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 앞선 금속활자본" 주장에 청주시 "논란가치없다" 일축

직지 태생적 한계 고려, 실효적 대안 마련 시급

“증도가, 직지보다 앞선 금속활자본” 논란
금속활자 진품 연구결과 이어 학계 주장 나와
청주시 “학술적·과학적 가치 인정 안돼” 일축
향후 시기 앞선 활자(본) 발견 개연성 배제 못해

(동양일보 이도근·김재옥기자) 증도가자(證道歌字)가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이하 직지)보다 앞선 금속활자 진품이라는 연구 결과에 이어 그동안 목판본으로 알려져 온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이하 증도가)’가 금속활자본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더욱이 이같은 논란은 직지가 ‘현존하는 세계 최고’라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지속되거나 변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직지 관련 정책의 실질적 대응과 전환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박상국 문화유산연구원장 “증도가 목판본 인증은 잘못” 주장
서지학계 인사인 박상국(69)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은 한 중앙언론 인터뷰를 통해 "지난 2012년 '보물 758-2호'로 지정된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는 목판본이 아니라 금속활자본"이라며 "이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인쇄물인 직지심체요절보다 138년 앞선 1239년에 간행된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이라고 주장했다.
국내에 전하고 있는 증도가 목판본은 삼성출판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보물 758호와, 김찬호 공인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보물 758-2호, 개인소장 등 3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원장은 “1984년 증도가를 보물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발문 중 '於是募工 重彫鑄字本 以壽其傳焉(어시모공 중조주자본 이수기전언)'을 ‘그래서 각공(刻工)을 모집해 '주자본을 바탕으로 다시 판각해서 길이 전하게 한다’라고 해석했으나 ‘이에 공인(工人·각수)을 모아 '주자(鑄字·금속활자)로 다시 새겨(重彫)' 책을 만들어 오래도록 전해지게 하고자 한다’라고 해석해야 맞다”고 설명했다.
박 원장은 이에 대한 근거로, △각 면의 테두리 인쇄 상태가 삼성출판박물관 소장본(목판본)은 깨져서 틈이 많은 반면 같은 부분에서 이 판본은 틈 없이 멀쩡한 점 △이 판본은 활자마다 높낮이가 달라서 같은 글자에도 농담(濃淡) 차이가 심하나 이는 금속활자본의 특징이라는 점 △조판 기술이 미숙해 활자가 밀려 움직인 흔적이 선명한 점 △쇠똥 자국이 뭉쳐 있는 점 △쇠가 녹으면서 쇳조각이 붙은 철편이 보이는 점 △일부 글자는 먹이 찍히지 않아 보사(補寫·새로 칠한 것)한 글자가 많고 한 개의 활자에도 높낮이가 달라 먹이 묻어나지 않아서 획에 가필한 흔적이 많다는  점 등 6가지를 들었다.
박 원장은 이같은 연구결과를 21일 열리는 보조사상연구원 정기월례 학술대회에서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경북대 산학협력단 “증도가자 직지보다 앞선 금속활자” 결론
이에 앞서 최근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의뢰를 받아 진위 논란을 빚고 있는 증도가자에 대한 연구용역을 수행한 경북대 산학협력단(단장 남권희 교수)은 진품이란 연구결과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증도가자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증도가자가 처음 알려진 것은 2010년 9월, 당시 다보성고미술관 김종춘 관장이 소장하고 있던 증도가자를 연구분석한 경북대 남 교수가 ‘진품’이라는 결과를 발표하면서다.
이후 학계의 진위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연구용역을 의뢰했으며, 각 분야 전문가 32명이 참여한 연구조사에서 “다보성고미술관 소장 101개, 국립중앙박물관 1개, 청주고인쇄박물관 7개 등 총 109개 활자를 조사한 결과 62점이 증도가자로 확인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서지학적으로 고려시대 금속활자는 통상 뒷면의 형태로 시기를 구분하며, 활자 뒷면 중간 부분을 움푹 파서 활자판에 고정시키는 ‘홈형’은 고려 초기, 4개 모서리에 다리를 단 ‘네다리’ 활자는 고려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판단한다.
대체로 홈형과 홈날개형 활자는 11~12세기, 네다리형 활자는 13세기 후반~14세기 것으로 인식하며, 증도가자로 판명난 62개는 홈형과 홈날개형 활자였다.
연구팀은 증도가 목판본 활자와 증도가자 54개가 일치한다고 분석했으며, 활자에 묻은 먹에 대한 탄소측정 결과도 1033년에서 1155년 사이에 제조된 것으로 분석했다.
▶학계에서도 진위 논란은 진행형
이같은 연구조사 결과에도 증도가자에 대한 진위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현재 과학으로는 먹에 대한 탄소측정만으로 시기를 명확하게 측정하는 데 한계가 있으며, 고려시대 제조된 먹을 후대에 임의로 묻혀 조작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게 핵심이다.
특히 현존하는 증도가자 인쇄본이 없다는 점에서 증도가자를 직지보다 앞선 금속활자라고 규정하는 데 논리적 한계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런 상황에서 목판본으로 알려진 증도가가 금속활자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학계 일부에선 증도가자를 진품으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의 한 근거로 현존하는 증도가자 인쇄본이 없다는 점을 내세웠으나, 이번 증도가 목판본이 금속활자본이라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됨에 따라 이를 둘러싼 검증 여부에 따라 증도가자의 진위 논란에도 파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지학계의 내부적 요인인 파벌간 갈등도 진위 논란의 대척점이다.
