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여성백일장’ 이 16일 오전 10시 청주 삼일공원에서 열렸다. 여백문학회가 주최·주관하고 동양일보와 뒷목문학회가 후원한 이번 백일장은 역량있는 여성문학인 발굴을 통해 충북지역 여성문학을 활성화하기 위해 마련됐다. 시상식은 이날 오후 4시 충북예총회관 1층 따비홀에서 열렸으며, 모두 20명이 수상했다. 동양일보는 지면을 통해 시·수필 부문 장원 수상작과 수상자 인터뷰, 심사평을 싣는다. 

 

●시 부문 장원 수상작  

주영순 '그림자'

 

가지 끝에 매달렸다

엄동설한

 

짧은 햇살

쫓아가며 애원이다

 

숨죽인 기다림

허공을 가르며

길게 몸 뉘인다

 

포개졌던 안과 밖이 열려

비로소 길이 생긴다

 

푸른 그늘이 깊어가는

해의 각도

신록도 호흡이 길어진다

 

시 부문 장원 주영순씨

-시 부문 장원 주영순씨

“시심 속에 사로 잡힐때 온갖 상념으로부터 해방”

 

“백일장에 나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시를 쓴 지 얼마 안 돼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되니 얼떨떨하네요. 제가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기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운 마음도 들어요.”

시를 배우기 시작한 지 불과 9개월 남짓. 이제 막 시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은 때 갑작스럽게 받은 큰 상에 기쁘지만 당황스럽다는 주영순(64·청주시 금천동)씨. 그는 이번 백일장에서 시 ‘그림자’로 영예의 장원을 거머쥐었다. ‘그림자’는 시간의 변화에 따라 길이를 달리하는 그림자의 모습에서 착안해 쓴 시로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이미지 처리와 절제 있는 언어감각이 돋보인다는 심사위원의 극찬을 받으며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평소 많은 책을 섭렵했고, 학창시절 문예반 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본격적으로 문학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시는 그저 읽으면 가슴이 두근두근한,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던 시가 그에게 온 것은 지난해 9월. 친구의 권유로 도서관에서 시창작반을 수강하면서부터였다. 현재 그는 청주 금천동주민센터에서 진행하는 ‘1인 1책 만들기’ 프로그램에서 시인 신영순씨로부터 시를 배우고 있다. 블로그에도 일기 형식으로 매일 글을 올린다. 비공개로 되어 있는 이 공간을 통해 그는 그날그날의 감정들을 글로 풀어낸다.

시를 쓰고 있자면 마음속의 온갖 상념들이 다 잊히고 온통 그 속에만 몰입되는 느낌이 들어 좋다는 주씨. 그는 최근 ‘꽃’을 주제로 한 시를 주로 쓰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문태준 시인. 최근 발간된 문 시인의 시집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창비)’을 항상 지니고 다니며 틈날 때마다 읽고 음미한다.

“시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나 다름없어 부끄럽네요. 이번 수상을 계기로 더 열심히 시를 공부하고, 열심히 쓰겠습니다.”

가족으로는 남편 서정환(69)씨와의 사이에 1남1녀가 있다. <조아라>

 

 

 

● 수필 부문 장원 수상작

이유리 '유산'

 

나의 어린 시절.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기억하고 싶지가 않다. 아니다, 사실은 너무나도 또렷이 기억난다. 세상에 구구절절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 누구보다도 특별했고 소중한 나의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아빠, 아버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그 이름이라 했던가? 나와는 다른 세상 이야기인 듯… 우리 식구들을 가장 힘들게 했고 날 세상 밖으로 내몰아버린 그 사람. 내 아빠라는 사람. 어느 날은 집에서 행패를 부리는 것이 감당이 안돼서 경찰에 신고도 해보고, 또 어느 날은 그 얼굴 보기 싫어서 가출도 해보고, 별 짓 다해 봐도 매일 똑같더라. 지겨운 삶. 내 어릴 적부터 간절히 바라던 소원은 엄마, 아빠의 이혼이었다. 그렇게 우리끼리 살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할 것만 같았다.

나 스무살 되던 해에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도망치듯 취업하여 기숙사 생활을 시작, 숨통이 탁 트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엄마에게서 들려온 기쁜 소식. 갈라섰다는 말. 아싸! 신난다. 그 뒤로 1년 정도 아빠와 연락이 끊겼다. 그래도 핏줄이라고 가끔 걱정되는 마음에 전화를 걸어봤지만 받지 않으셨다.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날 회사에서 울리는 내 전화. 모르는 번호. 안 받을 수가 없었다. 느낌이 그랬다. 역시나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 바로 그 목소리. 애증의 관계. 내 아빠. 배고프단다. 공원에서 며칠 굴렀단다. 씻지도 못해서 그냥 봐도 거지꼴이란다. 돈 10만원만 보내달란다. 화가 나고 어이가 없고 걱정되고 연락이 닿아서 안심이 되고 돈 떨어져 나한테 연락한 게 괘씸하고 짜증나고 그리고 보고 싶었다.

