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으로부터 3000만원 수수의혹…정치생명 최대 위기

▲ 이완구 국무총리가 27일 오후 이임식을 마친 뒤 총리실 직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정부서울청사를 떠나던 도중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오후 이완구 총리의 사표를 전격 수리했다. <연합뉴스>

(동양일보) 이완구 국무총리가 27일 결국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지난 2월17일 총리에 취임한 지 70일만이다. 사실상 최단명 총리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과거 재임 기간이 가장 짧은 총리는 허 정 전 총리로, 1960년 6월15일 취임해 65일 동안 총리를 맡았지만, 허 전 총리는 4.19 혁명 직후 혼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임시 총리라는 점에서 상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들어 대통령 단임제 실시 이후 가장 짧은 기간 재임한 총리로 기록됐다.

이 총리는 지난 1974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경제기획원에서 잠시 근무하다 치안 분야로 자리를 옮겨 최연소 경찰서장을 지냈다.

이 총리는 충북·충남지방경찰청장을 거쳐 15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했고, 16대 국회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2006년에는 3선 의원 대신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소속으로 충남지사에 도전해 당선됐다.

이후 2009년 12월 이명박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하자 지사직을 전격 사퇴해 중앙 정치 무대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야인이 된 이 총리는 2012년 4.11 총선을 통해 재기를 노렸으나, 그 해 1월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골수종 판정을 받고 꿈을 접어야 했다.

목숨이 위태로운 위기를 극복하고 2013년 4·24 재·보궐선거에서 무려 77.4%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돼 여의도 정치에 화력하게 복귀했다.

지난 2014년 원내대표 경선 당시 '원조 친박'(원조 친박근혜)계가 아닌 '범박'(범박근혜계)'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투표 없이 원내대표로 추대됐다.

7개월 동안 원내 사령탑으로 재직하며 '세월호 특별법' 합의와 12년만에 예산안 법정시한 내 처리를 이끌어내며 '뚝심'을 과시했다.

청문회 과정에서 병역 면제 의혹과 언론 외압 의혹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결국 국회 인준을 통과하게 된다.

그렇지만 지난 10일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라는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를 만났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무엇보다 각종 의혹에 대한 해명 과정에서 '말 바꾸기 논란'이 불거졌고, 결국 '사퇴 압박'을 버텨내지 못한 채 취임 이후 두달여 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혈액암이라는 생사의 경계를 넘어섰고, 인사청문회 고비를 돌파한 이 총리가 결국 '성완종 리스트'라는 예상치 못한 파고 속에서 정치 생명의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

한편 이 총리는 이날 오후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최근 상황과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많은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짧은 기간 최선을 다했으나 주어진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떠나게 되어 무척 아쉽게 생각하며 해야 할 일들을 여러분께 남겨두고 가게 되어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이어 "드리고 싶은 말씀은 많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으로 믿으며 오늘은 여백을 남기고 떠나고자 한다"면서 "다시 한 번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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