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나의 힘이 되기도 하고 짐이 되기도 하며, 친밀함 뒤에 미묘한 갈등이 숨어 있기도 하고, 한 없이 사랑하다가도 한 없이 미워지기도 한다. 가족은 이처럼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최광현 ‘가족의 두 얼굴’)’ 가족이라 할지라도 자신에게 이로울 때는 한 없이 사랑하다가도 자신에게 짐이 될 때는 한 없이 미워하는 게 현실이다. 카프카의 소설이 ‘변신’은 이를 잘 대변한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어 삼사는 가정에서나 회사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 인물이었다. 가정의 수입원이었으며 회사에 큰 도움을 주는 베스트 세일즈맨이었다. 그러다가 과로로 쓰러져 딱정벌레로 변하여 마침내 죽게 되는데, 그 주말에 가족이 즐겁게 피크닉을 떠난다는 내용이다. 가족조차 이해 관계에서 따라서 관계가 변하는 인간의 쓸쓸한 내면 풍경을 다룬 소설이다.
서울에서 일어난 중학생 가족의 이야기는 소설보다도 더 소설적이다. 이미 상황이 종료되어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절망의 상태에서 종결되었다.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 신적인 영역으로 이동한 관계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가족 내에서 일어난 사건이지만, 개인의 이기심을 부추기는 가정교육, 학교교육, 시장경제, 사회제도 등 총체적으로 되짚어봐야 할 단서로 삼아야 할 것 같다.
사실은 ‘꽃구경’이나 ‘서울이야기’나 ‘변신’이나 우리 모두의 반면교사인 셈이다. 가족 간의 소통 단절로 말미암아 비롯되는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온전한 소통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상처란 가까운 사람 사이에서 먼저 주고받는다. 가족이라 할지라도 상처를 심하게 주고받으면 타인만도 못할 만큼 멀어진다.
가족 간의 관계든 타인과의 관계든 상처받은 관계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소통을 시도하는 방법이 최상의 방법이다. 내가 먼저 물꼬를 트는 것, 관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데 이만큼의 적극적인 소통방식은 없다. 이렇게 다시 시작하는 관계의 시도는 인간이 지닌 가장 강력하고 아름다운 은총이며 능력이다.
인간의 뇌가 가장 기쁨을 느낄 때는 다른 사람과 소통을 나눌 때라고 한다. 특히 상대방과 눈을 마주 보면서 소통을 할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 뇌가 기뻐한다는 것은 화학적으로 보면 뇌가 활성화되어 도파민이라는 물질을 방출하는 것을 뜻한다. 도파민이 분비되면 인간은 쾌락을 느낀다. 역으로 인간이 불행을 느끼는 것은 소통이 단절되고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고 소통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가족 안에서조차 소통이 단절되면 이는 마음의 병을 야기한다. (최광현 ‘가족의 두 얼굴’)
나와의 소통이 잘 되고 있는 가족이나 친지의 이름을 써 보자. 나와의 소통이 끊긴 가족이나 친지의 이름을 써보자. 소통이 끊긴 가족이나 친지에게 먼저 말을 다시 걸어 보자. 상대방 나에게 상처를 준 사실만 기억하지 말고 내가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 사실도 기억하면서. 상대방의 감정에 귀를 기울여보자. 감정을 삭히지 않으면 관계 회복은 불가능하다. 문제 해결보다는 관계 회복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 이 모든 관계 회복은 나를 찾을 때 가능하다.
 <권희돈 청주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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