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논설위원 / 사회학박사)

김현숙(논설위원 / 사회학박사)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는 인재였던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어제로 1년이 되었다. 상식과 원칙을 벗어난 이 사회의 부정, 부패, 부조리와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세기적 대형 참사는 사랑하는 가족, 친구, 제자, 스승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슬픔과 그리움을 그리고 집단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온 국민에게는 분노와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우리는 특히 어린 학생들과 그들을 사랑한 선생님들 그리고 책임을 다하려고 안간 힘을 썼던 젊은 승무원들의 가슴 저린 죽음과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와 그 가족의 한을 잊을 수가 없다.

국민들은 누구나 이 지울 수 없는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재발방지 대책을 간절히 요구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세월호 사건 발생 34일만인 2014년 5월 19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세월호 참사가 보여준 미흡한 안전시스템 개선과 조직정비는 물론 비정상의 정상화와 공직사회 개혁과 부패척결을 강력히 추진할 것 약속했으며, 부패를 용인하는 악법을 개정하려는 정치권의 개혁적 제도개선을 주문한 바 있다.

그 당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으로 정홍원 국무총리는 사의를 표명했고, 많은 실망감과 의혹을 남긴 3차례에 걸친 후임총리의 인선작업 끝에 이완구 신임총리가 임명됐다. 이총리는 3월 12일 취임 후 발표한 첫 번째 대국민 담화에서 국정운영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부정부패 척결을 꼽고 정부의 모든 역량, 권한, 수단을 총동원해 구조적 부패사슬을 과감하게 끊어낼 것이며, 우리 사회에 만연된 고질적 적폐와 비리를 낱낱이 조사하고 모든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 엄벌하겠다고 밝혔다. 또 부패에 관한 한 철저한 무관용 원칙에 따라 다시는 부정부패가 우리 사회에 발붙일 수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에 박대통령은 2015년 3월 17일 국무회의에서 군대의 무기 수주와 납품에 관련된 각종비리 등을 지적하고 국무총리가 추진하는 부패청산에 힘을 실어주며 다시 한 번 부패척결을 위한 범정부적 역량결집을 당부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2015년 4월 10일 경남기업 전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남긴 ‘성완종리스트’는 정계를 넘어 대한민국 전체를 무참하게 강타하는 초대형 태풍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국무총리를 비롯해 청와대의 전·현직 비서실장 등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사람들이 금품수수 비리에 대한 진실공방의 주인공이 되었으니 국민들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되었지만 그동안 약속했던 개혁과 변화를 좀처럼 실감할 수 없었던 국민들로서는 그렇지 않아도 답답하고 착잡함을 감출 수 없었으며, 게다가 경기 침체는 그야말로 온 국민의 목을 조여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국민을 대표하라는 정치권이 왜 이러나? 국민들은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사실여부는 검찰조사에서 철저하게 밝혀져야겠지만, 우선은 이 믿고 싶지 않지만 이미 믿을 수밖에 없는 이 현실 앞에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민임이 그저 민망하고 부끄러울 뿐이다.

때마침 여당의 한 중진 국회의원이 몇 일전 '부패방지 대책‘ 세미나를 개최하면서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국민들이 체감하는 우리나라 주요 직업군의 부패수준 측정결과를 보면 국회의원이 10점 만점에 8.33점으로 가장 높고, 이어서 고위공무원 7.42점, 지방자치단체장 7.29점, 인·허가 담당공무원 7.21점, 세무 담당공무원 6.84점 등의 순으로 나타나 가장 최근의 국민여론을 대변해줬다. 참으로 한심한 우리 정치권의 자화상이며, 대한민국의 발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 정치권과 공직사회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박대통령은 4월 15일 세월호 1주기 점검회의에서 성완종 파문에 대해 부정부패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누구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국민도 그런 사람은 용서하지 않을 것이며, 이 문제는 정치개혁 차원에서 반드시 바로잡고 넘어가야 할 일이라며 철저한 진상규명 의지를 표명했다. 그렇다! 이번에는 정말 대통령의 의지대로, 국무총리의 약속대로 성역 없는 철저한 진상규명과 무관용의 원칙으로 일벌백계하여 과감하게 부정부패의 고리를 반드시 끊어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은 더 이상 국민을 기만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며 화해와 용서의 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상처받고 화가 난 국민들의 마음을 보듬을 수 있고, 그래야 국민들은 마음을 열어 정부를 믿고 다시 한 번 일어서서 뭉칠 수 있다. 절대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일이고, 우산이 있다고 비를 다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