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바보야, 자존심을 내려놓아.”

어차피 같이 살 거라면 자존심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놓으라는 말인 것 같더라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아내에게로 다가갔지.

“여보, 내가 마사지 좀 해 줄까?”

아내는 심드렁한 표정을 짓더니, ‘됐어’ 하고는 다시 화면만 응시하고 있었어. 나는 아주 큰 결심을 굽히지 않는 사람처럼 아내의 팔을 주무르기 시작했어. ‘저리 비켜’ 하고 소리칠 줄 알았는데 말이 없었어. 그러니까 용기가 생기데. 손에서 발로 발에서 어깨로 족히 두어 시간은 주물렀던 것 같아. 참 희한하게도 처음엔 서먹서먹하더니 점차 마음이 가라앉았어.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똑같이 해봤지. 며칠이 지나니까 똑바로 누우라면 똑바로 눕고 엎드려 누우라면 엎드려 눕더라고. 그런 날이 반복될수록 귀가하는 나의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집 가까이 올수록 가빴던 호흡도 가벼워졌어.

어떤 때는 미운 생각에 힘을 주어서 아프게 누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속생각과는 반대로 말을 걸었어. “여긴 어때? 좀 시원하지?” 아내는 긍정도 부정도 하진 않았지만 표정은 훨씬 부드러워졌어. 열흘 정도 지났을까. 아내의 몸을 여기저기 만져보고 있는데 근육은 하나도 없고 뼈만 앙상하다고 느껴진 거야. 내가 울고 있었나봐. 눈물은 감염 속도가 빠르더라고. 아내는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어.

그날 이후로 뻣뻣했던 아내가 부드러워지기 시작했어. 내 가슴에 켜켜이 쌓인 미움도 사라졌어. 마치 전등 스위치를 올리자 새까만 어둠이 일거에 물러가는 것 같았어. 한 달 정도 지나니까 아내의 몸 구석구석을 알게 됐지. 덜 아프고 더 아픈 곳만 있을 뿐이지 안 아픈 곳이 없는 게 아내의 몸이었다네. 그 사실을 받아들이니까 내가 아픈 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어. 그래서 마사지 그 자체를 즐기게 되었지. 마사지하면서 농담도 하고 결혼 전의 낭만과 아이 낳고 기를 때의 행복감 등을 주고받게 되었어. 아내는 며칠 하다 그만두겠지 하고 생각했나봐.

“나이 육십이 넘어서야 철드네.”

“그렇지? 내가 원래 대기만성형이잖아.”

아내의 두 입술 사이에서 “피”하고 아주 묘한 감탄사가 튀어나왔어. 나는 그 짧은 감탄사에서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읽었지. 그리고 나와 아내가 원래의 부부의 관계로 되돌아왔다는 느낌을 받았지.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작은 깨달음 하나를 얻었다. 여자는 어머니가 되어도 여자이고 할머니가 되어도 여자라고. 여자는 어머니가 되어도 할머니가 되어도 사랑받기를 원한다고. 남편은 집에 들어보는 순간 남편일 뿐이어야 한다는 것을.

<권희돈 청주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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