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국무총리의 처신이 논란이 되고 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정치권에 대한 불법 금품제공 의혹과 관련해 태안군 의원들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총리 자신과 관련된 대화 내용을 추궁했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충남도당의 이기권 전 대변인은 12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 총리가 11일 오전 태안군의회 이용희 부의장과 김진권 전 의장에게 10여 차례 전화를 걸어 '성 전 회장과 그날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밝히라'고 추궁했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변인은 "군 의원들이 '대화 내용을 왜 말해야 하느냐'며 반발하자 이 총리는 '내가 총리다. 5000만 국민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나한테 밝혀라'라며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전했다. 이 전 대변인은 이어 "김종필 전 총리와 새누리당 홍문표·김태흠 의원 등이 이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성 전 회장의 구명을 부탁했는데, 이 총리는 '이 사건은 전 총리가 추진했던 사안이라서 내가 도와줄 수 없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 총리가 전화를 걸었다는 이 부의장은 성 전 회장이 숨진 다음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성 전 회장이 숨지기 전날(8일) 지역 인사들과 만나 이완구 총리의 이름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고 전한 인물이다.
이에 대해 총리실은 "신문보도를 보고 평소에 알고 지내던 두 사람에 전화를 걸어 사실 여부를 확인했을 뿐"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이런 주장이 제기된 것 자체만으로도 부적절한 것이다.
이 총리는 13일 국회 대정부 질의 답변을 통해 "고인이 메모에 (저의) 이름을 남겼고, 태안군 부의장이 저와 친분이 있다. 친분이 없으면 전화하는 게 무리지만 전화해서 알아보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 아니겠느냐"고 해명했다. 그러나 '성완종 리스트'가 공개된 이후 온 나라가 뒤흔들리는 상황에서 총리가 지방 군의원에게 전화를 10여 차례나 걸어 자신과 관련된 언급 내용을 물었다는 것을 적절한 것으로 이해해 줄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정국을 블랙홀로 빠뜨린 이번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됐지만 '살아있는 권력'을 상대로 한 수사가 제대로 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는 국민이 적지 않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12일 성역 없는 진실 규명을 요구하며 "리스트의 주인공들은 수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직책을 내려놔야 한다. 그리고 진실을 밝히고 검찰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 총리는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자신의 이름이 거론됐기 때문에 진상 규명의 대상자이다. 국민은 지금 총리가 무슨 말을 하든 의구심을 쉽게 떨쳐버릴 수 없을 것이다.
이 총리는 성 전 회장의 이른바 '금품 메모' 수사 과정에서 검찰의 소환 요청이 있을 경우 이에 응하겠다며 "총리를 포함해서 어느 누구도 수사에 성역이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한 점 의혹 없이 수사하겠다"는 다짐에도 불구하고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검찰 수사가 과연 독립적으로 이뤄지겠느냐는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차제에 이 총리를 비롯해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 등 이번 리스트에 거명된 정부의 현직 인사들은 관련 수사가 종결될 때까지 불필요한 언행으로 의혹을 사는 일을 자초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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