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연기(논설위원 / 한국교통대 교수)

홍연기(논설위원 / 한국교통대 교수)

작년 10월 각 대학 정보를 공시하는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2013년도 하반기 전국 10개 국립 및 사립대학 중 8개 대학의 이공계 취업률이 인문계보다 평균 10%포인트 이상 높았으며 지방대 인문계 졸업생의 경우 10명 중 3명만이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2개 대학에서 인문계의 취업률이 이공계의 취업률보다 높게 나타난 이유는 이공계 학부 졸업생들의 높은 대학원 진학률에 따른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를 종합하면 거의 모든 대학에서 이공계 졸업생의 취업률이 인문계 졸업생의 취업률보다 높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지난 4월 8일 한 입시업체가 교육통계서비스의 대졸자 진로 및 취업 상황, 대학알리미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공개한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률 심층 분석’자료에 따르면 2014년 전문대, 4년제 대학, 대학원 이상 졸업자 66만7,056명 가운데 취업자는 33만6,682명으로 56.5%였다. 이 수치는 과거 외환위기 때 보다 더 낮은 수치이다. 계열별 취업률을 비교하면 인문계열 졸업자의 취업률은 42.1%로 나타나 공학계열의 66.7%에 턱없이 못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인문계열의 취업난 심화로 인해 인문학에 몸담고 있는 전문가들조차 인문계 학생의 취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복수전공 이수의 확대, 다양한 융복합 전공 개설, 심지어는 소프트웨어 관련 교육과정을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 외환위기 직후에는 이공계 위기론이 우리사회를 휩쓸더니 이제는 인문계 위기론이 유령처럼 떠돌게 되었다.
 
  그러나 인문계 위기와 동시에 사회 전체가 인문학 열풍에 휩싸여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우리나라에서 인문학 열풍이 불기 시작한 시점이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를 가늠하기는 어려우나 하버드 대학 교수이자 정치철학가인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이 국내에 소개된 2010년을 인문학 열풍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은 정작 미국에서는 10만부 정도가 팔렸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발행년도에 이미 베스트셀러에 등극하였고 현재까지 200만부이상이 팔린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국내에서의 발행 부수 만큼 우리 사회가 ‘정의란 무엇인가’의 내용에 얼마나 공감하고 실천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인문학 열풍의 기폭제가 된 것은 분명하다. 뒤 이어 애플의 전CEO인 故 스티브 잡스가 말한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서서 제품을 개발하고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발언이 2012년에 국내에 소개되고 국내 기업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확산시키면서 기업 활동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인문학이 강조되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이공계열 출신으로서 거기에 이공계열 중심의 대학을 다녔던 필자가 자주 들었던 말 중의 하나가 이공계열은 출신은 자신의 전공만 알지 인문학을 포함한 사회 전반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공계 출신, 더 나아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문학에 대한 소양이 부족한지를 물어본다면 꼭 그렇지는 않다고 판단된다. TV에서 방영 중인 각종 퀴즈 프로그램의 그 어려운 인문학 문제들도 척척 풀어내고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고 있는 인문학 컨텐츠의 양과 깊이를 봐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문학적 소양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문학 열풍 속에 인문학 위기인 지금의 시점에서 우리가 돌이켜봐야 할 것은 우리 사회에서 유통되고 학습되고 있는 인문학의 양적인 문제가 아니라 인문학을 바라보는 관점일 것이다. 기업에서는 인문학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정작 인문학 전공자들의 채용을 줄이고 있는 현실은 모순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대학의 근간이 되는 지성이 교양(liberal arts)에 기반 한 인문학임을 생각했을 때 지난 5년간 전국 4년제 대학에서 사라진 인문계열 학과의 수가 457개라는 통계는 건강한 지성을 양성해야 할 대학의 지(知 )적 토대가 무너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인문학은 단순한 지적 과시도 아니고 기업의 영리만을 위해 사용되는 학문도 아니다. 인문학은 사전적 정의 그대로 인간의 가치와 관련된 언어, 문학, 예술, 철학, 역사를 연구하는 학문으로서 이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사회가 유지되기 어렵다. 인문학을 이해하는 것만큼 인문학 전공자들의 다양한 인문학적 상상력을 펼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 그리고 대학 모두가 힘을 모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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