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논설위원 / 시인)

나기황(논설위원 / 시인)

요즘 매스컴에서 ‘비대면(非對面)’이란 용어가 심심찮게 오르내린다. 직접 얼굴을 마주 대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억지로 만들어낸 조어(造語)처럼 투박하고 귀에 낯설다.
은행거래를 하려면 적어도 한번은 은행에 가서 본인확인절차를 거쳐 통장을 개설해야 하는데, 5월부터 직접 은행창구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소위 ‘비대면 거래'가 실시될 전망이다. 비대면 거래는 ‘첨단금융기술혁명’이라 불리는 ‘핀테크(Fintech)’가 기다려온 단비 같은 존재다. 핀테크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금융보안이 전제돼야 하고, 그 첫째 관문이 ‘비대면 본인확인'이다. 기존 금융결제원. 코스콤의 정보공유분석센터(ISAC)와 금융보안연구원의 기능을 통합한 금융보안 전문기관인 ’금융보안원‘이 이달 정식 출범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인터넷전문은행‘ 도입도 액셀러레이터를 밟게 됐다. 핀테크가 추구하는 큰 그림의 하나가 인터넷전문은행의 도입이고 역시 비대면 거래가 걸림돌이 돼왔다. 아직 갈 길은 멀다. 그동안 인터넷은행도입의 간이역 역할을 하던 ‘스마트 브랜치(smart branch)’나 ‘다이렉트뱅킹’도 재정비해야 한다. 난립해 있는 ‘개인정보에 관한 법률’도 손 봐야 한다. 합법적 예외조항이 1000여개가 넘다보니 맘만 먹으면 못 빼낼 개인정보가 없을 정도다. 우려하고 있는 금산분리(金産分離)원칙을 어떻게 지켜나갈지도 관건이다.
게다가 날로 진화하고 있는 스미싱(Smishing), 파밍(Pharming)같은 ‘비대면 금융사고’도 문제다. 비대면 본인확인은 ‘대포통장’을 뿌리 채 뽑아 원천봉쇄 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살짝 비켜난 모양새다. 본의 아니게 정부의 차명계좌개설 억제노력에 엇박자를 내고 ‘삐딱선(船)’을 탄 격이다.

‘비대면금융거래’를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대세는 기울어져 있다.
‘비대면 거래’는 금융거래뿐만이 아니라 이미 우리 생활전반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일종의 사회현상이고 문화다. 대표적인 것이 인터넷(쇼핑몰)과 스마트폰(결제시스템)이다.
언제부터인가 직접 만나서 대화하기보다는 전화로, 전화보다는 문자가 더 편한 세상이 됐다. 얼굴을 맞대고 함께 사는 것이 불편한 세상이 됐다.
“까톡, 까톡”, “띵똥, 땡똥” 모임이나 애경사를 알리는 스마트폰 소리다. 전혀 반갑지 않은 스팸성 메시지까지 참 많이도 올라온다. 끼리끼리 ‘밴드’에 ‘페친(facebook친구)’까지 합치면  잠시도 쉴 틈이 없다. 비대면의 사회현상이다. 말해 무엇 할까. 결혼한 자식이 부모에게 안부전화만 자주해도 ‘효자효부’반열에 들 수 있다. 전화가 안와도 섭섭해 하지 않아야 ‘쿨(cool)’한 시어머니요, 세련된 부모로 대접받는다. 비대면의 문화다.
애경사(哀慶事)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애사의 경우라도 웬만한 사이가 아니면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메시지에 아예 계좌번호까지 찍혀있다. 어차피 ‘품앗이’라는 현실적인 면을 고려한 처사지만 씁쓸하다. 계좌이체가 영수증(감사인사)역할까지 하고 있으니 편리성면에서는 그만이다. 단절의 시대,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는 사이버세상이 훨씬 편할지도 모르겠다. 익명(匿名)과 댓글로 소통하는 ‘비대면 사회’의 현주소다.
스마트한 세상이 되면서 아날로그적인 '만남‘은 점점 소원해지고 있다. 대신 잠시도 손 안에서 놓지 않는 스마트한 문명의 이기(利器)가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시카고에 사는 딸이 딸을 낳았다. 물고 빨고 꼼지락거리는 외손녀의 옹알이하는 소리까지 실시간으로 '와이파이(WiFi)'를 타고 날아온다. 비대면과 대면(對面)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20,29)” 보지 않고도 믿는 것은 신앙이다. 보고 재차 확인해야 하는 것이 금융거래다. ‘비대면 금융거래’의 근간은 ‘신뢰’와 ‘편리성’이다. 촘촘한 보안시스템이 신뢰를 받쳐주고 편리성이 날개를 달고 핀테크의 하늘을 날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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