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논설위원 / 충북대학교 아동복지학과 교수)

최은영(논설위원 / 충북대학교 아동복지학과 교수)

 필자는 폴더형 스마트폰을 쓴다. 다른 스마트폰보다 크기가 작다. 문자판이 살아있는 효도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동영상이나 인터넷 써치 등을 위해 화면이 커야할 필요가 없는 소비자에게 맞춰진 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문제는 잘나가는(?) 대세 스마트폰이 아닌 폴더형 폰을 구입하면서 보조금을 지급받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시장은 이미 내게 어떤 제품을 구입해야 판매자가 우대를 해 주는지 적극적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자를 많이 보내고 받는 내게는 문자판을 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끊임없이 신제품이 출시되는 정보통신 분야에서 소위 트렌드라는 소비경향에 쫓겨 내 필요와 전혀 상관없이 밀려다니고 싶지 않던 내게, 보조금이 없어도 필요한 기능을 갖춘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상품을 선택하고 소비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이 나를 부르고 소비가 부추겨지는 상황에 대한 작은 저항이었을 수도 있다. 스마트폰을 일제히 회사로부터 지급받은 후 퇴근이 무의미해지고, 늘 실적보고를 해야 하고 수시로 이메일에 답장을 해야 하는 직원의 애환에 대해서도 들은 바 있던 터이다. 
  가볍고 손바닥과 호주머니에 쏙 들어가고 사진찍기, 통화, 문자 등 내게 필요한 기능이 모두 있던 3G 폰은 내게 충분했었다. 대부분의 주변사람들이 빠른 탐색속도와 해상도 및 카톡의 묘미(?)에 빠져 넓적하고 큰 스마트폰을 열렬히 구매할 때도 나는 내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다가 학회임원들끼리 수시로 모일 수 없으니 중요한 논의를 카톡방에서 해야만 한다는 결정을 통보받고, 더 이상은 도망갈 수 없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2013년 10월 폴더형 스마트폰을 사게 되었다. 결국, 사회적 동물로서 스마트폰의 세계에 합류하였다. 물론 드라마를 볼일도 없고 인터넷 써치를 할 일도 많지 않은 나로서는 무제한 데이터가 전혀 필요 없었던 지라, 데이터 총량을 정하고 34요금제를 선택하였다. 그래도 그 강요된 요금이 나는 아까웠다. 
  카톡에 가입하던 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졸업생 22명이 방가방가를 보내왔다. 옛 직장 동료는 게임을 하자면서 링크를 보내고 접속을 요구해 왔다. 아.. 내가 걱정하던 상황이 현실이 된 것이다. 나는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대면하여 만나고 차 마시고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이렇게 타인으로부터 원치않는 시간에 집단으로 호출을 당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부랴부랴 친구차단에 나섰다. 학회임원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을.
  물론 스마트폰에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리라. 급하게 보낸 이메일을 체크하고 간단히 답할 수 있는 기능은 탁월하다. 여럿이서 모임 날짜를 잡을 때도 카톡의 위대함은 뭐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러나 정말 심각한 문제는 지금부터다. 현재 사용하는 폰이 아직 2년이 되지 않았는데, 그리고 바꿀 생각이 전혀 없는데, 가끔 기능이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폴더를 들어 올리면 메뉴가 가지런히 떠야하는데, 잠깐 깜깜하게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나는 이 상황에서도 새로 출시된 제품을 드디어 살 때가 되었구나 좋아할 수 없다. 내가 제품을 막 굴리지 않아도 제조회사에서 정해놓은 유효기간에 맞추어 또 다른 소비를 할 수 밖에 없는 이 상황에 적응하고 싶지 않다. 뭐 물건하나 놓고 그렇게 따지는가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핵심부품의 수명을 미리 정해놓고 더 이상 사용할래야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을 “계획적 진부화”라 부른다. 우리는 그런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 짧고 활동적인 바지가 인기를 끌고 다시 운동화 패션이 돌아왔다. 딱 30년전 대학교 1학년 때의 유행이다. 얼마 전까지 너무 몸에 달라붙는 바지와 킬힐이 유행하는 바람에 수업시간에 넘어진 학생도 있었다. 유행이 뭐길래? 소위 패션피플들이 파파라치 컷에 일부러 잡히고 패션업계가 산업적 물량공세를 피면 너도나도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신발을 신고 다닌다. 원래 본인이 좋아하는 스타일, 자기에게 맞는 패션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결국, 유행은 일견 사람들을 획일화 시킨다. 자꾸 새로운 것을 사야하고 그렇게 세상의 트렌드에 맞추어야 한다고 강요받는다. 과소비 없이 성장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단면이다. 새로운 생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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