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미

작은 방에서

그가 남기고 간

칼자국을 본다

 

찢어진 풀 냄새가 났다

 

벽이 흘리는

긴 상처

 

귀가 잘린 나무들이 늘어선다

식물은 다친 자리에서

가장 향기로운 즙을 뿌린다

 

몇 차례의 칼날이 들어서고

서서히 형체를 얻는 마음

 

누가 그늘을 오려

없는 정원을 이루는지

두개골 안쪽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작은 방의 모서리가

조금씩 깍여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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