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논설위원 / 소설가)

삼돌이란 감돌이, 베돌이, 악도리 이 셋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셋 이상의 자식이 있는 집에나 셋 이상의 사람이 있는 곳이나 세 사람 이상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나 학교나 나라엔 꼭 이 삼돌이가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사람 사는 세상엔 삼돌이는 빠지지 않고 꼭 끼어 있다는 얘기다. 오리보고 십리 가듯, 물에 기름 돌듯, 쌀 속에 뉘 섞기 듯 하는 사람들.
 이 마을에선 웅성이가 감돌이다. 사소한 이끗을 탐내어 덤벼드는 사람이다. “웅성이 그 놈  너무 쪼잔하잖여?” “쪼잔한 게 아니라 너무 착살맞은겨. 아주 얄밉도록 좀스럽구 다랍단 말여.” “아니, 벼룩이 간을 빼먹지 제 이끗 챙길려구 그래 그 과수댁 등을 쳐먹을라구 햐!” “그 과수댁 오죽하면 그 핏줄 같은 거멀논 서 마지길 내 놨겄어 그것 좀 제값 받아 주면 안 돼?” “내 말이 그 말여. 그래, 같은 동네사람이 가까워 생면부지 외지사람이 가까워. 누구 편에 있어야 옳겄어. 에잇 후안무치한 놈!” “자네 문자 쓰니 내도 이럴 때 유식한 옛말 한번 써먹어 봐야겄네. ‘천자(千字)도 못 읽고 인(印)을 위조한다.’ 더니 그놈이 꼭 그짝여.” “서당 문 앞에도 어리대지 못한 나 같은 사람은 통 모르겄네 뭔 말여 그게?” “어리석고 무식한 주제에 남을 속이려 한다. 이거여.”
 읍내 부동산중개업소에 빌붙어 거간꾼 노릇을 하는 웅성이가, 외아들 하나 바라고 사는 과수댁이 남편이 남기고 간 논밭 중 논 서마지기를 내놓았는데 그걸 흥정 붙이는 과정에서 저한테 돌아오는 구전을 한 푼이라도 더 챙기려고 세상물정 모르는 과수댁을 속이려드니 동네사람들이 성토에 나선 것이다. 읍내에 식당을 차린 그 외아들이 가게를 접는 바람에 끌어안은 빚을 갚으려 한 것이라 뼈아픈 과수댁인데 이런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닌 웅성이가 낯이 코치도 모르는 구매자 외지사람이 값을 후려치면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해주겠다는 바람에 그걸 노리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동네어른들이 웅성일 불러들였다. 그리곤 “여게 웅성이, 전부터 전해오는 말이 있네. 사소한 자기 이끗을 차리려고 물불 안 가리고 마구 덤벼들었다는 감돌이도 어려운 내 동네사람한테는 안 그랬다네. 자네 뭐 맘에 켕기는 일 없는가?” 하고 점잖게 압력을 주었더니 웅성이 고개를 떨구곤  슬그머니 그 자리를 빠져나가는 거였다.
 성정인 베돌이다. 어떤 일에나 한데 어울리지 않고 따로 베도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같이 섞여 어울리지 않고 따로 떨어져 밖으로만 도는 그런 위인이다. 같은 또래친구들의 술자리에도 끼지 않고 민화투놀이에도 끼지 않고 천렵에도 끼지 않고  심지어는 한해 같은 달에 태어난 윗집 친구가 병원에 입원을 해서 동네친구들이 한데 모여 단체로 병문안을 갔는데도 혼자 병원 밖에서 빙빙 돌다 돌아왔고 그 친구가 죽었는데도 동네대동계의 상여꾼에 끼지도 않고 먼발치에서 눈물만 훔치는 그런 사람이다. 그러니 동네의 그를 일컫는 말도 ‘물에 물탄 듯한 사람, 술에 술탄 듯한 사람, 있는 듯한 사람, 없는 듯한 사람, 빙빙 겉도는 사람’ 등 다양하다. 이에 하도 딱해서 동네어른들이 그의 아버지를 불렀다. 그리곤 “여보게 성정이 장가를 들여 보게. 그러면 그런 성격이 나아질 수 있을지 몰라.” 해서 또래들보다 좀 이르게 서둘러서 짝을 맞춰주었다. 했는데 이번엔 안에서 색시 곁에서만 뱅뱅 돌고 통 밖으로는 나오려 들질 않는다. 그래서 주위에선 이제 애를 낳으면 나아질까 하고 기다리는 중이다.
 달종이는 악도리다. 악을 쓰며 모질게 덤비기를 잘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무슨 일에나 악착같이 제 고집을 세우고 물러날 줄 모르는 악바리다. 한번 제 비위에 맞지 않는 표정이라도 보이면 위아래 볼 것 없이 지긋지긋하게 으르며 마구 덤벼든다. 한번 이놈의 버릇을 고쳐보겠다고 동네 힘깨나 쓴다는 형 발 되는 억식이가 달종일 후미진 데로 끌고 가서 녹초가 되도록 두들겨 팬 일이 있었다. 그런데 억식이가 곧 되잡히고 말았다. 달종이가 몇 날 며칠을 두고 그 아픈 몸을 이끌고 억식이 집 앞에 거적을 깔고 하루 종일 누워, 이놈의 새끼 때려죽인다고 고함고함 지르며 단식농성을 부리는 바람에 그만 항복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런 놈이다. 그래도 그냥 몰라라 할 수 없어 역시 동네어른들이 그를 불러 들였다. 그리곤 “너 질레 이러면 동네서 내쫓아버릴껴!” 하고 떼를 지어 으르고 협박을 했는데도 달종인 식식대며 자리를 박차고 휭 하니 나가버리는 거였다. 이걸 보고 김영감이 탄식한다. “조그만 한 동네서도 이렇듯 삼돌이가 속을 썩이니 세상이 조용할 리가 없지!.” 하자, 턱을 괴고 멍하니 창밖만 내다보고 있던 망실영감이 “그러니께 세상살이지. 다 하나 같이 똑같은 사람들만 산다면야 한상살이 아니겠는가?” 하고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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