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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 / 포석 조명희를 찾아서<21>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 / 포석 조명희를 찾아서<21>
  • 김명기 기자
  • 승인 2015.03.15 1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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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홀씨되어 유족들은 삶의 튼실한 뿌리 내리고
▲ 답사단이 포석 조명희 선생의 친손자 조 파엘이 운영하고 있는 캐피탈 그룹 본사를 찾았다. 사진은 캐피탈 그룹 건물 17층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유족들. 앞줄 의자에 이가 포석의 막내아들 조 블라디미르 부부와 손자. 뒷줄 왼쪽부터 황동민 교수와 최 예까떼리나 손자인 황 안드레이, 김왕규·김흥남씨 부부, 블라디미르 손녀, 블라디미르 아들 조 파엘, 블라디미르 손자, 조철호 답사단장, 포석의 외손자 김 안드레이 교수.

 

(동양일보 김명기 기자) 김 교수로부터 답사단 일정과 동선에 대한 협의를 했다.

출국 당시 답사단에게 연해주 지역은 어떤 정보도 가지고 있지 못한미답(未踏)의 곳이라, 특히 포석 조명희 선생과 관련된 것은 마음 속으로 큰 밑그림만 그렸을 뿐 그것이 제대로 이행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더욱 더 불안한 마음은 커져만 갔었다.

김 교수는 현지에서의 승합차 임대와 유관기관에 대한 소개, 답사 일정에 맞춘 여러가지 정보들을 보내주었다.

발로 뛴 김 교수의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답사단의 열정을 가상한 마음으로 지켜본 포석이 답사단의 여정을 함께 해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봐도 포석과 관련된 것들에 대해 얼마나 일천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지,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한다.

김일환 영사에게 포석의 제자이자 포석의 연구에 가장 많은 정열을 쏟은 최 예까떼리나에 대한 섭외를 부탁했었다. 혹여 생존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서였는데, 최씨는 이미 십 수년 전에 고인이 된 사람이었고 게다가 그녀는 포석의 처남댁이기도 했다. 답사를 하면서 조철호 단장의 이야기를 꿰어맞춰보니 그런 사실을 알게 됐었다. 고인에 대한 인터뷰라,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여기에 해당되는가 싶다.

 

2014년 10월 12일 시리즈 연재를 시작하면서 5개월 넘게 졸고(拙稿)를 쓰느라 허덕거리고 있을 즈음 자칭 ‘국수주의자’ 김 교수로부터 편지가 도착했다.

‘애국주의자’ 김 교수는 2015년을 맞아 자신의 모국인 한국이 서로 화합하고 세계 강국의 대열에 합류하여 통일을 이루었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담아왔다.

 

새해에는 계시는 모든 곳에 원하는 모든 일에 항상 성공이 이루어지길 진심으로 기원해요.

건강하시고 행복이 가득하시고 더욱 풍요롭고 즐거운 청양띠의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김 부장님이 보내 준 편지를 잘 읽었어요.

그리고 김 부장님이 쓰신 글 ‘포석 조명희 시리즈’는 인터넷을 통해서 꼭 읽어보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저의 페이스북에도 반영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 기사들은 충청권을 포함한 한국 뿐만아니라 러시아, 미국, 프랑스까지 읽은 사람들이많답니다.

보다시피 저는 포석 조명희 선생의 외손자로서 아주 강한 애국자이며 초강민족간 또는 초강국가간 벌어지고 있는 경제문화정보적 전쟁 중에 전세계 한민족의 생존력 강화 전략에 대하여 고민하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전통문화와 국어가 급속히 파멸해지는 과정 및 해외 한인사회가 죽어가는 모습을 살펴보면 가슴이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민족이 ‘전라도놈’과 ‘경상도놈’, ‘우즈벡 고려인’과 ‘중국조선족’, ‘재미동포’와 ‘북한 빨갱이’ 등으로 계속 차별하면 남북통일도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고 초강민족간 경제문화적 전쟁 가운데 전세계 한민족 통합도 이루어질 수 없으며 이렇게되면 5천년 역사의 우리 민족은 계속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2015년 청양띠의 해에 우리 한민족이 좁고 짧은 우물에서 깨어나 우선 정신적으로 편견을 극복하여 경제적으로 또는 문화적으로 통합의 사고를 갖고 초강민족으로 발전할 길로 나서서 전세계에서 통일된 민족으로 되길 바랍니다.

우리 외할아버지인 포석 조명희 선생님은 조국광복을 꿈꾸었고 소련에서라도 조선인들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게 하기 위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느 정도 굶지 않은 대한민국 모국을 비롯해 러시아, 미국, 일본 등의 전세계 한인들이 유태인들처럼 전략을 세워 모든 효과로운 방법을 통해 통합해야 할 시대가 다가왔다고 생각합니다.

2015년 1월 1일, 김 안드레이.

 

이제 1부 연재의 갈무리를 위해 시간의 추를 답사활동을 벌였던 곳으로 다시 돌려놓는다.

답사단은 포석 조명희 답사를 끝내고 하바로프스크공항에서 모스크바로 향했다. 9월 7일 오전 11시 5분에 출발한 비행기는 낮 12시 20분에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했다. 시간상으로만 치면 1시간 15분만에 그 먼 거리를 온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두 도시간 비행 시간은 8시간 15분이다. 하바로프스크와 모스크바의 시차가 7시간 나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에서의 중요한 답사 일정은 포석의 유족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앞에서 언급했듯, 포석이 KGB에 끌려간 뒤 부인 황마리아와 첫째딸 선아, 아들 선인, 막내 블라디미르는 강제 이주민들을 실어나르는 열차에 짐짝처럼 내팽겨쳐진 채 불모의 땅이나 다름없었던 중앙아시아로 쫓겨났다.

