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자(수필가)

              박영자(수필가)

꽃샘바람이 품속을 파고든다더니 아침 기온이 쌀쌀하다. 하지만 햇볕은 넉넉한 봄날이다.

3월의 싱그러운 기운에 발걸음도 가볍다. 오늘 같은 날은 박인희의 ‘봄이 오는 길’이 흥얼거려지는 날이다. “산 넘어 조붓한 오솔길로 봄이 찾아온다네.~ 분홍신 갈아 신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손녀의 입학식 날인데 내가 더 가슴이 설렌다. 꽃집에 들러 빨간 장미 세 송이에다 안개꽃을 돌려, 작고 앙증맞은 꽃다발을 만들었다. 이 꽃처럼 예쁘고 싱싱한 아이로 자라라는 소망을 듬뿍 담았다.

  아파트 바로 앞에 학교를 두고 사립학교를 기웃거리고 명문을 따지고 하는 아들 내외의 욕심을 보면서 저희들 몫이려니 하며 그저 바라보기만 했었는데 다행히 집 앞의 학교로 보낸다니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학교에 첫발을 내딛는 아이 손을 잡고 교문을 들어서는 엄마도 아빠도 설레기는 마찬가지인 듯 교문 앞은 신선한 기운이 감돌았다. 바람에 나부끼는 “입학을 축하합니다.”라는 현수막 앞에서 손녀딸은 긴장하는 빛이 역력했다. 강당에서 이루어진 입학식은 교장선생님의 개회선언으로 시작되었고 아이들의 인사를 받을 때마다 “사랑합니다.”로 답하는 교장선생님의 아이들 사랑법이 유난한 듯 싶어 반가웠다. 재학생과 입학생이 서로 마주하고 인사하는 장면에서 나는 울컥하며 옛 생각으로 빠져 들었다. 교직생활 38년에서 스물 두 번이나 했던 1학년 담임의 갖가지 애환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입학식 풍경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교가제창을 끝으로 입학식은 끝나고 반별 교실로 입실하는 아이들은 유치원을 거친 아이들이라 건강하고 체격도 좋을 뿐 아니라 모든 것이 능숙했다.

  학부모나 학생이나 가장관심거리는 담임교사다. 얼마나 귀하게 키운 자식들인가. 이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선생님이어야 하니 왜 그렇지 않겠는가. 안면이 있는 후배 여교사라 일단 안심이 되었다. 한 명씩 호명하여 자리에 앉히고 자기 이름을 말하게 하고 내일부터 이루어질 학교생활에 대하여 학부모들에게 협조를 구하는 등 일련의 내용들을 들으면서 신뢰감이 가고 안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학교에 너무 일찍 오면 위험하니 등교 시간을 꼭 지켜 달라는 말에 세태의 각박함을 느끼면서 안전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실감난다. 언젠가 일본에 가서 남편이 다니던 초등학교를 방문 했는데 등교 시간에 맞추어 교문을 열어주던 일이 생각난다. 그곳도 다르지 않았다.

  밤새워 아이들의 이름을 외었다는 선생님 말씀에 “제 이름을 알아 맞혀 보세요.”라는 당돌한 꼬마가 있다. 이름 가운데 자를 틀려 민망해하는 선생님 모습에 웃음바다가 되는가 하면 “제 이름도 맞혀 보세요.”라는 용감한 아이의 이름을 잘 맞추었을 때 아이는 제 명찰을 가르치며 “이걸 보고했잖아요.” 하는 아이도 있으니 요즘 아이들 다루기 힘들다는 말이 실감 난다. 화기애애한 1학년 교실 풍경이 재미있고 흐뭇하며 행복하다.

  1학년 때 선생님의 기억은 평생을 간다. 첫 기억이요 인생의 주춧돌을 놓는 과정이니 정말 소중한 만남인 것이다. 그래서 1학년 선생 ?은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아이 앞에 놓인 수북한 교과서를 보며 이제 인생길에 막 들어선 손녀도 바빠지겠다는 생각에 안쓰러움이 앞선다.

  아이도 부모도 기대 반 걱정 반의 표정들을 읽을 수 있다. 우선은 안전이요, 교육비 또한 만만치 않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초등학교 자녀 1인당 사교육비가 월평균 37만원이라니 말이다. 가계소득의 10%를 초과한다니 쉬운 일이 아니다. 그뿐이겠는가 친구는 잘 사귈까. 학습능력이 뒤떨어지지는 않을까. 갖가지 걱정이 큰 것이 현실이다. 워킹맘들은 또 얼마나 시간에 쫒기며 가슴 졸이며 아이를 학교에 보낼까 걱정이 많을 것이다.

  올해 신입생이 없어 입학식을 못하는 전국의 초. 중. 고등학교가 120곳이며 입학생이 1명인 학교도 130여 곳이라는 기사를 보면서 3포 세대라는 젊은이들이 마음 놓고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세상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원하며 어려운 일은 피하고 쉬운 일만 택한다면 인생의 의미가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 보라고 말해 주고 싶다.

   손녀는 앞으로도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 그 밖의 입학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때마다 고비를 잘 넘기고 바람직한, 이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길 기원한다.

  70이 넘은 나도 해마다 복지회관에 다시 입학 한다. 입학은 설렘이요, 희망이며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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