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논설위원 / 충북대 아동복지학과 교수)

최은영(논설위원 / 충북대 아동복지학과 교수)

시간당 실질임금의 상승률이 유난히 낮은 국가가 미국과 우리나라이다. 그리고 두 나라는 장시간 근로가 표준화되어 있다는 공통점 역시 공유하고 있다. 서로 다른 특징 같지만, 두 현상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즉, 실질임금 상승의 침체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근로자의 노동시장 부착(attachment)을 높이고 노동시간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가족을 위한 소득이전 프로그램과 서비스 공급 모두 미흡했던 미국에서는 소득활동에 가능한 장시간 매진하면서 상품서비스 시장에서 가사서비스 대체품을 구입하는 대응이 생겼고, 이는 상대적으로 긴 근무시간과 매우 발달한 개인서비스 섹터의 확장이라는 미국 노동시장의 특성으로 귀결되었다. 즉, 각 가구는 부족한 시간을 외부서비스 구매를 통해 보충하는 방식으로 적응해 온 것이다.
비교 복지국가 연구의 대가로 알려져 있는 에스핑-앤더슨(1999)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사회서비스의 발달이 매우 느리고 개인서비스가 크게 발달한 경제에 속하며, 저숙련직 노동시장이 상당히 크게 형성되어 있는 국가이다. 이러한 미국적 경로(path)는 국가가 공급ㆍ규제하는 사회서비스의 광범위한 지원을 받으며 적정한 노동시간을 목표로 다양한 일-생활 균형을 꾀하고 있는 북유럽 국가의 경로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안타깝게도 미국의 특징은 한국에서도 발견된다. 2010년 OECD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국가 중 미국과 한국에서 저임금자 비중이 가장 높다. OECD 평균이 16%인데, 미국은 24.5%, 한국은 25.4%이다.
흔히 한국을 서비스 천국이라고 부른다. 교육은 지옥인데, 서비스가 발달해서 한국에 사는 것에 만족한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듣는다. 부모는 야근하고 자녀들은 학원 다녀와 가족들이 겨우 모이는 밤시간.. 12시에 배달되는 통닭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고수부지에 배달되는 짜장면, 아파트 고층까지 가져다 주는 생수 몇 통.. 그러면서 일각에서는, 이렇게 어디든 가야하고 총알같이 움직여야 하며 무한 친절하기까지 해야 하는 배달업 종사자를 조롱하는 듯한 비유도 등장했다. 지금 고등학교 내신은 9등급으로 나뉜다. “1~3등급은 나중에 통닭을 시켜먹고, 4~6등급은 통닭을 튀기고, 7~9등급은 통닭을 배달한다”. 학생들이 하는 말이다. 배달업이 스트레스가 많다는 것과 본인이 막상 하기는 꺼려지는 직종이라는 심사가 반영된 얘기인 셈이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서비스 직종은 불안정하고 처우가 낮은 경우가 많다. 나의 노동패턴과 소비성향은 다른 사람의 노동특성이 된다. 그렇게 돌고 돈다.
소비지향적인 사회일수록, 어쩌다 실질임금이 올라도 대체효과보다 소득효과가 더 크게 나타나, 근무시간 단축보다 장시간 근로가 강화된다. 무언가 소비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에 빠져들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한국 모두 임금불평등이 심화되고 있고, 일부 계층에게는  ‘장시간’ 일하는 것만이 생계를 유지하고 실질임금 하락의 부정적 효과를 보완하는 유일한 방식이 되어가고 있다. 이렇게 보면, 맞벌이 가구의 증가, 가구의 소비행동과 서비스 부문 일자리 성장, 국가-시장 서비스의 비중 및 근무시간 특성은 긴밀히 얽혀 있는 문제이고 생산-소비를 둘러싼 사회적 특성을 포함하여 총체적으로 조명해야 하는 현상임이 분명하다. 점점 많은 가구가 시장에의 의존(근무시간 연장 그리고 시장서비스 구매)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살고 있다. 어디선가 고리를 끊어야 한다. “어떤 일자리든 없는 것보다 낫다”. 우리가 오랫동안 들어왔던 이야기다. 그러나 내수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자, 부총리가 임금인상 카드를 들고 나왔다. 사회적 권리로서가 아니라 경제회복 용 도구로 조명된 부분이 마음에 걸리지만, 더 늦기 전에 실질임금 상승, 적정한 근로시간 등 우리 앞에 놓인 숙제를 풀어야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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