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자(논설위원 / 수필가)

박영자(논설위원 / 수필가)

 세상이 온통 꽃 천지다. 이른 봄 제일 먼저 피어난 까치눈이 그 파란 눈빛으로 봄을 알리더니 금세 벚꽃이 만발하여 청주 사람들을 무심천으로 다 불러 모았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진달래가 산자락마다 불을 지르는가 싶더니 눈 두는데 마다 영산홍이 무더기무더기 수를 놓는다.

   아파트 담장 옆에 라일락도 질세라 서둘러 보랏빛 향기를 바람결에 실어 나른다. 만화방창(萬化方暢) 산꽃, 들꽃 할 것 없이 한꺼번에 요란스럽다. 어찌 저렇듯 계절을 알아차리고 수만 년을 지켜온 약속을 어김없이 지켜낸단 말인가.

   이렇게 좋은 계절에 꽃놀이 안 가본 이가 누가 있을까만 이번 봄은 무슨 복에 꽃 속에서 노니는 시간이 많아서 행복에 겨웠다. 꽃이야 우리 집 베란다에도 이것저것 다복다복 피어있지만 꽃 욕심을 어쩌지 못하여 꽃길 따라 가평 축령산의 ‘아침고요수목원’까지 나들이를 갔었다. 산자락마다 화사하게 피어난 산벚꽃이 길을 안내한다.

  10만여 평이나 된다는 수목원의 수백 종 꽃들의 화려한 웃음 속에 묻히다 보니 꽃에 취하여 하루 종일 웃고 떠들며 헤픈 웃음도 마다하지 않았다. 청아한 듯 고고해 보이는 능수매화에 마음을 빼앗기고 수줍은 듯 피어있는 히어리를 바라보며 겸손의 아름다움을 생각했다. 뭉게뭉게 꽃구름이 된 벚꽃을 배경으로 곱게 피어난 별목련의 고상한 미소에 조신해져야 한다고 스스로를 타이르기도 하였다.

  찬란한 햇빛 속에서 무한한 사랑의 말을 쏟아내는 셀 수 없이 많은 꽃들 앞에서 오히려 나의 존재가 한없이 작게만 느껴진다. 20여년 넘게 일군 설립자 내외분의 인고의 세월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옷깃을 여몄다.

   일주일도 못되어 나는 다시 또 다른 꽃 속에 묻혔다. 우리 성당에서 야외미사를 충남 서산의 ‘태안 튤립축제’ 장으로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임도 보고 뽕도 딴다고 미사도 보고 꽃구경도 하니 꿩 먹고 알 먹고 일거양득인 셈이었다.

  튤립하면 네델란드가 떠오르고 귀한 꽃이라는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관념을 깨어 버릴 정도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그렇게 예쁘고 많고 많은 튤립을 대한 것은 처음이라 입이 딱 벌어진 채 다물어지질 않을 정도다.

  튤립의 형태는 초록빛 잎 속에서 꽃대를 쫙 올려 한 송이의 고고한 꽃을 피워 올리는 단순한 이미지 그대로이지만, 색깔은 셀 수도 없이 다양하였다. 빨강, 흰색, 분홍, 주황, 진보라… 글라데이션으로 번져가는 각종 신비한 색깔들이 정말 다양했다. 꽃잎 가장자리가 레이스를 짠 듯 뾰족뾰족한 튤립 앞에서 탄성을 지르지 않는 이가 누가 있으랴. 색색을 조화시켜 태극기로 만들어 내고, 꽃무리가 나비가 되게 한 이의 마음을 읽으며 가슴이 찡해온다. 튤립도 300여 품종에 120만 본이나 된다니 그 다양함에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고 위대한 신의 손길 뿐 아니라 이 밭을 일군 이들의 거친 손길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세상에 꽃이 존재한다는 것은 얼마나 신비한 일이며 행복한 일인가. 사람이 물주고 가꾼다 한들 그 노고는 일부분이요, 햇볕과 온도가 맞지 않으면 자랄 수도 꽃을 피울 수도 없으니 신의 섭리가 아니면 어찌 열매와 씨앗이 생겨 대를 이어 갈 수 있단 말인가.

 


  나이가 들수록 꽃은 왜 점점 더 귀하고 예뻐 보이는 걸까. 활짝 웃는 그 웃음 뒤에 숨은 고난과 역경을 읽을 수 있고 그 의미를 짚어 낼 수 있음이 아닌가. 비에 젖고 때로는 바람에 가지가 휘어지고 꺾이도록 흔들리면서도 오직 꽃을 피워 내야한다는 일념으로 자신과의 싸움에 고군분투했을 그 의지를 우리는 얼마나 깊이 생각해 보았던가. 그저 예쁜 겉모습만 보면서 찬사를 연발 했을 뿐, 꽃의 속마음을 읽고 그 산고를 헤아리지도 못한 우둔함이 부끄러워진다.

  꽃샘추위를 견뎌내고 산고의 아픔을 겪은 후에 피어난 꽃이야 말로 아름다움의 극치이며 보석처럼 고귀한 존재들인 것이다. 우리네 삶도 저마다 나름의 꽃을 피우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모두가 꽃을 피워 내지는 못한다. 냉이꽃처럼 작은 꽃이라도 피워낸 사람은 그만한 노력의 대가를 얻은 것이니 크게 칭찬하고 박수쳐야 마땅하다.

  저렇듯 화려한 꽃들도 머지않아 시나브로 꽃잎을 떨어뜨리고 지고 말 것이니 화려함의 그림자 속으로 한 자락의 슬픔이 언뜻 지나간다. 꽃을 피우려고 혼신을 다한 그들의 노고가 덧없어서 안타깝지만 오늘만은 그런 생각일랑 털어버리자.

  예쁘다, 아름답다, 귀엽다, 청아하다, 신비스럽다, 화려하다, 청초하다…. 꽃들에게 줄 수 있는 온갖 찬사를 다 퍼주고 희희낙락 그들과 어울려 한바탕 웃고 떠들어 보련다.

  “꽃들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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