학문적 가치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연구보다는 연구진이 어느 계파에 속했느냐에 따른 이견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증도가 목판본이 금속활자본이라는 박 원장의 주장에 대해서도 학계 일부에선 “학자 개인이 아닌 학계의 전반적이고 면밀한 연구조사가 필요한 것으로, 이를 금속활자본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고 전제하면서도 “증도가자의 진위 여부와 증도가가 목판본이냐 금속활자본이냐는 문제는 세계 역사학적으로도 중요한 만큼 조사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신중론을 내놓고 있다.
문화재위원회 동산분과위원회는 문화재청 요청에 따라 증도가자에 대한 국가문화재 지정조사를 다시 실시할 예정으로, 4월 말까지 탄소연대 측정과 활자 서체, 금속성분 분석 관련 전문가 10여 명으로 구성된 지정조사단을 구성해 5월부터는 보고서 검토 등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직지의 본향’ 청주시 입장
‘직지’가 인쇄된 곳이 청주흥덕사로 확인되면서 직지를 지역의 대표 이미지로 활용해 온 청주시는 증도가자가 진품이라는 연구조사결과에 대해서 직지의 위상 하락보다는 동반 상승론을 앞세우고 있다.
청주시는 증도가자에 대한 연구조사 결과 발표와 관련, "증도가자가 직지보다 더 오래된 금속활자인 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활자본(인쇄본)이 있는 직지의 가치를 넘어설 수는 없다"며 "증도가자는 직지의 위상을 더 높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주고인쇄박물관은 "증도가자가 진품으로 확인되면 증도가자는 인쇄를 위한 도구로, 인쇄본이 있는 직지는 그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상호 보완할 수 있다"며 "증도가자 진품 확인은 금속활자 발명국 한국의 입지를 더 견고하게 하는 것은 물론 이를 계기로 고인쇄박물관에 대한 관심도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증도가가 금속활자본이라는 주장에 대해선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고인쇄박물관 측은 "보물 758-2호는 종이의 질과 인쇄 상태가 왕실에서 찍어낸 보물 제758호와 개인 소장본에 비해 떨어진다"며 "(왕실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 후세본이어서 획의 마모 정도가 훨씬 좋지 않다"고 주장했다.
보물 758-2호, 보물 758호, 개인 소장본 모두 책의 테두리(광곽)의 결 모양이 동일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박 원장이 거론한 보물 758-2호는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이 아니라 1500년대 후반∼1600년대 찍은 목판본이라는 것이 고인쇄박물관의 설명이다.
문화재위원회 동산분과 위원장인 박문열 청주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도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목판본"이라고 일축했다.
증도가 목판본의 금속활자본 가능성에 대해 수년전부터 검증을 거쳤으며, 문화재위원회의 충분한 연구조사를 통해서도 이미 목판본으로 판명난 만큼, 학자 개인의 주장일 뿐이라는 게 청주시의 입장이다.
▶진위 논란 탈피, 직지 관련 정책 수정 필요
증도가자가 진품이라는 주장에 이어 증도가가 금속활자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가장 큰 파장을 미치는 것은 직지다.
이는 직지가 ‘현존하는 세계 최고’라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학문·역사적 가치의 유동성 때문이다.
증도가가 금속활자본이라는 박 원장의 주장이 학술적·과학적 근거가 미흡하다고 전제하더라도, 증도가자가 진품으로 최종 판정될 경우 증도가자로 인쇄한 활자본이 존재할 수 있다는 연계성을 부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라는 한계성 때문에 학계 안팎에선 예전부터 직지가 지니는 현재의 학술적·역사적 가치에 머무르기보다는, 외연을 확대한 인쇄문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 시도 등이 필요하다는 견해들이 끊임없이 제기돼 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청주시는 직지를 넘어선 학술적·역사적 가치를 지닌 금속활자나 금속활자본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근시안적 관점에 함몰돼 ‘현존하는 세계 최고’라는 한계적 가치에만 매달려 왔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청주시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라는 위험성을 배제한 채 ‘청주=직지의 고장’이라는 등식을 고착화시켜왔다.
직지 이전에 ‘현존하는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이었던 독일의 구텐베르크 성서에 대한 학술적·역사적 가치를 평가절하하면서도, 정작 직지보다 앞선 금속활자본의 발견 가능성은 부정하는 이중적 입장을 취해 온 것도 모순이다.
만일 증도가자가 직지보다 앞선 금속활자로 판명나고, 증도가가 금속활자본으로 인증받았다고 가정할 때, ‘직지의 고장=청주’라는 브랜드 가치는 특화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따라서 청주고인쇄박물관의 기능·시설 확대를 통한 고인쇄문화 연구 거점화를 비롯해, 직지 브랜드 적용의 점차적 변화, 직지 가치 변화에 따른 대응 방안 마련 등 실질적인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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