엄마와 헤어지고 약 1년 만에 아빠는 가진 돈 모두 탕진하고 변변한 월세 방 하나 없이 그야말로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었다. 당연히 직업도 없었다. 일단 한 며칠 정도 근처 사우나에서 지내면서 직업소개소에 이력서를 넣었다. 기숙사 제공되는 공장이 많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없지도 않았다. 그렇게 겨우 한 군데, 두 군데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나마 본인 술값, 담뱃값 정도는 벌어먹고 사셨다. 그런 아빠를 못 봐서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걱정은 날로 늘어만 갔다. 나중에 아빠가 나이가 들어 일도 할 수 없게 되면 어떡하지? 내가 모시고 살아야하나? 아빠 저러다가 어느 순간 또 연락이 끊기면 어떡하지? 어디 밖에서 무슨 변이라도 당하게 되면 어떡하지? 별의별 걱정……. 그야말로 눈에 보이면 짜증나고 안보이면 걱정되던 나의 천덕꾸러기 아빠.

어느 봄날이었다. 퇴근하고 휴무를 보내고 집으로 가던 길에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받았다. 응? 이상하다. 횡설수설 헛소리를 하신다.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 건 어떤 얘기를 하고 싶으신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서로 소득 없는 통화가 끝나고 생각했다. 아!우리 아빠가 드디어 미쳤구나. 혼자 외롭게 지내시더니 그냥 정신줄을 놓으신 건가? 분명 술을 드신 건 아니었다. 내가 확신하건데 취중은 아니었단 말이다. 온갖 복잡한 생각으로 두 시간을 달려 집에 도착했다. 아빠는 자꾸 알아듣지 못할 얘기를 하셨다. 그런데 가만히 듣고 있자니 말이 되는 말을 하고 계셨다. 중간 중간 머리 아프다는 얘기도 들어 있었고 집중해서 들을수록 앞뒤가 맞는 얘기였다. 다만 알 수 없는 외계어가 섞여 있는 채로 문장의 구사가 되지 않아서 소통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급히 병원을 찾았다. 1분1초가 지날수록 상태는 급격하게 나빠졌다. 입원, 검사를 하는 동안 엄청난 약물이 투여됐다. 진정제도 소용이 없었다. 평생의 음주로 인해 내성이 생겨 약이 듣지 않는다고 했다. 나의 요청으로 팔 다리를 침대에 묶어두고 그저 진정되기를 바라며 결과를 기다렸다. 교수님이 면담을 하자고 하셨다. 악성뇌종양 말기! 난 그냥 이 싸움이 너무 길게 가지 않도록만 도와달라고 했다. 흠칫 놀라시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일단 바로 제거수술에 들어갔고 조직검사 결과는 그 중에도 가장 독한 놈이라고 하셨다. 불쌍한 우리 아빠는 아기가 다 되었다. 온순하고 나밖에 모르는 바보가 되어버렸다. 어느 순간 나도 아빠만 찾고 아빠만 걱정하고 있었다. 퇴원한 뒤가 문제였다. 어디로 가야할지… 난감했다. 그런데 엄마가 집으로 데려오라고 하셨다. 그래도 헤어진 지 몇 년 안됐는데 같이 산 게 24년이었다며… 그래도 아빠를 간호하는 보호자는 나였다. 난 이제 우리 아빠를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랑한다.

사랑해 우리 아빠! 유리가 많이많이 사랑해요. 세상에서 제일로 사랑해요! 매일 외치고 속삭이며 내 생에 가장 뜨거운 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7개월 후 내 사랑은 갔다. 나에게 새 삶을 주고 그렇게 떠나갔다. 1월 28일은 2014년을 기준으로 내 생일과 아빠가 돌아가신 날로 나뉜다. 정말 거짓말처럼 내가 태어난 날 아빠는 돌아가셨다. 평생 내가 아플 것까지 다 갖고 갈 테니 건강히 잘 지내라는 그런 뜻으로 믿는다. 그래서 난 다시 태어났고 아빠와 함께 뜨겁게, 열렬히 사랑했던 지난 7개월의 짧은 시간을 가슴에 묻고 내 삶의 원동력으로 그렇게 나는 살아간다.

돈? 명예? 아무것도 남기신건 없다. 그러나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알고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갈 수 있는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에서 가장 크고 깊은 사랑을 알게 해주신 아빠! 비록 빙빙 돌아왔지만 그 모든 걸 함께 해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갈 이유와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빌게이츠 부럽지 않아. 아빠가 물려준 최고의 유산이 있으니까. 당신은 참 위대한 아빠, 자랑스러운 아빠, 사랑스러운 아빠 바로 내 아빠입니다.

