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말이 회자된 적이 있다. 34년전인 1981년 국내 어느 가전제품 회사의 TV 광고카피로, 우리 뇌리속에 아직도 생생하다. 이 광고는 당시 이 회사의 TV를 혼수품 1호로 자리매김하는데 일조했다. 이 광고를 본 따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순간의 선택이 생사를 좌우한다’, ‘건강-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라는 등의 말이 생겨났다. 모두가 ‘순간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대변해 주고 있는 것이다.

‘순간의 선택’은 곧 골든타임이다. 골든타임은 사고나 사건에서 인명을 구조하기 위한 초반 금쪽같은 시간 (1~2시간)을 지칭한다. 응급처치법에서 심폐소생술(CPR)은 상황 발생 후 최소 5분에서 최대 10분 내에 시행돼야 한다. 항공사의 경우 운명의 90초 룰이 있다.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90초 내에 승객들을 기내에서 탈출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골든타임을 놓치면 그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골든타임이 사고나 사건현장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언제든지 맞닥뜨릴 수 있는 게 골든타임, 즉 순간의 선택인 것이다.

85만 시민의 미래를 책임지는 청주시 행정도 그렇다. ‘행정-순간의 선택이 청주의 미래를 좌우한다’면 순간의 선택을 하는데 조금이라도 주저하면 안된다. 시정을 책임지는 시장이나 그를 보좌하는 참모의 역할이 그래서 중요하다. 하지만 이들이 순간의 선택을 잘못해 시민들이 불편을 겪어야 하고 그 피해가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간다면 어디가서 하소연해야 하나.

한 예가 창고형 할인매장인 ‘코스트코’의 청주진출 저지다. 코스트코는 청주시 흥덕구 송절동 일대 152만㎡(약 46만평) 규모로 추진중인 청주테크노폴리스 유통시설단지 4만여㎡(1만3000여평)에 지난해 청주점 개설을 추진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지방 언론에 중소상인들이 대형마트 입점에 반발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했나, 이 기사가 나간 후 이승훈 청주시장은 대형마트 입점 재검토 입장으로 돌아섰다. 코스트코는 결국 청주진출을 포기하고 인근 세종시에 땅을 매입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부터가 시작이다. 이 유통단지에 대형마트가 들어서지 않아 종국에 땅이 팔리지 않는다면 위탁회사인 (주)청주테크노폴리스 자산관리(AMC)가 가만히 있을 턱이 없다. 평당 조성원가가 275만원으로 땅 값만 330억원 달하는 어마어마한 돈을 포기할 업자는 없다. AMC가 청주시에 땅 매입을 요구하고 나설 것은 뻔한 수순이다.

그리고 이 시장은 중소상인들의 대형마트 입점 반발 배경에 청주시내에서 영업중인 다른 대형마트들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서둘러 코스트코 유치를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정이 이렇게 돌아가는 것을 눈치 챈 코스트코가 청주시의 유치제안에 순순히 응할 리가 없다. ‘갑’이 된 코스트코는 단지내 주유소와 주차장 추가시설을 요구하며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코스트코는 청주점이 없다고 손해 볼 거라는 생각을 안할거다. 지금도 청주고객들이 대전이나 천안점에 스스로 찾아와 쇼핑을 하고 있고, 훗날 세종점까지 가세하면 콧노래 부를 날은 시간문제 일 지도 모른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2013년 6~9월 천안을 방문한 청주시민들의 월평균 소비는 17억 5천만원이었지만 지난 5월 코스트코천안점 개점후 같은기간엔 19억2천만원으로 10%가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개점후 지난해 6~9월 청주시민의 이용규모는 58억원(17%)으로 천안시민 135억원(40%) 다음으로 높다. 특히 청주시민들의 1회 방문시 1인당 평균이용금액은 21만7596원으로 천안지역 11만103원보다 2배 가량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청주시민들의 창고형 대형마트 선호도를 보여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자금의 역외유출이 그만큼 심하다는 것을 반증해 준다. 흥미로운 사실은 천안지역의 코스트코 입점 전후 전통시장 소비증감은 큰 차이가 없고 대신 코스트코 소비만큼 기존 대형마트 소비가 줄어 들었다는 거다. 재래시장 상인보다 기존 대형마트쪽이 신경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이승훈 시장은 코스트코 진출을 거부해 대형마트 하나를 막아냈다고 자위할는지는 몰라도 시민들이 추구하는 소비패턴에 역행한 것만은 분명하다. 85만 청주에 창고형 대형마트 하나 없어 시민들이 장바구니 들고 대전, 천안, 세종으로 다니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이 시장은 순간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다시금 깨닫고 산적한 현안인 노인전문병원, 롯데아웃렛 부지소유권 이전소송, 옛 연초제조창 활용 등에서 소신있는 선택을 통해 시민들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게 하지 말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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