리도 이번 임시국회가 실질적인 데뷔무대가 될 것이다.

사나흘 남은 2월은 이제 3월로 건너가게 될 것이다.

물리적으로 촉박한 시간이라고 설익은 열매를 따서도 안 되고, 내 욕심에 남의 것을 빼앗거나 억지를 부려서도 안 된다.

2월이 우리에게 주는 최고의 덕담은 “하루하루를 ‘빅데이(big day)’로 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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