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생명지원센터가 운영하는 ‘미혼모 자조모임’

▲ 지난해 새생명지원센터가 진행한 송년모임의 모습

(동양일보 조아라 기자) 생명을 택한 순간, 낙인이 찍혔다. 출산과 함께 축복 대신 차가운 멸시의 시선을 감당해야 했던 이들. 사회의 모든 관계들로부터 배제당해야 했던 이들. 편견과 차별 속에 엄마라는 이름으로 강해져야만 했던 이들. 우리는 이들을 미혼모라 부른다.

지난 3월 28일 청주 율량동의 한 식당에서 미혼모들의 자조모임이 열렸다. 이 모임은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함께 모여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육아에 관련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됐다. 충북 권역별 미혼모부자 거점 사업기관인 새생명지원센터가 지난 2012년부터 운영하는 것으로 한 달에 한 번 진행된다.

2012년 1월 첫 모임을 가졌을 때만 해도 참석 인원은 6~7명에 불과했다. 사회의 편견에 위축되어 자신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은 이들을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문화 체험 행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현재 평균적으로 참석자는 20여명에 달한다. 참석 인원이 늘자 이달부터는 모임을 20대와 30대로 나눠 운영키로 했다.

특히 미혼모들을 심리적으로 지지해 자립심을 키우고 역량 강화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춰왔다. 지난 2월에는 캔들 공예, 3월에는 경제 교육이 진행됐으며, 도자기 공예, 목공예 등의 프로그램이 열릴 예정이다. 매년 두 차례 대전 오월드 등으로 나들이를 가고, 5월과 12월에는 가족 행사를 연다.

한영주(25)씨는 “육아법, 응급처치법 등의 강의를 듣고 많은 도움이 됐다”며 “아무래도 혼자 아이를 키우다 보니 허둥대는 부분이 많은데 엄마들끼리의 육아 정보 공유가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달에 한 번의 자조모임은 정서적으로 힘든 이들에게 일상 탈출의 순간이기도 하다. 출산과 함께 가족, 친구들로부터 멀어진 이들에게 모임에서 만난 언니, 동생들은 새로운 가족이자 친구보다 더 말이 잘 통하는 사람들이다. 선배 엄마들로부터 옷이나 장난감을 물려받고, 센터의 도움으로 양육비나 기저귀 등을 지원받는 등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큰 힘이 된다.

5살 된 아이를 둔 우미령(44)씨는 “미혼모라는 단어부터 다른 말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이 단어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더 편견을 갖고 보는 것 같고 엄마들도 위축되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한 아이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출산을 하고 열심히 키우고 있는데 그것이 왜 욕을 먹고 질타를 받아야 하는 것인지 안타깝다”고 밝혔다.

“젊고 일할 능력이 있는데 왜 일을 안하고 놀고 있냐?”는 주위의 질책은 때론 가시가 되어 박힌다. 혼자 아이를 키우며 직장에 다닌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라는 것이다.

33개월 아이를 둔 박모(20)씨는 “아이가 한동안 많이 아파서 일주일, 길게는 한 달씩 입원을 했다”며 “입원하면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직장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아빠 없이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과거를 부정당하기도 한다.

한영주씨는 “미혼모라고 하면 ‘어린 나이에 여러 남자를 만나고 다닌 여자’, ‘중고등학교 때 사고를 친 애’로 오해를 받고는 한다”며 “심지어 그런 엄마 밑에서 자랐으면 아이도 똑같을 것이라고 내 아이가 안 좋은 얘기를 들은 적도 있어 속상했다”고 토로했다.

최선우 새생명지원센터 팀장은 “모임에 나오는 분들은 어떻게든 자립해서 잘 살아보려고 하는 엄마들이다. 처음에는 참여율이 저조했는데 해가 거듭될수록 자발적으로 오는 분들이 늘고 있다”며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의지도 높아지고 많이 밝아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이들은 자조모임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일궈가며 세상에 당당히 서려 한다. 지난해 이들은 생명의 밤 행사에서 열린 바자회에 참가해 직접 만든 액세서리, 부채 등을 판매하기도 했다. 육아로 직장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던 김혜림씨는 센터의 소개로 새 직장을 찾았다. 한영주씨는 자조모임 교육을 통해 뜨개질이라는 숨겨진 자신의 재능을 알게 됐고, 현재 창업 아이템을 찾고 있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혼모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그저 ‘아이를 키우는 한 엄마’일 뿐이라고.

<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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