 

수필 부문 장원 이유리씨

- 수필 부문 장원 이유리씨

“평범한 일상 들춰보니 모두 다 소중”

 

유년 시절은 시간이 지나도 아리고 쓰라린 생채기로 남았다. 스무살에 도망치듯 집을 나와 타지를 떠도는 동안에도 삶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병든 몸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함께 한 마지막 7개월을 통해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삶인지 느끼게 했다.

‘2015·여성백일장’ 수필 부문 장원 수상자인 이유리(28·청주시 봉명동)씨. 그는 악성뇌종양을 앓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의 마지막 추억을 풀어낸 수필 ‘유산’으로 최고상을 차지했다.

“수상 소식을 전하는 전화를 받고 참가상이나 됐을까 싶었는데 장원이라는 말을 듣고 놀랐어요.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회사(SK하이닉스) 생활을 하면서 별 생각 없이 살았는데 수상을 하고 보니 작가라는 막연한 꿈에 다시 도전해봐야겠다는 용기가 생겨요.”

이번 수상은 그에게 마치 아버지의 선물과도 같았다. 길에서 우연히 여성백일장 개최를 알리는 플래카드를 보게 됐고, 끌리듯 참가를 하게 된 것. 고등학교 시절 글짓기 대회에 나가 종종 수상을 하곤 했지만 지난 10년 간 문학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았는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수상 소식에 가장 기뻐해준 사람은 “우리 딸 나중에 작가 될거야”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하던 어머니 김수연씨. 이씨는 “학창시절 많이 방황하기도 했는데 같은 아픔을 겪고 나서 엄마와 서로 더 애틋해졌다.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라며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며 평생 전세로 사시다 얼마 전 새집으로 이사한 엄마에게 정말 축하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3월 결혼해 평생의 반려자가 된 남편 문현철(32·시스네트서비스 근무)씨도 놀라면서 축하를 건넸다고.

이씨는 “그동안 아빠를 미워하고 원망했었는데 마지막 7개월 동안 아빠의 보호자로 살면서 정말 많은 사랑을 하고 떠나보내드려 후회는 없다”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보통 이야기로 감동을 주는 드라마작가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 심사평

수필 ‘유산’ - 일목요연한 줄거리에 감동까지 더해

시 ‘그림자’- 통찰·절제있는 언어감각 돋보여

‘2015·충북여성백일장’에는 시 부문 31편, 수필 부문 34편, 총 65편, 즉 65명이 참가했습니다.

수필 부문의 제목은 ‘유산’과 ‘씨앗을 뿌리며’였습니다.

장원작 ‘유산’은 초기에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스러움이 가득했으나 어머니와 이혼한 후 폐인이 되다시피 한 아버지에 대해 애증을 갖기 시작하고, 뇌졸중의 아버지를 어머니가 받아들이면서 또 자식으로서의 아버지에 대한 천륜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는 아버지를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됐다는 내용으로 줄거리를 일목요연하게 끌고 가면서 내용도 감동을 주는 수작입니다.

차상작 ‘씨앗을 뿌리며’는 좋은 풀과 잡초를 구분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사람과의 관계 설정도 어려우나 아름다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을 택해야했다는 내용으로 문장과 줄거리의 흐름이 어느 모로 보나 수필다운 면을 보여 장원작과 겨루었으나 갈등면에서 떨어지고 줄거리가 일목요연하지 못한 점이 지적되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아 주제에서 동떨어진 작품이 많았으며 주어진 시제목과 수필제목이 아닌 것이 더러 있었습니다. (이런 작품 제외) 대개는 맞춤법도 좋고 원고지 사용법도 충실했습니다. 선에 들지 못한 작품도 그리 동떨어진 작품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정진해주기 바랍니다.

시 부문 심사를 시작하면서 먼저 이 시대에 시를 사랑하고 시를 공부하는 여성이 이렇게 많다는 것이 반가웠습니다.

시제는 ‘그림자’와 ‘언덕길’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그림자’쪽을 선호했습니다. 예년에 비해 전반적으로 시의 수준이 높아진 것은 기뻤으나, 아직도 많은 작품들이 주제에서 벗어나거나 시적 이미지를 유지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뛰어난 작품을 만나는 기쁨도 있었습니다. 특히 장원작 ‘그림자’는 첫 구절부터 시는 해설이 아니라 통찰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수작이었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이미지처리와 절제 있는 언어감각에서 시를 오래 공부해온 내공이 엿보였습니다.

나머지 작품들도 감동을 담은 진정성이 소박함과 미숙함을 능히 보완하고 있었습니다.

 

■ 심사위원(가나다 순)

<시 부문>

△나기황(시인) △신영순(시인) △윤현자(시조시인) △조철호(시인) △한상남(시인)

<수필 부문>

△김경순(수필가) △김다린(수필가) △김송순(동화작가) △박희팔(소설가) △안수길(소설가) △유영선(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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