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 공천판도까지 파장…여권 권력구도 재편 촉매

(동양일보) 정치권을 휩쓸고 있는 '성완종 쓰나미'가 유권자들의 정치 혐오 현상을 가속화하면서 결국 현역 정치인들의 물갈이와 정치쇄신 움직임을 촉발할 것이란 예상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번 스캔들이 1년도 남지 않은 국회의원 총선거에 직접적 영향을 미쳐 공천부터 본선에 이르기까지 기득권을 쥔 현역 의원들이 상당히 고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성완종 리스트의 직격탄을 맞은 여권부터 지각 변동과 권력 지형의 변화가 시작되는, 여권발 정계 개편 또는 구도 재편 시나리오까지 거론될 정도다.

●여권내 권력재편…"당 재건작업 불가피" = 이번 리스트 의혹엔 정권 핵심부인 이완구 국무총리와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 등의 이름이 거론되는데다, 계파상으로도 현재 여권의 주류인 친박(친박근혜) 핵심들이 대거 포함된 만큼 주류 측의 위상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이 때문에 여권 내 비주류이면서도 이미 당 지도부를 접수한 비박(비박근혜)계와 초·재선 소장파를 중심으로 여권 권력구조 재편에 대한 목소리가 급격히 분출되고 있다.

친이(친이명박)계 핵심 의원은 16일 "어느 정도 사태가 진정 국면에 들어가면 당 재건 작업이 불가피하다"면서 "당내 쇄신 목소리를 내 오던 모임이 있으니 그런 모임들을 규합해 당 재건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당내 개혁·소장파의 새로운 리더 중 하나로 급부상한 유승민 원내대표가 '신(新)보수'를 기치로 내세웠고, 김무성 대표도 보수 혁신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 중인 만큼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당의 체질 개선 작업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체질 개선이란 사실상 '인적 쇄신'으로도 연결될 수 있는 만큼 '성완종 리스트'라는 대형 변수는 여권 내 '파워 엘리트'의 변화와 권력 구도의 재편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비박계 중진 의원은 "이 총리는 이미 사퇴 여부가 중요하지 않을 만큼 자리에 있는 게 의미가 없는 상태"라며 "여권 내에서 '성완종발' 인적 쇄신은 벌써부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다만 친이계를 위시한 비박계는 이 같은 체질 개선 작업이 계파간 갈등이나 권력 다툼으로 비칠 가능성을 상당히 경계하고 있다.

한 친이계 의원은 "이재오 의원이 리스트에 거론된 친박 인사들 다 그만 두라고 말한 데 대해 동의하는 의원들이 꽤 많지만, 공개적으로 얘기하면 친이계가 대립 구도를 만드는 것처럼 비칠까봐 해야 할 얘기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 물갈이 촉매제 가능성 = 야당 내부에서도 이번 사태가 물갈이의 촉매제가 될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특히 새정치민주연합 비주류 측에서는 과거 친노(친노무현) 주류가 공천권을 자의로 휘둘러 왔다는 경계심이 쌓여 있는 만큼 공천 혁신에 대한 강력한 요구가 터져나올 가능성이 커졌다.

비주류 측 당직자는 "여당이 오히려 공천을 더 혁신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획기적 공천 제도를 마련해 대규모 인적 쇄신을 이뤄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야당이 여당보다도 인적 쇄신을 제대로 못 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총선 경쟁에서 상당히 불리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 핵심관계자는 "여당에 대항하려면 경쟁력 있는 신인들을 발굴해야 하고, 물갈이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라며 "특정 계파의 공천 독식을 막기 위한 제도 마련도 고민해볼 시점"이라고 말했다.

●"정계개편·개헌 논의까지도 시야 넓혀야" 주장도 = 다만 야당 입장에서는 인적 쇄신 논의가 이번 사건의 초점을 흐릴 수 있다는 걱정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원혜영 공천혁신단장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 사안에 대한 진상 규명이 우선돼야 한다"면서 "자칫 정치권 전체의 문제로 환원시킨다면 실체 규명을 방해하는 결과만 낳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이번 사태가 정치권 물갈이론의 뇌관으로 작용하면 현재 여야 지도부에서 추진 중인 개방형 국민경선제나 완전 상향식 공천제는 더욱 도입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현역 의원과 당협위원장, 지방자치단체장 등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향식 공천제는 '물갈이'가 어려운 제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새누리당이 능력을 기준으로 각계 '에이스'를 대거 영입해 '성공한 공천'으로 평가되는 15대·17대 총선 공천은 사실상 '완전 하향식' 공천이었다.

의원 물갈이나 인적 쇄신에만 매몰될 게 아니라 시야를 넓혀 정계 개편이나 개헌 논의에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새판' 구상 움직임 빨라지는 여야 중도개혁파 = 정치권 내에서는 실제로 정계 개편을 위한 물밑 움직임이 서서히 감지된다.

특히 새누리당 정두언·정문헌 의원, 남경필 경기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을 중심으로 한 여권의 중도개혁파 인사들은 여권 내 개혁 성향 인사들뿐 아니라 새정치연합 김부겸 의원과 같은 야당의 중도파 인사들까지 끌어안는 새로운 '판'을 만드는 구상을 발전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모임에 참여하는 한 의원은 "이번 사건 같은 문제는 여당만 쇄신해서는 해결할 수 없다"면서 "영·호남 기득권을 깨고 이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새누리당 비박계의 맏형격인 이재오 의원과 새정치연합 우윤근 원내대표 등이 주도하는 개헌 논의에 탄력을 붙일 계기로도 작용할 수 있다.

개헌론에는 정계 개편을 주장하는 인사들도 대부분 동조하고 있어 '성완종 사태'는 뜻밖의 개헌 국면으로 흘러갈 수도 있게 됐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