그러나 그들은 짓밟힐수록 더욱 강인한 생명력으로 되살아나는 길가의 민들레처럼 척박하기 이를데없는 그 땅에서 꿋꿋하게 일어났다. 그리고 포석의 후손들은 러시아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이들로 성장했다.

 

▲ 조명희의 친손자 조 파엘이 운영하고 있는 캐피탈 그룹 본사. 83층 쌍둥이 건물과 본관 등 3개동으로 이뤄져 있다.

 

모스크바 시내로 진입하면서 저 멀리 보이는 마천루(摩天樓)를 가리키며 김 교수가 말했다.

“저기 삐뚤삐뚤 모양새가 특이한 쌍둥이 건물이 보이죠? 저 건물이 83층 2개동에 본관까지 3개동으로 이뤄진 ‘캐피탈 그룹’ 본사 건물입니다. 저 건물은 조 블라디미르의 아들, 그러니까 포석 선생의 친손자인 조 파엘(52)의 건물입니다. 블라디미르 외삼촌 일가는 우즈베키스탄에서 러시아로 건너온 뒤 크게 사업을 일으켜 현재 모스크바 내에서 상당한 재력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캐피탈 그룹은 러시아인, 유태인, 그리고 조 파엘, 세 명이 함께하는 사업인데, 연 매출이 10억달러(한화 1조원)에 이른답니다.”

모스크바 중심에 자리한 ‘스카이 라인’은 4∼5개의 건물군으로 이뤄져 있는데 그 가운데 캐피탈 그룹의 건물이 그 생김새나 규모면에서 단연 눈길을 끌었다.

 

모스크바 붉은 광장과 푸시킨 박물관 등 명소를 둘러본 답사단은 유족들이 준비한 만찬에 참석했다.

모스크바 중심지에 있는 한식당 ‘신라’였다.

이 자리엔 포석의 막내 아들인 조 블라디미르 부부와 아들 조 파엘 부부, 조파엘의 아들 둘과 딸, 포석의 첫째 아들인 선인씨의 아들과 딸, 황동민 교수와 최 예까떼리나 부부의 손자인 황 안드레이 등이 참석했다.

이튿날에는 조 파엘의 초청으로 캐피탈 그룹 본사를 방문하게 됐다.

조 파엘은 답사단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는 한국어를 알지 못해 김 안드레이 교수가 통역해 주었다.

“저희 할아버지 조명희 선생의 발자취를 찾아 이 곳 모스크바까지 방문해 주신 여러분들께 유족의 한 사람으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 2015년 5월에는 조명희 기념관이 진천에서 세워진다고 하니 더욱 더 기쁜 마음입니다. 남은 여정에서도 뜻하시는 일들이 원활하게 이뤄지길 바라고, 한국으로 귀국하시는 날까지 아무 사고없이 편안한 여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귀국길, 상념에 젖어든다.

참으로 고맙고 반가운 일이었다.

가볍고 너무 가벼워 이리저리 부는 바람따라 세상을 떠돌다 어느 한 곳 새싹 틀만한 곳을 찾아드는 민들레 홀씨처럼, 포석의 유족들도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조차 보지 못한 채 낯선 황야에 버려졌음에도 시들어도 다시 피는 민들레처럼 튼실한 뿌리를 내리고 무성한 잎을 내어 러시아 사회에서 영향력있는 가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있었다. 그네들의 그런 삶이 참으로 고맙고 반가운 일이었다.

하면서도 되짚어 본다. 포석을 마주하는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인가. 어떤 시선으로 그를 보아야 할 것인가. 그의 삶과 작품으로부터 우리는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인가를.

발 아래 구름 사이로 낮익은 풍경, 인천국제공항이 보였다.<1부 끝>

 

▲ 모스크바에 있는 한식당 ‘신라’ 만찬장에서 답사단을 대표해 조철호 단장이 유족들에게 답사의 취지와 성과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5월 2일부터 포석 조명희 시리즈 2부

‘불꽃으로 타오른 민족혼 / 포석의 삶과 문학’을

새롭게 연재합니다

애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동양일보는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 / 포석 조명희를 찾아서’ 1부 시리즈를 마치고, 5월 2일(월요일)부터 시리즈 2부 ‘불꽃으로 타오른 민족혼 / 포석의 삶과 문학’을 새롭게 연재합니다.

일본제국주의 식민치하, 그 격랑의 세월 속에서 오롯이 항일정신 하나로 치열한 삶을 살았고, 한국 근대문학의 초석을 놓으며 문학계에 새 지평을 연 포석 조명희 선생은 옥죄어오는 일제의 감시망을 뚫고 ‘로망의 땅’ 소련으로 망명하게 됩니다.

러시아 한인문학의 시조(始祖)로 불린 포석은 한인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시, 소설, 평론, 번역, 희곡 등 다방면에 걸쳐 큰 업적을 남기고 알렉산드르 파제예프와 함께 하바로프스크 작가의집에 거주하며 동양인 최초로 소련작가연맹 회원이 됩니다. 그러나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과 맞물려 희생양이 되어 KGB 요원들에게 끌려간 뒤 일본 스파이와 협력했다는 누명을 쓴 채 이듬해 총살형을 당하게 되는 비운의 작가로 남게 됩니다.

동양일보는 포석이 남긴 삶의 족적과, 포석 문학의 향기와, 민족민중주의자로서의 포석의 사상을 찾아갑니다.

물신주의가 팽배해 있는 이 즈음 포석이 살아낸 삶을 좇아 그의 삶을 되돌아보며, 우리가 아직까지 버려서는 안될 올곧은 정신의 가치를 다시금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을 가져 보자는 작은 희망을 품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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