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원

오월의 담장 밑

짧은 스커트 배꼽 티셔츠의 장미가 얼굴 화장을 한다

건듯건듯 바람이 불 때마다

농익은 볼과 입술이 툭툭 벙글어 오른다

감나무 그늘에서 누렁소가 커다란 눈을 끔벅, 한다

심술 난 닭이 보로통 달려가 장미의 붉은 입술을 마구 쪼아댄다

장미가 가시 손톱을 세워 잠시 맞서다가

이내 담장 위로 기어오른다

누렁소가 느릿느릿 하품을 하며 힐금, 한다

도둑고양이 한 마리 물 스미듯 다가와

우쭐한 닭 엉덩이를 들입다 베어 문다

푸드덕푸드덕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꽁지 빠진 닭이 혼비백산 달아난다

담장 위에 걸터앉은 장미가 자지러지게 웃는다

누렁소가 멀뚱멀뚱 두 귀와 고개를 흘리며 돌아눕는다

 

소가 닭을 바라보듯이 꽃이 피고 지고

소가 닭을 바라보듯이 봄날이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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