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4권 소개

(동양일보 조아라 기자)아직은 서늘한 겨울의 기운이 가시지 않은 초봄.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고 적적한 마음으로 온기 어린 시를 그리워한다. 사물에 대한 따스한 시선, 잘 다듬어진 시어가 돋보이는 시집 네 권을 골라 소개한다. 읽은 후 몇 번을 돌아보게 하는 묵직한 여운은 덤이다. 

 

●공묵의 처 
신작 49편이 담긴 조재도 시인의 아홉 번째 시집 ‘공묵의 처’가 발간됐다.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과 복직을 거듭하던 끝에 오랜 세월 서 온 교단을 떠난 조 시인이 지난 2012년 명예퇴직 후 펴낸 첫 시집. 이전 시에 담겼던 사회를 향한 날선 비판의식은 다소 누그러졌고, 낮은 이들에 대한 다정한 시선은 여전하다. 타이어는 ‘고속회전에 일생을/너덜거린 후 쓸모없이 되어서야/비로소 풀려나 창고에 가 눕는’다는 시 ‘타이어’, ‘개의 낑낑거리는 소리를/지상의 마지막 소리로 듣고 죽은/그’를 그린 시 ‘하얀 개’가 그렇다. 
아침부터 풀을 매는 어머니와의 대화를 통해 지는 꽃의 입장을 돌아보는 시 ‘꽃자리’에서도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고 진정성 있게 대하는 시인의 마음 씀씀이를 엿볼 수 있다. 아코디언, 낮달, 밤하늘 기러기 소리 등 다소 쓸쓸하면서도 온기가 묻어 있는 풍경들을 통해 시인은 상처 받은 현대인의 가슴을 가만가만 도닥인다. 
권덕하 시인(문학평론가)은 “이 시집은 예전 시집들과 달리 토박이말이 적어지고 인적이 드물다”며 “존재자가 홀로 있는 정황과 외로운 정서가 짙게 배어 있다. 시인은 지금 우리 주위에서 따돌려진 이웃의 처지를 캐묻고 있는 것”이라고 평했다. 조 시인은 1957년 충남 부여 출생으로 1985년 ‘민중교육’지로 등단했다. 시집 ‘그 나라’, ‘백제시편’, ‘좋은 날에 우는 사람’ 등을 펴냈으며, 현재 ‘청소년평화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작은숲출판사. 108쪽. 8000원. 

 

●마음이 꽃핀 동시 
38년 간 교직생활을 하며 아이들과 함께 생활한 박길순 시인이 동시집 ‘마음이 꽃핀 동시’를 펴냈다. 긴 시간 동안 아이들의 마음으로 살고자 했던 그가 출간한 두 번째 동시집이다. 
199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며 문단에 이름을 알린 박 시인. 첫 시집을 발간한 지 10년 만에 펴낸 시집을 통해 그는 오랜 시간 세심하게 고르고 정갈하게 다듬어 낸 시를 독자 앞에 내놓았다. 
어린이들의 밝고 맑은 마음이 시 속에 그대로 표현된다. ‘짝이 옆자리로 갔다.//눈이 옆자리로 간다.//눈물이 찔끔 나왔다.//선생님이 밉다.’는 시 ‘짝·1’에는 단 네 줄의 시 속에 내 마음을 그대로 내어주고 싶은 짝꿍에 대한 애정과 그런 짝을 바꿔 버린 선생님에 대한 원망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아이의 마음을 꼭 닮은 서정적인 그림이 동시와 함께 어우러진다. 어린이문화진흥대상(미술부문) 등을 수상한 이한중씨가 그림을 그렸다.  
박 시인은 “작가는 동심을 바탕으로 글을 쓴다. 어린이는 동시를 읽고 가슴이 둥둥거리는 감동을 받아야 한다”이라며 “동시는 어린이를 환하게 웃게 해 주는 샘물”이라고 밝혔다.  
저자는 199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며 등단, 동시집 ‘동시가 맘을 울려요’ 등을 발간했다. 청주문학상, 한국청소년문학상 대상, 한국아동문학작가상, 한국동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아동문예. 147쪽. 1만2000원. 

 

●마지막 출근 
정다혜 시인이 세 번째 시집 ‘마지막 출근’을 발간했다. 
교통사고로 한쪽 눈과 사랑하는 딸을 동시에 돌아올 수 없는 먼 길로 떠나보내야 했던 시인은 시로 부재와 상실로 인한 상처를 봉합한다. 이미 두 권의 시집을 통해 자신의 아픔을 절절히 토해냈던 정 시인은 이제 세 번째 시집을 내며 자신처럼 아파했던, 또는 지금도 아파하고 있는 이들의 가슴을 매만지려 한다. 
사소함 속에 삶의 진실을 찾아가려는 시인의 시도는 이번 시집에서 빛을 발한다. 후두암 수술을 받은 나이 든 여자를 소재로 한 ‘아이스크림이 있는 풍경’, 식당의 깜빡거리는 형광등 아래 콩국수를 먹는 이들의 모습을 그린 ‘오래된 형광등처럼’ 등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박옥춘 문학평론가는 “시집 ‘마지막 출근’은 시인의 ‘마지막 사랑 노래’다. 이때의 ‘마지막’은 종료가 아니라 종합의, 열매의, 긴박한 열중과 몰입으로서의 지점을 말한다”며 “‘첫’이 시간의 맨 앞이 아니라 개시를 의미하는 것처럼 ‘마지막’은 절정으로서의 현재”라고 밝혔다. 
정 시인은 1955년 대전 출생으로 2005년 ‘열린시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 ‘그 길 위에 네가 있었다’, ‘스피노자의 안경’ 등이 있다. 현재 충남시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시인이며 독서논술지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문학의전당. 130쪽. 8000원. 

 

●비어 하늘 가득하다 
권도중 시인의 시집 ‘비어 하늘 가득하다’가 발간됐다. 
표제작 ‘비어 하늘 가득하다’를 비롯, 76편의 시가 5부로 나뉘어 실렸다. 
1974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해 ‘현대시학’ 출신 시조 시인들이 주축이 돼 결성한 ‘현대율’ 동인으로 활동했던 권 시인. 30여년 간 긴 침묵의 시간을 보냈던 그는 2008년 첫 시집 ‘네 이름으로 흘러가는 강’을 출간한 이후 봇물 터지듯 시를 쏟아내고 있다. 
그는 나무, 하늘, 바람 등 자연물에서 주로 시의 소재를 찾고, 깊이 있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목소리로 노래한다. 섬세하고 감성적인 언어로 그려낸 세상은 때론 찬란하고 때론 아릿하다. 
유성호 시인은 해설을 통해 “권도중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사물의 구체성을 살리는 데 매진하는 과정을 일관되게 밟아간다”며 “사물들과 동화돼 한 몸이 되어버리거나 거기에 몰입하지 않고 일정한 미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중요한 속성을 형상적으로 적출해낸다”고 평했다. 
권 시인은 현대율 동인과 <회귀선문학동인회> ‘70년대 사회집’에 참여했다. 시집으로 ‘낮은직선’, ‘네 이름으로 흘러가는 강’, ‘혼자 가는 긴 강만으로는’이 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오늘의시조시인협회 회원이며 한국시조시인협회 감사로 있다. 
도서출판 고요아침. 125쪽.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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