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본사 편집상무)

   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부정부패를 몰아내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앞으로 18개월후면 이제까지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금품수수나 부정청탁은 모두 범죄로 바뀌게 된다. 공직자는 대가가 없는 돈이라도 1회 100만원 또는 연간 300만원이 넘는 금품을 받으면 무조건 처벌받기 때문이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폭발력을 가히 짐작할 수 있게 하고도 남는다. 그러니 김영란법이 본격 시행되면 사회에 혁명적 변화가 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공직사회, 아니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대대적 수술을 가져 올 김영란법을 놓고 왜 이리 말이 많은가. 그건 부정청탁의 개념이 모호해 명확성 원칙에 반하고,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이 인정되지 않아도 금품수수 사실만으로 처벌할 수 있어서 과잉금지 원칙에 어긋나 위헌소지가 있어서다. 심지어는 돌만 던지면 누구든 맞게 돼 있는 엉터리같은 법을 왜 서둘러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나온다. 일각에선 공직자, 국회의원, 언론인에 대한 먼지털기 수사가 가능해져 ‘검찰공화국 재탄생’이라고 우려한다.

과잉입법의 기저에는 건설업자로부터 접대를 받은 혐의로 기소된 ‘스폰서 검사’나 연인관계인 변호사로부터 벤츠를 받고 다른 검사가 수사하는 사건에 청탁을 해 주었다는 이유로 기소된 ‘벤츠 검사’가 있다. 이들은 모두 직무 관련성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판결은 김영란법 제정의 필요성을 촉발시켰다.

공직자 가족의 범위를 ‘배우자’로만 축소했지만, 당초엔 민법상의 가족개념으로까지 지나치게 넓혀 국민의 절반가량을 제재대상에 포함시켜 논란이 됐다. 특히 공직자 범위에 언론기관 종사자와 사립학교 교직원 등을 포함시켜 민간영역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국민권익위가 마련한 법률안에는 이 부분이 빠져 있었지만 지난 1월7일 국회 정무위에서 공직자 대상에 언론사와 사립학교를 집어넣어 법 제정의 취지를 무색케 했다. 김영란법 대로라면 언론사 직원들은 공직자다. 다시말해 잡지사의 운송직, 인터넷사의 경비직들도 공직자로 분류돼 김영란법 적용을 받는다. 과연 이들에게 공직자라는 무늬를 덧입혀 김영란법 굴레를 씌울 수 있을까. 언론사 직원들은 공무원처럼 60세까지 정년보장도 안되고 철밥통 신분도 아니다. 국민의 세금이 지원되지도 않는다. 물론 공무원처럼 퇴직후 연금혜택도 주어지지 않는다. 단순히 일반회사 직원에 불과하다. 다만 하는 일이 공공성을 띠었을 뿐이다. 언론의 공공성은 공공의 관심사를 다룬다는 것일 뿐 국민의 세금을 받는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과는 신분 자체가 다르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그런데 권익위 안에 KBS와 EBS가 들어 있자 국회 정무위는 똑같이 세금이 들어가는 MBC와 연합뉴스는 왜 빠졌나로 시작해 논의 끝에 결국은 대상을 모든 언론사로 확대했다. 이런 식이면 같은 법조인인데 판·검사는 포함되고 변호사는 제외된 것도 참 이상하다. 사학재단 이사진, 대기업 관계자, 의사, 은행, 시민단체가 빠진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예를 들어 삼성과 현대는 수출로 외화도 벌어들이지만 전국민을 상대로 휴대폰과 자동차를 팔아 기업을 운영한다. 이 얼마나 공공성이 높은가. 그래서 언론인은 포함되고 삼성·현대직원은 안된다는 김영란법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생각도 든다. 국회가 김영란법 제정에 늑장부린다고 언론에서 하도 비판을 하자 ‘니들도 ×먹어보라’며 전언론사로 대상을 확대한 것은 아닌지 말이다. 단순하게 말해 김영란법의 본래 취지는 공무원은 돈을 받지 말라는 거다. 현행 형법에 뇌물죄는 금액에 상관없이 범죄다. 2013년 대법원은 결혼식 축의금 5만원이 직무와 관련된 것이라면 뇌물이라고 판결했다. 민간인 신분인 언론인 역시 범법행위를 저질렀을 경우 현행법으로 얼마든지 사법처리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옥상옥 법을 만들어 옥죌 필요가 있나 묻고 싶다.

이상민 국회법제사법위원장은 김영란법이 위헌적이고 법치주의에 반하는 요소를 다분히 안고 있으면서도 선거를 앞두고 여론의 역풍을 피하기 위해 합의한 졸렬입법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여야는 벌써부터 내년 선거가 끝나면 뜯어 고치자는 얘기를 노골적으로 한다며 무슨 법 만드는게 벽돌공장에서 벽돌 찍어내기식이냐고 질타했다. 국회가 여론에 밀려 일단 법을 만들어놓고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을 기다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