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자(수필가)

               박영자(수필가)

만우절 아침이다. 오늘이 만우절이라는 것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는 사람이라면 황당한 거짓말에 깜빡 속아 넘어 갈 수도 있지 않을까. 그저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는 화제라면 한바탕 웃음꽃으로 마무리 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터이다. 오늘만은 가벼운 거짓말을 하거나 장난을 쳐도 나무라지 않는다는 허가 된 날이기 때문이다.
   만우절은 우리 고유의 풍습이 아니고 유럽에서 시작된 것이다. 글로벌 시대이니 서양 풍습도 우리에게 전파될 수 있고 우리 풍습이 서양으로 퍼져 나갈 수도 있는 것이니 나무랄 일은 못된다.
   만우절의 기원은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프랑스에서 정월 초하루가 바뀐 것이 계기가 되었단다. 1563년까지 프랑스에서는 지금의 3월 25일이 정월 초하루였고 이 날 시작된 신년 축제가 끝나는 4월 1일에 사람들은 신년 선물을 교환했다. 그런데 1564년부터는 지금의 1월 1일이 정월 초하루가 됐다. 그래서 새해 선물도 1월에 주게 되었다. 그러자 짓궂은 사람들이 예전처럼 4월 1일에 신년 선물을 줘서 상대방을 착각에 빠뜨리곤 했다. 이런 장난이 전 유럽에 퍼지면서 17세기 초에 만우절이 생겼단다. 우리와는 별 관계가 없는 서양 문화를 무조건 받아들인다는 것은 좀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만우절이 처음에는 선물을 주고받으며 선의의 거짓말을 하던 풍속이었는데 그것이 변질되어 선물도 사라지고 골탕을 먹이는 풍속으로 바뀌었다. 이미 많은 세월 ‘만우절’이 우리 사회에도 만연되어 있으니 굳이 없앨 일도, 크게 장려할 일도 못된다고 본다. 
  유럽에서 만우절이 생기기 훨씬 전인 고려시대부터 우리에게도 유사한 풍속이 있었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고려시대 첫눈이 오는 날에 남을 속이는 풍속이 있었고 그것이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한국식 만우절은 세 사람이 등장한다. 겨울이 되어 첫 눈이 오는 날이면 ㄱ이 눈을 상자에 담아서 ㄴ에게 주며 “너 이거 ㄷ에게 좀 갖다 줘, 내가 주는 선물이라고 말해줘.” 라고 부탁한다. ㄴ은 상자를 들고 ㄷ의 집으로 가서 “ㄱ이 너한테 주는 선물이야.”라고 말한다. 이때, ㄷ이 ㄱ의 속임수를 알아차리고 ㄴ한테 “이놈! 나를 속이려고?” 라며 ㄴ을 붙든다면, ㄱ이 한턱을 내야 했다. 반면에, ㄴ이 건네는 나무 상자를 진짜 선물인 줄 알고 ㄷ이 “어! 그래?"”라며 상자를 덥석 받아든다면, ㄷ이 턱을 내야 했다. 첫눈 오는 줄도 모르고 남한테 속은 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던 것이다. 참으로 낭만적이고 자연친화적이며 여유와 멋이 있지 않은가. 백성들 뿐 아니라, 왕족들도 이런 만우절을 즐겼다고 한다.
   사람은 왜 거짓말을 하고 싶어 할까. 자기의 실수나 잘못에 변명과 자기 합리화를 위해,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잘 보이려고, 경제적 이익을 꾀하기 위해서 같은 부정적 이유가 있지만, 아가페적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상대를 설득하고자 하는 숭고한 거짓도 있다.
  유명한 만우절 거짓말의 예는 많다. BBC TV에서 1957년에 방영한 유명한 장난은 스위스에 있는 나무에서 스파게티를 수확하는 장면을 보여주자, 많은 사람들이 BBC에 전화를 걸어 스파게티 나무의 재배법을 알고 싶어 했다. 이후로도 BBC는 거의 해마다 기발한 만우절 장난을 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96년 미국 회사 타코 벨이 자유의 종을 사들여 ‘타코 자유의 종’으로 이름을 변경했다는 내용의 광고를 뉴욕타임즈에 실었다. 1950년대 네델란드 TV에서 피사의 사탑이 무너졌다는 보도를 했는가 하면, 한 네티즌이 빌 게이츠의 암살소식을 올리는 등 황당한 거짓말들이 많았다.

  만우절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꼭 듣고 싶은 기분 좋은 거짓말은 어떤 것 일까. ‘영원히 너만을 사랑해.’(1위), ‘넌 나의 전부야. 너 없이 못살아.’(2위), ‘네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3위), ‘넌 최고로 괜찮은 여자야.’(4위), ‘결혼하면 공주처럼 떠받들어줄 게.’(5위)라고 한다.

  오늘만은 남을 유쾌하게 속여 즐겁게 한바탕 웃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112 나 119같은 긴급전화에 장난전화를 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한사람의 장난으로 커다란 인력 낭비 요인이 되는 것은 물론, 실제로 긴급 상황에 처한 사람이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통계에 따르면 2013년 전국에서 9877건의 허위신고가 접수됐으며 이 가운데 1682건이 형사입건 및 벌금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실제 2012년 제주공항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장난전화 한 통으로 경찰과 폭발물 처리반 등 100여명이 출동했고 제주행 비행기 7편이 2시간 가까이 지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처럼 어느 한 사람의 안일한 생각으로 다른 사람의 인명과 재산피해가 발생하는 거짓말은 만우절에 할 수 있는 거짓말이 아니다.
   선의의 거짓말, 아름다운 거짓말은 생활의 활력소가 될 터이니 조였던 마음의 문을 열고 한바탕 웃고 즐기는 하루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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