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김동진기자) 숙명(宿命)이었을까.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삶도, 뜻하지 않은 정치인으로서 삶도 그에겐 늘 뭔가 공허함을 남겼다. 가슴으로 느끼는 행복도 얻지 못했다.

그가 다시 봉사의 삶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내는 이유다.

정구훈(69·사진·서울특별시 마포구 만리재로 14 한국사회복지회관 5층·☏02-2077-3908) 전 자광재단 이사장이 1일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상근 부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국내 사회복지와 관련된 대표적인 단체인 한국사회복지사협회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한국자원봉사협의회를 모두 거친 명실상부한 사회복지 전문가다.

사회복지사협에선 사무총장을 맡아 실무를 이끌었고, 공동모금회에선 이사로 활동했으며, 자원봉사협에서도 사무총장을 지냈다.

2001년에는 국내 1세대 사회복지법인으로 평가받는 자광재단 이사장을 맡아 어려운 이웃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미래를 열어주는 일에 헌신해왔다.

충북 괴산 출신인 정 부회장은 어려서부터 더불어 사는 삶이 좋았다.

사회복지에 대한 체계적인 공부를 통해 사회에 헌신하는 것이 그의 꿈이었고, 사명이었다.

청주중과 청주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에 진학하면서 당연히 사회복지학과를 선택했다.

대학 재학 시절, 대한적십자사 창립회원으로 활동하며 서울대 대학적십자회 회장과 대한적십자단 전국연합회장을 맡아 대학생들의 사회봉사 활동을 주도하는 등 그의 꿈과 사명을 이루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당시 사회복지학 전공자들이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은 미비했다.

사회복지에 대한 체계적인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전공과는 무관한 취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주)애넥스 상무이사와 유정산업 대표이사 등 평범한 기업인으로 살던 그에게 생각지도 않던 일이 일어났다. 정치계 입문이다.

당시 여당이던 민주정의당 서울시지부 부국장을 시작으로 충북도당 사무처장을 거쳐 민주자유당 중앙당과 신한국당 중앙당 주요 당직을 맡았으며, 이회창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의 특보를 마지막으로 정치권을 떠났다.

1999년 사회복지사협 사무총장을 맡아 20여년 동안의 ‘외도’에 마침표를 찍고, 사회복지 전문가로 되돌아왔다.

한동안 떠나있었던 만큼 사회복지 업무에 대한 전문성을 강화할 필요를 느꼈던 그는 늦은 나이에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에 진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1년 그의 스승이며 자광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던 서울대 하상락 교수가 별세하면서 자광재단 이사장직을 맡게 된다.

10여년 동안 자광재단을 이끌어오면서 아동·노인·장애인·여성·탈북자 지원 등 다각적인 사회사업을 펼쳐오며, 그늘진 곳에 희망의 빛을 비춰왔다.

그는 이처럼 사회복지 분야의 이론과 실무를 두루 갖춘 전문가로 인정받으면서 국내 사회복지사업의 체계적 연구·활동의 핵심 법정단체인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상근 부회장이란 중책을 맡게 됐다.

그가 이 직책을 맡기에 가장 큰 고민은 고향에 대한 헌신의 꿈이었다고 한다.

정 부회장은 “사실 살아오면서 고향을 위해 한 일이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고향으로 내려와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새로운 희망과 미래를 열어가는 일에 여생을 바치겠다고 다짐했지요.”

고향으로 내려와 사회복지사업을 하기로 맘먹고, 살 집을 알아보던 중 부회장 선임 사실을 전해듣곤 선뜻 수락을 하지 못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주변 사람들이 사회복지사업의 체계적인 발전을 견인하라는 게 그에게 부여된 헌신과 봉사의 소명이라는 권고를 수납, 부회장 직을 수락했다.

부회장으로 활동하면서도 고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봉사하고 헌신하겠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직장생활도 해봤고, 뜻하지 않게 정치권에도 몸담고 있었지만, 마음은 늘 사회복지에 헌신하고픈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사회복지를 위해 일하는 게 거부할 수 없는 제 숙명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가 웃음 짓는 이유다. 행복한 까닭이다. 하고픈 일을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을 하기 때문에.

‘나는 당신이 어떤 운명으로 살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은 장담할 수 있다. 정말로 행복한 사람들은 어떻게 봉사할지 찾고 발견한 사람들이다’는 슈바이처의 말처럼, 이 사회를 위해 이웃들을 위해 어떻게 봉사하고 헌신할지를 찾고 발견한 정 부회장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사람일 듯하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행복할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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